두 개의 정상 표시석을 가진 학가산
경북도청 후보지의 진산 역할로 관심고조
예로부터 퇴계, 학봉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가산은 예천과 안동에서 세운 두 개의 정상 표시석이 있다. 두 지방의 자존심 대결이 가져온 결과다. 최근 경북도청 후보지가 학가산 주변에 들어서기로 확정되면서 학가산은 도청후보지의 진산(鎭山)으로서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퇴계, 학봉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가산
학가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가파르다. 그러나 최근에 나무로 계단을 잘 만들어 놓아 등산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학가산은 인적이 드문 산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참나무 낙엽이 무릎에 찰 정도로 두껍게 깔려 있다. 푹푹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숲길은 여행자를 태고시절로 회귀시켜놓고 만다.
가파른 능선을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어풍대(御風臺)가 나온다. 어풍대는 송암 권호문(權好文:1532-1587)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어풍이란 바람을 크게 거느린다는 뜻으로 안동팔경 제5편 학가귀운(鶴駕歸雲)에서는 몰려오는 바람과 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송암은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일대를 풍미했던 서애, 학봉, 백담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학행이 높았던 문인이며 선비였다. 송암은 청성산 아래의 무민제에서 학가산을 드나들며 학가산 사랑에 힘 쓴 인물이다.
학가산은 청량산과 더불어 산수문학의 보고다. 예천,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의 수많은 유학자들이 산수문학을 즐긴 곳이다. 영남의 각종 문집에는 학가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주옥 같은 시 1000여 편과 기행문 30여 편이 전해지고 있다.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 학봉 김성일, 청음 김상헌 등이 산수를 즐긴 학가산에는 선비들의 정신과 문학이 흐르는 곳이다.
학가산 어풍대는 학가산 8봉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거대한 암괴가 치솟아 오른 곳에 있다. 어풍대 암반에 올라서니 멀리 소백산 자락이 운무에 싸여 신비하게 보인다. 절경이다! 안개바람이 불어와 소백산은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숨바꼭질을 하며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어풍대 우측 711봉 능선과 좌측 능선 사이로 11월의 마지막 늦가을 단풍이 불타오르며 물결친다. 내성천의 은모래가 굽이치듯 곡선을 그으며 아련히 낙동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어풍대 암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는다. 잠시 세상을 잊어 보는 시간이다. 호흡 속에 세상이 들어오고 나간다. 생명은 한 줌의 호흡 속에 있다. 한 숨 들이마셨다가 내품치 못하면 생명이 다하는 것 아닌가!
예천과 안동 자존심 대결로 두 개의 정상을 가진 학가산
어풍대에서 국사봉 정상까지는 가파르지도 않고 그리 멀지가 않다. 그런데 학가산에는 두 개의 정상 표시가 있다. 하나는 예천군 산악회서 세워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동시에서 세워 놓은 것이 있다. 예천과 안동은 학가산을 둘러싼 치열한 자존심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예천군에서 세워놓은 표지판은 어풍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 그리고 안동시에서 세워 놓은 표지판은 어풍대에서 30분 정도를 가면 능인굴 바위 정상 위에 있다. 표지판 하나를 놓고도 이 지방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방문객은 어안이 벙벙하다. 하나의 산에 두 개의 정상이 있다니 말이나 되는가? 누군가가 양보를 해서 정상 표시는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참고로 방문객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능인굴 위에 국사봉을 자연경관과 지세로 보아 정상으로 함이 좋을 듯하다.
학가산은 안동 팔경 중 '학가산영조삼군(鶴駕山影照三群)이라 했다. 즉 학가산 그늘이 세 고을인 안동시, 영주시, 예천군 3고을에 드리워져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학의 한 다리는 안동 땅에, 다른 한 발은 예천 땅에 짚고 있다.
옛 지도에는 학가산을 하가산(下柯山)이라 했으며, 맥이 서남방향으로 흐르다가 풍산 뒤에 솟은 하지산(下枝山)과 어우러져 아랫가지란 뜻이 되고, 그 한 끝이 하회마을의 뒷산인 병산(屛山)을 이룬다.
'8방 9암자'의 태동지 능인굴
국사봉 암반 밑에는 능인굴이 있다. 능인굴은 신라 신문왕(680년경)때 능인대사가 이곳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였던 기거처이다. 능인은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학가산 남쪽 봉정사와 개목사 창건주이며, 천등산 천등굴에 얽인 전설과 석탑리의 석탑 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승려이다.
능인은 이 능인굴에서 생활하며 학가산 주변에 아홉 개의 절을 이루어 오늘 날까지 '8방 9암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니 학가산의 개산조라고 할 수 있다. 9암자는 개목사, 광흥사, 보문사, 봉서사, 봉정사, 석탑사, 애련사, 영봉사, 옥산사 등이다.
능인굴 안쪽에서는 늘 마르지 않는 새물이 솟아 등산객의 갈증을 풀어준다. 아직도 굴 앞에는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리는 흔적이 남아 있다. 능인굴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시고 국사봉 정상에 오르니 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학을 탄 신선이 되다
국사봉은 '학의 머리' 혹은 '학을 탄 신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학가산성 중앙에 위치하여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다는 국사봉은 해발 882m로 묵직한 바위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생겼다. 실제로 학가산은 곳곳에 성터가 남아 있다.
고려 공민왕(1330~1374) 때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에 몽진을 왔을 때 쌓은 학가산성이 그것이다. 공민왕은 두 차례나 침입한 홍건적을 전멸시켰지만 국력이 쇠퇴하여 왕조의 멸망을 면치 못하고 말았다.
때마침 휙휙 스쳐 지나가는 운무 속에 묻히다 보니 정말 학을 탄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학가산은 사방이 확 터진 산이다. 전국 어느 산도 학가산처럼 멀리 사방이 확 터진 산을 만나보기란 어렵다. 그래서 국사봉에 오르면 사방이 낮은 언덕처럼 보인다.
어느 산과도 연결되지 않고 홀로 우뚝 서 있는 국사봉은 능인굴과 함께 능인대사가 수행을 했던 불교성지다. 2005년도 경북도민 체전시에는 이곳에서 성화를 채화했다. 그러나 정상 우측에는 KT, KBS, MBC, SBS 그리고 군부대 송수신 기관이 흉물처럼 줄줄이 늘어서 있어 경관을 해치고 있다.
학가산으로 올라가는 산행코스는 여러 곳이 있다. 가장 쉬운 코스는 산성리나 우래리에서 임도를 따라 가다가(승용차 이동도 가능함) 고갯길에서 어풍대로 가는 코스다. 안동 쪽에서 광흥사-천주마을-애련사-능인굴-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도 좋다. 숲이 울창하고 기름진 흙길은 부드럽다.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천주마을은 '하늘거미'라는 뜻이다. 앞산 복지봉과 뒷산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에 마을이 된다고 하여 지어진 전설을 간직한 마을이다.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원시림과 기암괴석 위에 분재처럼 꼬불꼬불하게 자란 노송은 비밀의 정원을 방불케 한다.
경북도청 후보지의 진산 역할을 하는 학가산
학가산의 영험이 통했을까? 경상북도는 지난해에 예천과 안동 사이 예천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 일원을 도청 이전 위치로 확정을 했다. 도청후보지는 학가산을 진산(鎭山:고을의 큰 산)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 검무산(331m)을 주산으로 하고, 우백호 거무산(227m), 좌청룡 정산(289m)을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학가산은 경북도청 후보지 확정과 더물어 더욱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경붇도청 후보지 중앙에는 생명의 원천인 '여자 못'이 있고, 앞에는 주작인 안산(185m)과 조산 역할을 하는 봉화산(400m)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회룡포와 하회마을 중간에 놓여 있다. 이 지세는 천년의 도읍지가 가능한 수도 서울과 유사한 지세인 장풍득수형(藏豊得水型:바람을 잘 갈무리시켜 물을 얻는다는 것)이라고 풍수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학가산 가까운 곳에 도청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 머지않아 조용한 학가산도 사람들로 들끓어 지금처럼 태곳적 고요함을 즐기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학가산 등산코스
참조 : "장두강의 학가산 사랑 (http://cafe.daum.net/hakga)"
● 천주마을 - 애련사 - 왼쪽 등산로 - 능인굴 - 정상 (1시간 20분)
● 광흥사 - 광흥사 뒷산 - 당고개 - 상사바위 - 어풍대 - (西)성터 - 정상 (3시간)
● 광흥사 - 천주마을 - 마당바위 - 신선바위 - (東)성터 - 정상 (2시간 20분)
● 신전리 - 학산분교 앞 - 메밀단지 - 제3주차장 - 정상 (2시간)
● 산성리와 우래자연휴양림 사이의 임도고개 - 어풍대 - 정상 (1시간 40분)
● 우래자연휴양림 - 711봉 - 어풍대 - (西)성터 - 정상 (2시간 10분)
소요시간은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시간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 노약자나 등산 준비 없이 오신 분들은 신전리, 산성리, 우래리에서 임도를 따라 승용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산의 3/4 부근인 800고지까지 승용차 접근이 가능하다. 4륜구동이면 더 안전하다. 찻길 끝에서 약 20분만 걸으면 삼모봉, 유선봉, 정상인 국사봉에도 올라 그 유명한 학가산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 학가산 정상 표시석안동쪽에서 세운 정상 표시석(능인굴 바로 위에 있음) ⓒ 최오균
▲ 학가산 정상 표시석예천에서 세운 학가산 정상 표시석(어풍대에서 가까운 곳에 있음). 누군가 글자를 뭉갠 흔적이 잇다. ⓒ 최오균
퇴계, 학봉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가산
학가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가파르다. 그러나 최근에 나무로 계단을 잘 만들어 놓아 등산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학가산은 인적이 드문 산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참나무 낙엽이 무릎에 찰 정도로 두껍게 깔려 있다. 푹푹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숲길은 여행자를 태고시절로 회귀시켜놓고 만다.
▲ 학가산 등산로학가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무릎이 찰 정도로 참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인적이 드물어 원시림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 최오균
가파른 능선을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어풍대(御風臺)가 나온다. 어풍대는 송암 권호문(權好文:1532-1587)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어풍이란 바람을 크게 거느린다는 뜻으로 안동팔경 제5편 학가귀운(鶴駕歸雲)에서는 몰려오는 바람과 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송암은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일대를 풍미했던 서애, 학봉, 백담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학행이 높았던 문인이며 선비였다. 송암은 청성산 아래의 무민제에서 학가산을 드나들며 학가산 사랑에 힘 쓴 인물이다.
학가산은 청량산과 더불어 산수문학의 보고다. 예천,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의 수많은 유학자들이 산수문학을 즐긴 곳이다. 영남의 각종 문집에는 학가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주옥 같은 시 1000여 편과 기행문 30여 편이 전해지고 있다.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 학봉 김성일, 청음 김상헌 등이 산수를 즐긴 학가산에는 선비들의 정신과 문학이 흐르는 곳이다.
▲ 학가산 어풍대에서바라본 풍경멀리 소백산이 운무에 싸여 보이고, 산 아래로 내성천이 굽이치며 흘러내리고 있다. ⓒ 최오균
학가산 어풍대는 학가산 8봉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거대한 암괴가 치솟아 오른 곳에 있다. 어풍대 암반에 올라서니 멀리 소백산 자락이 운무에 싸여 신비하게 보인다. 절경이다! 안개바람이 불어와 소백산은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숨바꼭질을 하며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어풍대 우측 711봉 능선과 좌측 능선 사이로 11월의 마지막 늦가을 단풍이 불타오르며 물결친다. 내성천의 은모래가 굽이치듯 곡선을 그으며 아련히 낙동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어풍대 암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는다. 잠시 세상을 잊어 보는 시간이다. 호흡 속에 세상이 들어오고 나간다. 생명은 한 줌의 호흡 속에 있다. 한 숨 들이마셨다가 내품치 못하면 생명이 다하는 것 아닌가!
예천과 안동 자존심 대결로 두 개의 정상을 가진 학가산
어풍대에서 국사봉 정상까지는 가파르지도 않고 그리 멀지가 않다. 그런데 학가산에는 두 개의 정상 표시가 있다. 하나는 예천군 산악회서 세워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동시에서 세워 놓은 것이 있다. 예천과 안동은 학가산을 둘러싼 치열한 자존심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 등산로 갈림길어풍대에서 국사봉으로 가는 길 ⓒ 최오균
예천군에서 세워놓은 표지판은 어풍대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 그리고 안동시에서 세워 놓은 표지판은 어풍대에서 30분 정도를 가면 능인굴 바위 정상 위에 있다. 표지판 하나를 놓고도 이 지방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방문객은 어안이 벙벙하다. 하나의 산에 두 개의 정상이 있다니 말이나 되는가? 누군가가 양보를 해서 정상 표시는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참고로 방문객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능인굴 위에 국사봉을 자연경관과 지세로 보아 정상으로 함이 좋을 듯하다.
학가산은 안동 팔경 중 '학가산영조삼군(鶴駕山影照三群)이라 했다. 즉 학가산 그늘이 세 고을인 안동시, 영주시, 예천군 3고을에 드리워져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학의 한 다리는 안동 땅에, 다른 한 발은 예천 땅에 짚고 있다.
옛 지도에는 학가산을 하가산(下柯山)이라 했으며, 맥이 서남방향으로 흐르다가 풍산 뒤에 솟은 하지산(下枝山)과 어우러져 아랫가지란 뜻이 되고, 그 한 끝이 하회마을의 뒷산인 병산(屛山)을 이룬다.
'8방 9암자'의 태동지 능인굴
국사봉 암반 밑에는 능인굴이 있다. 능인굴은 신라 신문왕(680년경)때 능인대사가 이곳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였던 기거처이다. 능인은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학가산 남쪽 봉정사와 개목사 창건주이며, 천등산 천등굴에 얽인 전설과 석탑리의 석탑 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승려이다.
▲ 능인굴국사봉 정상 암반 밑에 있는 능인굴은 의상대사의 10제자 중 한분인 능인대사가 수행을 했다는 기거처로 사철 약수가 흐른다. 능인대사는 봉정사, 애련암 등 학가산 주변에 9개의 절을 창건했다. ⓒ 최오균
능인은 이 능인굴에서 생활하며 학가산 주변에 아홉 개의 절을 이루어 오늘 날까지 '8방 9암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니 학가산의 개산조라고 할 수 있다. 9암자는 개목사, 광흥사, 보문사, 봉서사, 봉정사, 석탑사, 애련사, 영봉사, 옥산사 등이다.
능인굴 안쪽에서는 늘 마르지 않는 새물이 솟아 등산객의 갈증을 풀어준다. 아직도 굴 앞에는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리는 흔적이 남아 있다. 능인굴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시고 국사봉 정상에 오르니 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학을 탄 신선이 되다
▲ 학가산 정상학가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확 트여 있어 학을 탄 신선이 되는 기분이 든다. ⓒ 최오균
국사봉은 '학의 머리' 혹은 '학을 탄 신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서학가산성 중앙에 위치하여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다는 국사봉은 해발 882m로 묵직한 바위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생겼다. 실제로 학가산은 곳곳에 성터가 남아 있다.
고려 공민왕(1330~1374) 때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에 몽진을 왔을 때 쌓은 학가산성이 그것이다. 공민왕은 두 차례나 침입한 홍건적을 전멸시켰지만 국력이 쇠퇴하여 왕조의 멸망을 면치 못하고 말았다.
▲ 학가산 정상 운무학가산 정상 국사봉에서 바라본 운무 ⓒ 최오균
때마침 휙휙 스쳐 지나가는 운무 속에 묻히다 보니 정말 학을 탄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학가산은 사방이 확 터진 산이다. 전국 어느 산도 학가산처럼 멀리 사방이 확 터진 산을 만나보기란 어렵다. 그래서 국사봉에 오르면 사방이 낮은 언덕처럼 보인다.
어느 산과도 연결되지 않고 홀로 우뚝 서 있는 국사봉은 능인굴과 함께 능인대사가 수행을 했던 불교성지다. 2005년도 경북도민 체전시에는 이곳에서 성화를 채화했다. 그러나 정상 우측에는 KT, KBS, MBC, SBS 그리고 군부대 송수신 기관이 흉물처럼 줄줄이 늘어서 있어 경관을 해치고 있다.
학가산으로 올라가는 산행코스는 여러 곳이 있다. 가장 쉬운 코스는 산성리나 우래리에서 임도를 따라 가다가(승용차 이동도 가능함) 고갯길에서 어풍대로 가는 코스다. 안동 쪽에서 광흥사-천주마을-애련사-능인굴-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도 좋다. 숲이 울창하고 기름진 흙길은 부드럽다.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천주마을은 '하늘거미'라는 뜻이다. 앞산 복지봉과 뒷산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에 마을이 된다고 하여 지어진 전설을 간직한 마을이다.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원시림과 기암괴석 위에 분재처럼 꼬불꼬불하게 자란 노송은 비밀의 정원을 방불케 한다.
경북도청 후보지의 진산 역할을 하는 학가산
학가산의 영험이 통했을까? 경상북도는 지난해에 예천과 안동 사이 예천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 일원을 도청 이전 위치로 확정을 했다. 도청후보지는 학가산을 진산(鎭山:고을의 큰 산)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 검무산(331m)을 주산으로 하고, 우백호 거무산(227m), 좌청룡 정산(289m)을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학가산은 경북도청 후보지 확정과 더물어 더욱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경붇도청 후보지 중앙에는 생명의 원천인 '여자 못'이 있고, 앞에는 주작인 안산(185m)과 조산 역할을 하는 봉화산(400m)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회룡포와 하회마을 중간에 놓여 있다. 이 지세는 천년의 도읍지가 가능한 수도 서울과 유사한 지세인 장풍득수형(藏豊得水型:바람을 잘 갈무리시켜 물을 얻는다는 것)이라고 풍수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학가산 가까운 곳에 도청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 머지않아 조용한 학가산도 사람들로 들끓어 지금처럼 태곳적 고요함을 즐기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학가산 등산코스
참조 : "장두강의 학가산 사랑 (http://cafe.daum.net/hakga)"
● 천주마을 - 애련사 - 왼쪽 등산로 - 능인굴 - 정상 (1시간 20분)
● 광흥사 - 광흥사 뒷산 - 당고개 - 상사바위 - 어풍대 - (西)성터 - 정상 (3시간)
● 광흥사 - 천주마을 - 마당바위 - 신선바위 - (東)성터 - 정상 (2시간 20분)
● 신전리 - 학산분교 앞 - 메밀단지 - 제3주차장 - 정상 (2시간)
● 산성리와 우래자연휴양림 사이의 임도고개 - 어풍대 - 정상 (1시간 40분)
● 우래자연휴양림 - 711봉 - 어풍대 - (西)성터 - 정상 (2시간 10분)
▲ 학가산학가산 등산로 ⓒ 장두강
소요시간은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시간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 노약자나 등산 준비 없이 오신 분들은 신전리, 산성리, 우래리에서 임도를 따라 승용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산의 3/4 부근인 800고지까지 승용차 접근이 가능하다. 4륜구동이면 더 안전하다. 찻길 끝에서 약 20분만 걸으면 삼모봉, 유선봉, 정상인 국사봉에도 올라 그 유명한 학가산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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