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32) 쉽게 쓰기 7
[우리 말에 마음쓰기 797] '그릇된 선입견 갖고', '허기가 밀려', '화폐 지불'
ㄱ. -에 대해 그릇된 선입견을 갖고
.. 사람들은 보통 고속도로 휴게소에 대해 그릇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 ..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 83쪽
이와 같은 낱말이 자꾸자꾸 나타나며 여러모로 쓰이고 있다면 우리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들 눈길이 꾸밈없지 않으며, 우리들 마음밭이 수수하지 않다는 소리일 테지요. 세상을 볼 때에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사람을 마주할 때에 겉치레를 일삼으며, 말과 글을 생각할 때에 겉훑기에 지나지 않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고, 속살을 살피지 않으며, 속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못한다는 모습이 아니랴 싶습니다.
┌ 휴게소에 대해 그릇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
│
│→ 휴게소를 잘못 알고 있다
│→ 휴게소를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다
│→ 휴게소를 엉뚱하게 보고 있다
│→ 휴게소를 참모습과 달리 알고 있다
│→ 휴게소 참모습을 모르고 있다
└ …
보기글을 생각해 봅니다. 한 마디로 "휴게소를 잘못 알고 있다"라 하면 되는데, 이래저래 군살을 붙이고 말았습니다. 군옷을 입히고 군말을 덧달았습니다. 더구나 '선입관'이란 치우친 눈길이요 그릇된 눈길을 가리키는데, 이 낱말 앞에 '그릇된'을 붙이니 더더욱 엉뚱한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는 이 엉뚱한 말이 엉뚱한 줄 느끼지 못합니다. 이 글을 받아서 책으로 펴낸 분들 또한 이 말이 왜 엉뚱한가를 잡아채거나 깨닫지 못합니다. 이 글은 이 모습 그대로 책으로 찍혀 나오며 숱한 사람들이 읽습니다. 저처럼 이 글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뭐여, 잘못된 글이잖아?' 하고 느낄 사람이 있기도 할 터이나, 웬만한 분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며' 그냥 지나치리라 봅니다. 이러면서 잘못된 말투는 하루하루 우리 삶터 곳곳으로 퍼집니다. 엉뚱한 글투는 나날이 우리 머리와 눈과 손과 귀와 입에 익숙해집니다.
처음에는 한두 글월이 얄궂거나 뒤틀리거나 잘못되거나 엉터리였다면, 나중에는 책 한 권에 적힌 모든 글월이 얄궂거나 뒤틀리거나 잘못되거나 엉터리가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책 한 권이 통째로 얄딱구리한 말로 가득할지라도 옳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그릇된 말투에 길들면서 그릇된 말투가 그릇된 줄을 모르고 마니까요.
ㄴ. 허기가 밀려왔다
.. 성완이는 흙 묻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 《박채란-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2007) 47쪽
'허기'라고 적어 놓아도 어른들은 으레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이들은 '허기'라는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들을까요? 아이들이 읽는 책을 쓰는 어른들은 이런 낱말을 꼭 넣어야 할까요? 아이들이 이 낱말을 새롭게 배워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 허기(虛飢) : 몹시 굶어서 배고픈 느낌
│ - 허기가 지다 / 허기를 느끼다 / 주먹밥으로 허기를 때우다 /
│ 그에게도 죽 한 사발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 허기를 채우다
│
├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 갑자기 배가 고팠다
│→ 갑자기 배에서 꼬르르 소리가 났다
└ …
어린이가 읽는 책에 적는 말은 어른 눈높이로 적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한편, 아이들 눈높이 또한 어른들 생각이 아니라 아이 생각으로 헤아려야지 싶어요. '이만하면 아이들이 알아듣겠지' 하고 생각하거나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이렇게 적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쉽게 가다듬고, 한 번 더 살피며 살뜰하게 추슬러 주면 좋겠습니다. 어른끼리 알아듣기에 넉넉한 말이 아닌, 아이들 누구하고나 주고받기에 넉넉한 말마디로 다스려 주면 좋겠어요.
ㄷ. 화폐를 지불
.. 무엇이든 화폐를 지불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석유풍로의 석유를 됫병들이 병으로 사다 쓰는 일도 흔했다 .. 《김담-그늘 속을 걷다》(텍스트,2009) 18쪽
"석유풍로의 석유"는 "석유풍로에 넣는 석유"나 "석유풍로에 쓰는 석유"로 다듬어 줍니다.
┌ 화폐(貨幣) : 상품 교환 가치의 척도가 되며 그것의 교환을 매개하는 일반화된 수단
├ 지불(支拂) : 돈을 내어 줌. 또는 값을 치름. '지급', '치름'으로 순화
│ - 임금 지불 / 지불 기한 / 지불 능력 / 지불을 미루다
│
├ 화폐를 지불하지 않으면
│→ 돈을 내지 않으면
│→ 돈을 치르지 않으면
│→ 돈을 주지 않으면
└ …
국어사전에서 '돈'을 찾아보면, 낱말풀이를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하는 물건"으로 적어 놓습니다. 쓰기는 누구나 쓰는 낱말이며, 알기는 누구나 아는 낱말이지만, 낱말뜻은 그야말로 어렵고 딱딱합니다.
토박이말로는 '돈'이요, 한자말로는 '화폐'입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화폐' 뜻풀이 또한 '돈' 뜻풀이와 마찬가지로 어렵고 딱딱하지만 뜻은 얼추 비슷합니다.
┌ 임금 지불 → 일삯 치름 / 일삯 줌
├ 지불 기한 → 내야 할 때
├ 지불 능력 → 낼 수 있는 돈 / 돈 낼 재주
└ 지불을 미루다 → 값 치르기를 미루다 / 돈 치르기를 미루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살림살이를 말하는 자리에 으레 '화폐 경제'라는 말을 쓰지, '돈 경제'나 '돈 살림'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돈은 돈일 뿐이나 '돈'이라 않고 현금이니 금액이니 자본이니 자금이니 캐피털이니 캐쉬니 하는 낱말만 씁니다.
이러는 동안, 돈을 낼 때에 "돈을 낸다"고 말하지 않고, 값을 치를 때에 "값을 치른다"고 말하지 않고 맙니다. 돈을 내어주는 기계는 '현금지급기'라는 이름이 붙고, 돈을 내어줄 수 없는 형편일 때에는 '지불유예'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스스로 말을 꼬고야 맙니다. 우리 스스로 말에 껍데기를 씌우고 맙니다. 우리 스스로 말을 뒤틀고 말며, 우리 스스로 말치레에 흠뻑 젖어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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