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홀한 글감옥> 겉표지 ⓒ 시사인북
"모든 인간적 불의에 저항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옹호해야 하는 작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인생을 총체적으로 탐구하는 작가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입니다. 그 책무를 달고 즐겁게 이행할 의지와 각오가 없다면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35쪽
자식을 영재로 키우고 싶다면 국어사전을 사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말문이 터진 아이들이 사소한 질문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은 부모도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난감한 경우들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그냥 얼버무리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국어사전을 펼쳐 뜻풀이를 찬찬히 읽어 보라고 저자는 권한다. 그러다 보면 덤으로 부모의 '단어 실력도 늘어 친구들 중 일기와 편지를 가장 멋지게 잘 쓰는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평소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에게 따로 글짓기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받아쓰기도 마찬가지.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로 행·불행이 갈립니다. 저는 그 숨 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고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작가'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 숨 막히는 노동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작가 되기를 원치 마십시오." - 249쪽
저자는 20년 동안이나 방에 갇혀 술 한 잔 안 마시고 글을 썼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술을 즐기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술도 한 잔 하며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때로는 밤을 세워가며 여유롭게 살아가고픈 게 인간의 본능일진데, 그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을 뒤로한 채, 저자는 스스로 글감옥에 갇혀 황홀한 글쓰기에 전념했다. 술을 마시면 마신 날을 포함하여 며칠 동안을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허송세월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놀라운 일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베껴 쓰라고 한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며느리에게까지 그러는 것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했을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태백산맥을 베끼느라 힘들었겠지만, 그 결과 큰 손자가 똑똑한 아이로 태어났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태백산맥까지는 아니더라도 아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단편소설을 몇 편 베껴보는 일도 좋은 태교가 될 듯하다.
저자가 <태백산맥>을 베끼게 한 이유는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체험케 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원고지 10매씩만 베끼면 4년이면 다 베낄 수 있다고 한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가면 아들과 며느리, 독자 119명이 릴레이로 쓴 필사본을 볼 수 있다.
<황홀한 글감옥>은 작가 생활 40년 자전 에세이니만큼 그 울림도 컸다. 그의 대하소설 3부작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 또한 놓치기 힘들 것이다.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인생의 지혜가 가득 녹아있는 책이라 가을의 끄트머리에서 읽으면 참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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