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봐야 마흔인데, 나 왜 이리 삭았지?
[2010有감④] 결혼 못한 것보다 '흔들리는 세상'이 더 무섭다
"잔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뭐가 벌써 끝났다는 거야!"
1990년대 중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처음 접했을 때 불현듯 튀어나온 말이다. 당시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젊음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으니 "잔치는 끝났다"는 최영미 시인의 말은 너무도 먼 이야기로 들렸다. 그 잔치가 이념을 말하는 것이었든 사랑을 읊은 것이었든 간에.
"서른의 잔치는 꿈도 못 꾸었는데, 내 삶의 잔치는 정말 끝나고 만 것일까?"
어느덧 불혹의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의 심정이다. 혈기 왕성하던 20대 때와 비교하면 참 많이 변했다. 그 때 그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의 모진 풍파에 몸도 마음도 찌들어버렸다. 벌써? 그래봐야 이제 마흔밖에 안 되는데?
마흔의 잔치는 진행형일까, 완료형일까?
과연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마흔 살은 어떤 모습의 인생살이를 하고 있을까? 그들의 잔치는 진행형일까 아니면 성공이든 실패든 완료형일까?
먼저, 내 삶을 고백한다. 1971년생인 나는 조그만 회사를 창업해 10년째 운영 중인 노총각으로 올해 3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친구들은 이러한 나를 두고 전도유망 운운하며 아직 결혼이나 사업이나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았다고 한껏 위로를 한다. 자신들은 유부남 또는 유부녀로 직장생활과 육아활동을 병행하며 힘겹게 살아간다면서.
그러나 나는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를 바꿔보자는 20대 때의 열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퇴색했다. 그렇다고 30대에 걸맞은 가정을 꾸려 가족과 함께 아기자기한 꿈을 펼치고 있지도 못하다. 도전과 창조의 벤처정신으로 '대박'을 터뜨려 부와 명예를 얻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1971년생들은 이제 사회의 주축인 마흔 살이 된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서는 나이다. 인구통계학으로 볼 때 이 세대는 엄청난 인구수를 자랑한다. 고등학교 진학 경쟁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대학입학 경쟁률 역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전국교사협의회(1987년)를 거쳐 전국교직원노동조합(1989년)의 출범을 지켜보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 전교조 1세대로 불리며, 1987년 앞 세대가 이룬 민주화의 성과를 1990년대 대학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누린 세대로도 구분된다. 한편 386세대에는 못 끼었지만, 노태우 군사독재 등을 비판하며 민주화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대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한 세대이기도 하다.
교육개혁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경험했던 세대
1980년대 후반 고등학교에서 교육환경의 개혁을 경험하고, 1990년대 초중반 대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했던 우리 세대는, 1970~80년대 삼엄한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간 선배들과는 삶의 모습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386세대로 대표되는 선배들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데 무게중심이 놓인 다분히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노동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교육개혁이든 어느 현장에서나 선배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삶의 가치와 사회의 행복을 위하는 데 더욱 집중했다.
그런 이유로 386 정치인을 비롯한 선배들은 지금에 와서 이따금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옳고 그름의 가치에 대한 분별력은 뛰어나지만, 먹고 사는 경제 문제 등의 해결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그에 비해 우리 세대는 가치지향을 바탕에 깔고는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에도 민감하다. 20대에 민주주의를 누림과 동시에 1997년말 무렵 터진 국가 경제 위기인 '아이엠에프(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을 꾀하던 세대에게 날아 온 직격탄은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함을 직접 일깨웠다.
아이엠에프를 온 국민이 합심해 이겨낸 뒤 우리 세대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이어진 민주주의의 확대 속에서 참다운 삶의 가치실현을 위해 사회활동을 하는 30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아니라 '30대, 잔치는 시작된다'라는 믿음을 갖기도 했다.
잔치에 대한 믿음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행복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선배들보다는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있었다. 선배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거리를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기에 그 시간과 열정만큼 삶의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삶의 다양성을 구현하고 관심의 폭을 넓히는 여러 사회활동이 가능했다.
30대 잔치는 시작된다고 믿었는데
그러나, 불혹을 앞둔 지금 잔치에 대한 믿음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우리 세대의 삶이 변해서라기보다는 이제 곧 서른이 될 후배들이 지닌 삶의 가치가 더욱 흔들려 보이기에 그렇다.
재작년 대선이 있기 얼마 전, 나는 우리 세대와 10여 년 이상이 차이 나는 후배들과 대선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 세대가 20대 후반에 겪은 아이엠에프를 10대 시절의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민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순 없지만 집안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자란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해결에 대한 갈망이 엄청났다.
당시에 한 후배가 전한 "대학교에서 1, 2학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정원의 80% 정도가 자신은 보수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후배의 말을 종합하면, 이 결과는 진리의 상아탑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학생들이 가치 지향에 대한 고민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해 대선에서 보수로서 경제대통령을 내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것은, 삶의 가치 구현보다는 물질만능주의로 표현되는 현실문제의 해결이 더욱 우선한다는 결과일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우리 세대보다 정확하게 10년을 앞선 선배이다. 그는 암울한 군사독재를 이어가는 시대를 가리켜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울부짖었을지 모른다. 나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체험하며 "잔치는 시작도 안 했다"고 속으로 항변했었고.
이제 마흔 살이 되는 데 채 한 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에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 하지만 나는 지금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 세상의 이치가 흔들리는 것을 사회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30대 넥타이 부대가 아니라 40대 넥타이 부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우성이 우리 세대 사이에서 빗발친다.
괜한 기우가 아니다. 참다운 삶의 가치를 하루라도 빨리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선배들이 일궈놓은 사회에서 30대를 훌쩍 지나온 지금, 우리가 누린 만큼이라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을 걱정하며 나는 '세상의 이치에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더 늦는다면 자칫, 내 입으로 "마흔, 잔치는 끝났다"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1990년대 중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처음 접했을 때 불현듯 튀어나온 말이다. 당시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젊음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으니 "잔치는 끝났다"는 최영미 시인의 말은 너무도 먼 이야기로 들렸다. 그 잔치가 이념을 말하는 것이었든 사랑을 읊은 것이었든 간에.
어느덧 불혹의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의 심정이다. 혈기 왕성하던 20대 때와 비교하면 참 많이 변했다. 그 때 그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의 모진 풍파에 몸도 마음도 찌들어버렸다. 벌써? 그래봐야 이제 마흔밖에 안 되는데?
마흔의 잔치는 진행형일까, 완료형일까?
▲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겉그림. ⓒ 창작과비평사
먼저, 내 삶을 고백한다. 1971년생인 나는 조그만 회사를 창업해 10년째 운영 중인 노총각으로 올해 3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친구들은 이러한 나를 두고 전도유망 운운하며 아직 결혼이나 사업이나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남았다고 한껏 위로를 한다. 자신들은 유부남 또는 유부녀로 직장생활과 육아활동을 병행하며 힘겹게 살아간다면서.
그러나 나는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를 바꿔보자는 20대 때의 열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퇴색했다. 그렇다고 30대에 걸맞은 가정을 꾸려 가족과 함께 아기자기한 꿈을 펼치고 있지도 못하다. 도전과 창조의 벤처정신으로 '대박'을 터뜨려 부와 명예를 얻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1971년생들은 이제 사회의 주축인 마흔 살이 된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서는 나이다. 인구통계학으로 볼 때 이 세대는 엄청난 인구수를 자랑한다. 고등학교 진학 경쟁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대학입학 경쟁률 역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전국교사협의회(1987년)를 거쳐 전국교직원노동조합(1989년)의 출범을 지켜보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 전교조 1세대로 불리며, 1987년 앞 세대가 이룬 민주화의 성과를 1990년대 대학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누린 세대로도 구분된다. 한편 386세대에는 못 끼었지만, 노태우 군사독재 등을 비판하며 민주화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대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한 세대이기도 하다.
교육개혁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경험했던 세대
1980년대 후반 고등학교에서 교육환경의 개혁을 경험하고, 1990년대 초중반 대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했던 우리 세대는, 1970~80년대 삼엄한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간 선배들과는 삶의 모습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386세대로 대표되는 선배들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데 무게중심이 놓인 다분히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노동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교육개혁이든 어느 현장에서나 선배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삶의 가치와 사회의 행복을 위하는 데 더욱 집중했다.
그런 이유로 386 정치인을 비롯한 선배들은 지금에 와서 이따금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옳고 그름의 가치에 대한 분별력은 뛰어나지만, 먹고 사는 경제 문제 등의 해결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그에 비해 우리 세대는 가치지향을 바탕에 깔고는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에도 민감하다. 20대에 민주주의를 누림과 동시에 1997년말 무렵 터진 국가 경제 위기인 '아이엠에프(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을 꾀하던 세대에게 날아 온 직격탄은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함을 직접 일깨웠다.
아이엠에프를 온 국민이 합심해 이겨낸 뒤 우리 세대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이어진 민주주의의 확대 속에서 참다운 삶의 가치실현을 위해 사회활동을 하는 30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아니라 '30대, 잔치는 시작된다'라는 믿음을 갖기도 했다.
잔치에 대한 믿음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행복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선배들보다는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있었다. 선배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거리를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기에 그 시간과 열정만큼 삶의 다양성을 구현하는 데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삶의 다양성을 구현하고 관심의 폭을 넓히는 여러 사회활동이 가능했다.
30대 잔치는 시작된다고 믿었는데
▲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 ⓒ 권우성
그러나, 불혹을 앞둔 지금 잔치에 대한 믿음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우리 세대의 삶이 변해서라기보다는 이제 곧 서른이 될 후배들이 지닌 삶의 가치가 더욱 흔들려 보이기에 그렇다.
재작년 대선이 있기 얼마 전, 나는 우리 세대와 10여 년 이상이 차이 나는 후배들과 대선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 세대가 20대 후반에 겪은 아이엠에프를 10대 시절의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민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순 없지만 집안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자란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해결에 대한 갈망이 엄청났다.
당시에 한 후배가 전한 "대학교에서 1, 2학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정원의 80% 정도가 자신은 보수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후배의 말을 종합하면, 이 결과는 진리의 상아탑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학생들이 가치 지향에 대한 고민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해 대선에서 보수로서 경제대통령을 내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것은, 삶의 가치 구현보다는 물질만능주의로 표현되는 현실문제의 해결이 더욱 우선한다는 결과일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우리 세대보다 정확하게 10년을 앞선 선배이다. 그는 암울한 군사독재를 이어가는 시대를 가리켜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울부짖었을지 모른다. 나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체험하며 "잔치는 시작도 안 했다"고 속으로 항변했었고.
이제 마흔 살이 되는 데 채 한 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에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 하지만 나는 지금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 세상의 이치가 흔들리는 것을 사회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30대 넥타이 부대가 아니라 40대 넥타이 부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우성이 우리 세대 사이에서 빗발친다.
괜한 기우가 아니다. 참다운 삶의 가치를 하루라도 빨리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선배들이 일궈놓은 사회에서 30대를 훌쩍 지나온 지금, 우리가 누린 만큼이라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을 걱정하며 나는 '세상의 이치에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더 늦는다면 자칫, 내 입으로 "마흔, 잔치는 끝났다"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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