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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59)

― '스릴 만점의 식사' 다듬기

등록|2009.11.16 11:24 수정|2009.11.16 11:24

- 스릴 만점의 식사

.. 게다가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까지 실습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스릴 만점의 식사였습니다 ..  《데즈카 오사무/하연수 옮김-아톰의 슬픔》(문학동네,2009) 71쪽

 '사용법(使用法)'은 '쓰는 법'이나 '쓰임새'나 '씀씀이'로 다듬습니다. '실습(實習)할'은 '몸소 해 볼'이나 '스스로 해 볼'이나 '익힐'이나 '배울'로 손보고, '스릴(thrill)'은 '아슬아슬함'이나 '짜릿함'으로 손봅니다. '식사(食事)'는 '밥'이나 '낮밥'이나 '점심'으로 손질해 줍니다.

 ┌ 만점(滿點)
 │  (1) 규정한 점수에 꽉 찬 점수
 │   - 백 점 만점에 칠십 점을 맞았다
 │  (2) 부족함이 없이 아주 만족할 만한 정도
 │   - 인기 만점 / 서비스 만점 / 그는 사윗감으로는 만점이다
 │
 ├ 스릴 만점의 식사였습니다
 │→ 스릴 만점인 식사였습니다
 │→ 스릴 만점짜리 식사였습니다
 │→ 스릴 가득한 밥이었습니다
 │→ 아슬아슬함 넘치는 낮밥이었습니다
 │→ 아슬아슬했던 낮밥이었습니다
 └ …

 이 보기글에서는 토씨 '-의'만 살며시 털어낼 수 있습니다. '-인'을 넣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적잖은 분들은 토씨 '-의' 하나 손질할 까닭이 없다고 느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자리에서 굳이 손질해야 할 찾을모를 안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스릴 만점인 식사"로 손질해 놓는다 하여도, '스릴'과 '만점'과 '식사'라는 말마디가 걸립니다. 이 말마디는 고스란히 둔 채 토씨 '-의'를 손질해 본들 무슨 뜻과 값이 있으랴 싶습니다. 가랑비에 젖는 옷도 아니요, 잠까 시늉으로 해 보는 일도 아니며, 목마른 이한테 물 한 모금 축여 주는 셈 또한 아닙니다.

 토씨 '-의' 하나 가다듬어 내려는 마음씀이라 한다면, 이 한 군데만 털어내거나 손질하는 매무새가 아닌, 나 스스로 내 말과 글을 통째로 살필 줄 알도록 달라지려고 하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작은 하나를 알아채면서 온몸과 온마음을 속속들이 깨달으려고 하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말마디 하나 추스르면서 생각마디 찬찬히 추스르고, 이에 따라 내 삶마디를 송두리째 옳게 추스르려는 매무새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 짜릿함 넘치던 밥차림이었습니다
 ├ 손에 땀을 쥐게 하던 밥이었습니다
 ├ 아슬아슬 멋진 밥먹기였습니다
 └ …

 사람들이 익히 쓰고 있으니 '스릴'은 그대로 두면 더 나을까요?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어디에서건 으레 '만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고스란히 살려 놓으면 한결 나을까요? 이제는 밥을 밥이라 않고 높임말 진지 또한 안 쓰는 우리들로 달라졌으니, '식사'만큼 알맞고 올바른 말마디가 없다고 해야 하는가요?

 풀이말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풀어낼 길은 내가 손수 헤아려야 합니다. 풀어내어 나누려는 뜻은 내가 몸소 나서며 보여주어야 합니다.

 ┌ 인기 만점 → 사랑 넘침 / 사랑 가득
 ├ 서비스 만점 → 훌륭한 대접 / 훌륭한 손님맞이 / 덤 가득
 └ 사윗감으로 만점이다 → 사윗감으로 훌륭하다 / 사윗감으로 딱 좋다

 1:1로 짜맞출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 말을 바깥말로 옮기든, 바깥말을 우리 말로 옮기든 1:1로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뜻은 같을지라도 느낌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같은 뜻 같은 모습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쓰는 겨레마다 삶이 다르고 삶터가 다르거든요. 하늘에서 내리는 얼음조각을 우리는 '눈'이라 하고, 이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듭니다. 서양에서는 이 얼음조각을 'snow'라 하며, 이 스노우를 뭉쳐 'snowman'을 만듭니다.

 1:1로 짜맞춘다면 '눈 : snow'요, '눈사람 : snowman'일 테지만, 이와 같은 1:1 짜맞춤은 얼마나 느낌과 삶을 고스란히 나누거나 함께하도록 이끌까요.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찬찬히 이끌어 내기는 할까요. 우리한테는 '길'이지만, 굳이 '道路'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다가, 애써 'road'를 뇌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가게'입니다만, 구태여 '店鋪'나 '賣場'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가운데, 괜히 'shop'이라고만 외는 사람이 있습니다.

 ┌ 칼까지 써 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짜릿한 밥이었습니다
 ├ 칼질까지 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나는 밥먹기였습니다
 ├ 칼로 썰어먹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나는 낮밥이었습니다
 └ …

 우리 나라에서는 말이 말로 그치지 않습니다. 말이 권력이 됩니다. 말이 겉치레옷이 됩니다. 말이 자랑거리가 되며, 말이 돈이 됩니다. 예부터 온나라 사람이 '빨래'를 해 왔음에도, 토박이말 '빨래'를 애써 한자로 옮겨 '洗濯'이라고 적었던 우리네 지식인입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dry cleaning'을 괜시리 끌어들인 이 나라 지식인이요 장사꾼입니다.

 그대로 쓰려 한다면 얼마든지 써도 되고, 한자말 '만점'이든 영어 '스릴'이든 얼마든지 받아들일 만합니다. 이런 낱말 한두 가지 받아들인다고 해서 우리 말이 무너지거나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낱말 한두 가지 슬금슬금 끼어들면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됩니다. 넷은 여덟이 되고, 이내 열 스물 백 천이 됩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우리 말은 통째로 잡아먹히지요. 오늘날 우리 말은 거의 다 잡아먹혀서 머리카락도 꼬리뼈도 남아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원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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