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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다발 신사' '하수구 괴물'...여긴 지하철 생태계

뉴욕 예술의 뒷담화 2

등록|2009.11.16 20:49 수정|2009.11.17 08:52
뉴욕의 지하철은 더럽기로 아주 유명하죠. 지하철에 화장실이 없으니 약주하신 양반들이 기둥에 대고 볼일을 보셔서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고 비만 쥐새끼들이 뒤뚱거리면서 걸어다니고, 찌그러진 깡통덩어리처럼 생긴 지하철 열차는 지독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다니고 툭하면 지하철운행이 멈춰 사람을 고생시킵니다. 요금도 비싸고(2500원 정도) 인터넷은 물론 핸드폰도 안됩니다.

한국의 지하철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열차안에서 텔레비전도 틀어주고 핸드폰으로 영화도 볼 수 있다고 미국인들에게 말해주면 그들은 무슨 SF영화를 말하는 줄 압니다. 어떤 친구는 "너희나라에도 지하철이 있니?"라고 묻더군요.

50개 주 중에 가장 세금이 비싼 뉴욕 주, 그 세금들이 어디 쓰이는지 참 의문입니다.

생각보다 뉴욕 지하철엔 예술가들 작품이 많이 설치되어 있진 않습니다. 몇 군데 안되는데요, 그중 14가에 있는 8번가 지하철역에 가장 괜찮은 조각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뉴욕 8번가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는 브론즈 작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볼 땐 뉴욕의 보물 중의 하나입니다.

▲ 하수구 괴물이 돈다발 머리를 잡아 먹고 있습니다. ⓒ 이병하


▲ 돈다발 머리 신사입니다. ⓒ 이병하


작가는 Tom Otterness입니다. 환경조각과 공공미술 분야에선 아주 유명한 작가입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조각공원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습니다. 1952년생이고 스튜디오는 브룩클린에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8번가 지하철역의 조각작품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3년여에 걸쳐 작품설치를 했더군요. 작품의 사이즈는 캐릭터 하나가 20cm 정도로 작지만 역사(驛舍) 내 구석구석에 약 30여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작품제목은 지하생활(Life underground)입니다.

▲ 경찰과 돈다발 머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이병하


▲ 경찰들이 돈을 쓸어담고 있습니다. ⓒ 이병하


▲ 지하철 계단 통로 난간위에 설치된 작품 ⓒ 이병하


▲ 신사분이 동전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 이병하


▲ 작은 꼬마에게 신사가 동전을 나눠주는걸까요... 꼬마의 돈을 뺏어가는걸까요 ⓒ 이병하


▲ 부분 확대사진입니다. ⓒ 이병하


그의 작품은 조각품이 아니라 만화캐릭터를 보는 듯 합니다. 꽤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한데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 명랑한 작품들입니다. 돈다발 머리를 한 자본가, 노동자, 노숙자, 경찰 등등의 캐릭터를 통해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귀엽게 꾸짖습니다. 실제로 그는 정치모임에서 활동했다고 하더군요.

▲ 돈다발 위에 신사, 그위에 여자가 걸터앉아 책을 보고있습니다. ⓒ 이병하


▲ 꼬마와 신사의 다른 각도의 모습입니다. ⓒ 이병하


▲ 돈다발위에 경찰관이 근엄하게 서있습니다. ⓒ 이병하


▲ 신사와 여성의 다른 각도의 모습입니다. ⓒ 이병하


▲ 기둥에 설치된 작품입니다. ⓒ 이병하


▲ 천장위에 설치된 작품입니다. ⓒ 이병하


▲ 돈다발 머리를 한 가재모양의 괴물이 집게발로 한가족을 잡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 이병하


▲ 돈다발을 안은 신사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병하


▲ 확대사진입니다. ⓒ 이병하


▲ 뉴욕의 거대 쥐가 동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 이병하


▲ 경찰이 여성노숙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이병하


예술가라면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생산성입니다. 이 시대에 맞는 생산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이 자본주의 구조에서 도태되고 상처받고 바보취급 받습니다. 생산성 향상이 우리 사회의 이념이 되고 철학이 되고 목표가 되고 진리가 됩니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인지 예술가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린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목숨을 좌우했던 중세시대를 한심한 시스템이라고 욕하고 있고 절대군주가 농민의 재산을 박박 긁어갔던 봉건시대를 골 때렸던 시스템이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새로운 시대엔 생산성에 목숨 걸었던 자본주의 시대를 보면서 인류역사의 수치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는 그나마 땀의 힘이 통했던 산업자본 중심에서 가짜 돈이 판치는 금융업 중심이 되면서 시장의 공정성과 공공성이란 룰이 깨졌습니다. 생산성이 높은(그것도 노동력이 아닌 금융이란 왜곡된 형태에서)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부를 거둬들이는 시스템이 정말 건강한 구조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돈놀이로 수억 수조원을 버는 금융인보다 생산성이 낮다고 대체 누가 판단하는 거죠? 대체 왜 우리가 그런 기준에 놀아나서 가난의 노예가 돼야 하는 건가요?

우리가 그 부자들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고자 하지만 우린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수조원을 버는 사람이 될 확률은 화성인과 고스톱 쳐서 쓰리고에 피박으로 이길 확률보다 적기 때문이죠. 예술가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태생적으로 우린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가가갤러리 www.gagagallery.net에 동시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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