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부산에 이른 첫눈 "진짜 눈 맞아?"

[새벽산책 27] 11월의 크리스마스에 부쳐

등록|2009.11.17 11:58 수정|2009.11.17 11:59

11월의첫눈, ⓒ 김찬순

창문을 덜컹거리는 바람소리도 없이 첫눈이 내렸다. 펑펑 쏟아지는 새벽길을 산책하는 기분은 11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 같다. 세상에 부산에 첫눈이 이렇게 일찍 온 적이 있었나? 나보다 산책을 데리고 나온 강아지가 더 좋아한다.  

정말 첫눈이네...11월의 크리스마스 ⓒ 김찬순

여기 저기서 창문이 열리고 "어머 진짜 눈이네 ?" "어머 눈이다. 눈" "언제부터 눈이 내렸지?" 내가 오늘(17일) 새벽 골목길을 나온 것은 5시. 그러니까 첫눈은 2-3시부터 쯤 내렸을 것이다. 아니 더 빨리 내렸을지도 모른다. 첫눈이 내린 시간보다 더 빨리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있었을까. 눈 위에 발자국들이 선명하다.  

11월의크리스마스 ⓒ 김찬순

부산의 첫눈 ⓒ 김찬순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눈은 모든 것을 청결히 표백한다. 눈과 얼음의 흰 색채. 그리고 차가운 감촉은 대지의 영혼을 침묵으로 얼게 한다. 겨울 대지는 한 해의 삶이 끝나고 다음 해의 삶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한 삶이 끝남으로서 다음 삶이 시작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이런 계절은 흰눈이 차갑기보다는 오히려 포근하다." 정말 11월의 첫눈은 말할 수 없이 포근하다.  



눈 ⓒ 김찬순



눈 발자국첫눈 발자국 ⓒ 김찬순

 슬퍼 하지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그때 옛말은 아득하게 지워지고 없겠지요 함박눈이 온다구요 뚜렷했었던 발자욱도 모두 지워져 없잖아요 눈사람도 눈덩이도 아스라히 사라진 기억들 너무도 그리워 너무도 그리워 옛날 옛날 포근한추억이 고드름 녹이 듯 눈시울 적시네 슬퍼하지 말아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그리운사람올 것 같아 문을 열고 내다보네 아스라히 사라진 기억들 너무도 그리워 너무도 그리워 옛날 옛날 포근한 추억이 고드름 녹이 듯 눈시울 적시네   <첫눈이 온다구요> 중-'이정석' 노래

눈 ⓒ 김찬순

교회의 십자가 불빛은 더욱 거룩하게 빛나고, 사스레피 나무의 붉은 열매 위에 소복 쌓인 첫눈이 11월의 크리스마스인 듯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네온 불빛이 명멸하는 그림 속 같은 동네 골목길에 펑펑 한해의 마무리를 잘하라고 말하는 듯이 쏟아진다. 



11월의 첫눈부산에 이렇게 일찍 내린 첫눈이 있었나 ? ⓒ 김찬순


눈 ⓒ 김찬순

나는 내리는 눈발 속으로 천천히 첫눈을 의미하며 아무도 밟지 않는 눈위에 내 발자국을 찍는다. 새벽에 내리는 첫눈… 이게 얼마만인가. 아주 어린 시절 까만 석탄 쌓인 화물차 늘어선 역의 철조망을 뚫고 조개탄을 주우러 가던 그 흑백사진 같은 기억 속으로 나는 더 깊이 눈을 맞으며 걸어간다. 눈은 풍년의 상징, 내년은 이 풍성한 눈처럼 이 땅에 충만한 축복이 가득했으면….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