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 숨은 여자, 어지러운 서울 엿보다
유명선 제5회 개인전, '세상의 변방에서 말을 걸다'
▲ 유명선유명선 제5회 개인전 "세상의 변방에서 말을 걸다"가 지난 11일(수)부터 17일(화)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 이종찬
시인이자 서양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명선은 이름처럼 유명하다. 문단에서 화단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술도 곧잘 마시고, 흥이 나면 노래도 부른다. 기도 세고, 고집도 좀 있다. 하긴, 기도 세고 고집이 있기에 남들이 쉬이 하지 못하는 일(시와 그림)을 두 가지나 품에 안고, 그가 태어나 자란 서울을 매몰차게 버린 뒤 변방을 떠돌며 살아가지 않겠는가.
이번 제5회 개인전에 걸린 그림들도 희망과 절망을 상징하는 빛과 어둠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이 세상을 한 방 치는 주먹(너나 잘 하세요)과 사람들을 향해 울부짖는 악다구니(감정을 드러낸 죄)도 마구 뒤섞여 있다. 노을 지는 들판에 홀로 우뚝 서서 가지를 모두 뒤로 눕힌 채로도 꿈쩍 안는 고목(광기), 굵은 주름살이 진 이마를 드러낸 채 아프게 울고 있는 남자(일용근로자 K씨) 등도 이 세상이 얼마나 고된 곳인지 말하고 있는 듯하다.
▲ 유명선이번 전시회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주관 초대전이다 ⓒ 이종찬
▲ 선택미술평론가 최형순은 "유명선 그림은 정치적이다"라며 "예술답지 못하게 속되다는 뜻일까? 천만에다."라고 말한다. ⓒ 이종찬
용기는 무모함에서 나온다
"몇 십 년 동안 살던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낯설고 물 설은 곳으로 옮겨 앉고 보니 '용기는 어쩌면 무모함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명확하고 분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의 삶이 내겐 너무 벅차 실행한 일이지만 이 또한 또 다른 분명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전시회를 앞두고' 몇 토막
갑자기 찾아온 영하권 날씨가 세상을 꽁꽁 얼어 붙히고 있는 11월 중순. 시인이자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선 제5회 개인전 "세상의 변방에서 말을 걸다"가 지난 11일(수)부터 17일(화)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주관 초대전이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지난 2007년 7월 서울 인사동에서 '김준태 시인의 통일시화전'을 연 바 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김영현은 "화가 유명선(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은 지난 1999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오늘에 이른 10년 세월 동안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치를 정도로 화폭에 대한 자기치열성이 매우 강렬한 화가"라며 "그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창립(2004년 9월) 회원으로서 꾸준히 시작활동과 문학운동에도 정진한 우리들의 소중한 벗"이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자신의 피 끓는 예술혼을 시와 그림의 화폭 속에 옹골차게 담아내기 위하여 지금 그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금산리의 외진 산동네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번 제5회 개인전은 무엇보다도 세상의 변방에서 찾아낸 상처의 발견이자, 때론 낯설고 때론 아련한 추억 속에 침잠해 있는 저 먼 뒤안길에 대한 확인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또 "거기엔 현대인의 고독과 절망, 그리움과 가난, 세상에 대한 부르짖음이 있고, 단독자로서 살아야 하는 서글픈 인간들의 영혼이 배여 있으며, 흰빛과 푸른빛의 강렬한 배합이 주는 삶과 죽음의 돌연한 충돌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며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인간 생에 대한 진진하고도 날카로운 성찰은 심연의 미학이자, 이 세상에 대한 그만의 끈덕진 말 걸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 광기잘못된 이 세상과 고된 삶을 화폭에 담다 ⓒ 이종찬
내 작품 화두는 인간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
"어디에서 살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래적인 고독감과 소외감에서 오는 슬픔은 결코 떨쳐버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에 내 작품의 화두는 늘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천착하고 있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나 홀로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바람을 가슴으로 안을 때 느끼는 희열은 내가 내린 선택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유명선
이번 전시회에서는 푸른색과 황토색, 초록색, 검정색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미소'를 비롯해 '선택' '세상 속으로' '광기' '골목길' '먼 길' '소금창고' '골목길(이른 봄)' '생' '일용근로자' '파랑새는 있다' '자학' '현대인' '너나 잘하세요' '썩어야 사는 것이여' 등 20여 편이 선보였다.
미술평론가 최형순은 "유명선 그림은 정치적이다"라며 "예술답지 못하게 속되다는 뜻일까? 천만에다"라고 말한다. 최형순은 "정치가의 정치만이 정치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라며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순수를 부르짖던 예술 지상주의는 이제 한물 간 과거가 되었을 뿐이다"라고 설명한다.
최형순은 또 "사람의 얼굴은 가만히 살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얼굴이 보여주는 정황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림 자체의 굴곡진 선, 부분으로 부푼 형상이 스스로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주름과 쾡한 눈으로 우리를 향하고 있는 시선은 말할 것도 없고 썩으며 싹을 틔우는 모습까지 강한 시각적 표현에 서슴없다"고 평했다.
▲ 유명선내 작품의 화두는 늘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천착하고 있다 ⓒ 이종찬
잘못된 이 세상과 고된 삶을 화폭에 담다
그렇다. 미술평론가 최형순 말처럼 유명선 그림은 이 나라 잘못된 정치에 대해 시비를 걸고, 썩은 정치를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주황색과 푸른색 바탕에 황토색으로 그려진 주먹, 그 주먹 사이에서 빛나고 있는 한 쪽 눈(너나 잘 하세요)이 이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는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몸까지 무너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도 불만이 아주 많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세상을 향해 마구 부르짖고 있는 '감정을 드러낸 죄'란 작품 앞에 서면 처절함보다는 슬픔과 분노가 이글거린다. 저 여자는 어떤 감정을 잘못 드러냈기에 저리도 악다구니를 하고 있을까.
'감정을 드러낸 죄'에 나오는 그 아픈 여자 그림을 지나 '파랑새는 있다'란 작품 앞에 서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황토색과 검정색 바탕에 그려진 검푸른 고목 옆에 파랑새가 노란 빛을 환하게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파랑새는 없다. 왜냐 하면 유명선이 말하는 파랑새는 아기를 품에 안은 푸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선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11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서호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다.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월에는 수원 시립미술전시관과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제2회 개인전을, 2004년 2월에는 단성갤러리와 대구 예송갤러리에서 제3회 개인전을, 2007년에는 대구KBS 방송총국에서 제4회 개인전을 열었다. 시집으로 <바람의 길>(2003, 미술시대)이 있다.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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