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할 줄 알면서도 싸웠던 사람들의 몸부림
쌍용차 옥쇄파업 77일 기록한 다큐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 시사회
▲ <저 달이 차기 전에> 포스터. ⓒ 따미픽처스
패배할 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약자의 몸부림은 눈물겹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싸우는 소수자의 싸움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진 게 없어 양보할 게 없는 사람들은 늘 그렇게 싸우며 생을 이어왔고,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 왔다.
싸움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약자의 몸부림이 처연하게 가슴에 박힌 것일까. <저 달이 차기 전에>가 상영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홍민철 <민중의 소리> 동영상 촬영 기자는 이 기간 동안 쌍용차 공장 안에서 생활하며 노동자들의 일상을 영상에 담았고, 그 결과물이 서세진 감독에 의해 <저 달이 차기 전에>로 나온 것이다.
<저 달이 차기 전에>의 첫 시사회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정희 의원, 그리고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파업에 동참했던 쌍용차 노동자 등 약 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해는 뜨고 지고, 달도 뜨고 지더니 쌍용차 옥쇄 파업이 정리된 지가 벌써 100일이 넘었다. 이리도 세월은 잘 흐르건만, 지난여름 공장 안에서 생활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77일은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그래서 8월 첫날 한 쌍용차 노동자는 공장 옥상에서 아직 다 차오르지 않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이렇게 탄식처럼 말한다.
"저 달이 동그래지기 전에 끝나야 하는데…. 8살, 7살 두 연년생 두 딸이 보고 싶어 죽겠어요."
이 탄식은 그대로 영화의 제목이 됐다. 지난 여름 수많은 언론이 쌍용차 사태를 실시간으로 보도했지만, 그것들은 거의 대부분 공장 밖에서 바라본 공장의 겉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장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물, 음식, 의료, 전기가 끊긴 두 달이 넘는 시간은 참 모진 세월이었다.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함께 살자"고 들어간 이들에게 닫힌 공장에서의 생활은 또다른 시련이었다. 필름에 담긴 영상은 그 모든 걸 증언한다.
▲ 지난 8월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도장공장 옥상으로 경찰헬기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한 노동자는 카메라를 보며 "샤워 한 번 시원하게 하는 게 소원"이라 말하고, 어떤 노동자는 "된장찌개와 김치가 가장 먹고 싶다"고 말한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존재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니 샤워는 소원이 됐고, 된장찌개와 김치는 먹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한 노동자는 공장 옥상에서 보이는 자신의 집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새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집에 아무 일 없나 한 번 둘러보고, 아내한테 '여보, 나 밥 좀 줘'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도 새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하루 세 끼 주먹밥을 먹으며 싸우고, 최루액에 큰 화상을 입어도 치료를 받지 못하며, 한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목욕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제 아무리 "강철같은 철의 노동자"라도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은 "차라리 빨리 공권력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그렇게 카메라는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반드시 "모이고 마주보며" 연대하는 '철의 노동자'만을 담지 않았다. 오히려 때로는 싸우고, 다투며, 극한 상황에서 고뇌하는 노동자를 고스란히 담았다. 결국 그들도 특별하지 않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것이다.
파업이 마무리 될 즈음, 한상균 당시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이미 400여 명으로 줄어든 옥쇄파업 노동자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노사협상안을 발표한다.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한 협상결과였다.
▲ 지난 8월 6일 저녁 7시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농성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도장공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77일간 함께 농성을 벌인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한 후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한 위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많이 분노했지만 나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떨군다. 파업을 끝내는 마지막 집회에서 한 위원장은 <파업가>에 맞춰 하늘을 향해 힘차게 팔뚝질을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입은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유난히 작은 그의 눈에서는 큰 눈물이 뚝뚝 땅으로 떨어진다.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다른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스피커에서는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는 노래가 요란하지만 정작 따라 부르는 이는 많지 않다. 저마다 눈을 질끈 감고 안간힘을 쓰지만 눈물은 속수무책으로 나온다. 파업을 마치며 한 늙은 노동자는 이렇게 말하며 공장을 떠난다.
"노동자들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 달이 차기 전에>가 허무와 패배의 눈물로만 점철되는 건 아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라는 게 값싸게 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보여줬다"고 평가하며 "함께 해서 좋았고, 함께 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현재 쌍용차 해고자 158명은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저 달이 차기 전에>는 오는 24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다시 시사회를 연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