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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60)

'갖가지 도전의 기회를 주고' 다듬기

등록|2009.11.18 14:39 수정|2009.11.18 14:39
- 갖가지 도전의 기회

.. 이래서는 어린이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갖가지 도전의 기회를 주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품어 안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사회, 그리고 어린이가 한 번 넘어져도 다시 도전하는 정신을 기를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 가야만 합니다 ..  <아톰의 슬픔>(데즈카 오사무/하연수 옮김,문학동네,2009) 155쪽

 '성장(成長)할'은 '자랄'이나 '클'로 다듬고, '설령(設令)'은 '어쩌다'나 '때때로'로 다듬으며, '여유(餘裕)로운'은 '넉넉한'이나 '너그러운'으로 다듬습니다. '도전(挑戰)하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부딪히는'이나 '일어서는'이나 '해 보려는'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정신(精神)'은 '마음'이나 '매무새'나 '마음가짐'으로 손질하며, "문화적(文化的) 토양(土壤)"은 "문화 토양"이나 "문화"나 "터전"이나 "삶터"로 손질해 줍니다.

 ┌ 갖가지 도전의 기회를 주고 (x)
 └ 도전하는 정신을 기를 수 있는 (o)

 보기글을 살피면, 처음에는 "도전의 기회"라 적고, 다음으로는 "도전하는 정신"이라고 적습니다. 두 글월을 곰곰이 헤아려 보면, 앞 글월은 "도전하는 기회"나 "도전 기회"로 적을 수 있었으며, 뒷 글월 또한 "도전의 정신"이나 "도전적 정신"처럼 얄궂은 말마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도전 정신"이라고 해도 넉넉하지만, 꼭 "도전의 정신"이나 "도전적 정신"이라는 말마디를 아울러 씁니다. "도전 자세"로도 너끈하지만, 굳이 "도전의 자세"나 "도전적 자세"라는 글줄을 함께 씁니다.

 그러고 보면,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은 드물고, 으레 '도전자'라고만 말합니다. 한자말 '도전'이 쓰기 좋으냐 궂으냐를 따지기 앞서, 이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지를 곰곰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맞선다', '뛰어든다', '부딪힌다', '해 본다', '나선다',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다', '붙잡는다' 같은 말마디를 그때그때 알맞게 넣던 우리 삶자락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 삶에 바탕을 두는 우리 말을 잃었습니다. 아니, 삶에 바탕을 두는 말인 만큼, 이제는 우리 삶이 온통 달라지거나 뒤바뀌었기에, 이처럼 달라지거나 뒤바뀐 삶에 따라서 말 또한 온통 달라지거나 뒤바뀌어 있습니다.

 ┌ 도전(挑戰)
 │  (1)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   - 도전에 응하다 / 도전을 받다
 │  (2)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경신 따위에 맞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신기록 도전 / 정상 도전 / 새로운 도전의 계기로 삼았다
 │
 ├ 갖가지 도전의 기회를 주고
 │→ 갖가지 도전 기회를 주고
 │→ 갖가지 도전을 할 기회를 주고
 │→ 갖가지로 도전할 기회를 주고
 └ …

 한자말 '도전'이 나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한자말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이 낱말을 찾아보며 말뜻을 곰곰이 곱씹기 앞서까지는, 저 또한 이 낱말을 곧잘 써 왔습니다. 그러나 말뜻과 말쓰임을 하나하나 살피고 나니, 이 낱말을 쓰고프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한편, 이 낱말을 안 쓰려 한다면 얼마든지 안 쓸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말이란 쓰는 사람 나름대로 쓰고, 글이란 쓰는 사람 스스로 찾아서 씁니다. 스스로 어떻게 살피고 돌아보느냐에 따라서 한결 북돋울 수 있고, 그저 제자리걸음일 수 있으며, 자칫 뒷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싱그럽고 훌륭하게 북돋우는 말이든, 이냥저냥 멋없는 말이든, 자꾸자꾸 거칠고 팍팍해지는 말이든, 모두 우리 스스로 이끌어 내는 말입니다. 모두 우리 스스로 이루어 내는 말이며, 모두 우리 스스로 바라는 대로 일구는 말입니다.

 ┌ 이래저래 부딪히도록 해 주고
 ├ 여러모로 부딪힐 자리를 마련해 주고
 ├ 갖가지 일을 겪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 …

 어릴 때부터 둘레에서 갖가지 한자말을 듣고 자란 사람한테서 한자말을 떼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듣고 자란 사람한테서 욕지꺼리를 뽑아내기란 어렵습니다. 어릴 무렵부터 프랑스말을 듣고 배우고 쓰며 자란 사람한테서 프랑스 말투와 낱말을 덜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말은 그 사람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 사람 삶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일찍부터 나라밖으로 보내 지내게 하면, 아이들은 그 나라 말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영어이든 프랑스말이든 일본말이든 아무렇지도 않게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바깥말을 제 삶으로 받아들여 익힌 아이들은, 한국땅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한국말을 거의 못 익히'거나 '옳고 깊고 바르고 알맞게 못 배웁'니다.

 목소리가 얄궂고, 높낮이와 길이를 맞추지 못하며, 틈틈이 바깥말을 섞으면서 제 뜻과 마음과 생각을 나타내고야 맙니다. 지난날 학자나 지식인은 한문으로 세상을 배웠으니 마땅히 글과 말 곳곳에 한자를 끼워넣었고, 오늘날 학자나 지식인은 영어로 세상을 배우니 자연스레 글과 말 구석구석에 알파벳을 끼워넣습니다.

 ┌ 새로운 도전의 계기로 삼았다
 │→ 새롭게 도전할 발판으로 삼았다
 │→ 새로 부딪혀 볼 발판으로 삼았다
 ├ 신기록 도전 → 새기록 세우기에 나섬 / 새기록을 세우려 함
 └ 정상 도전 → 꼭대기 오르기에 나섬 / 꼭대기에 오르려 함

 일본에서 다섯 해쯤 살면, 중국에서 열 해쯤 살면, 미국에서 스무 해쯤 살면, 이렇게 살아간 사람들 삶이나 생각이나 말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내리 살고 있다면 어떠할까요? 또한, 한국에서 어떤 이웃과 동무를 곁에 두고 살고 있느냐를 헤아린다면 어떠한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주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는 어떤 말을 어떤 삶에 따라서 쓰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어떻게 일구고 있습니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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