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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 왜 미디어법에 목숨 거나

[서평] 정치와 프로파간다 (한울아카데미, 2009)

등록|2009.11.19 21:25 수정|2009.11.19 21:25
* 박순석 기자는 이 책 번역자입니다.(편집자 주)

경험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직접 겪은 일과 간접적으로 겪은 일. 두 번째는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대중매체에서 세상을 '읽어내는' 데에 할애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우리의 인식은 말을 통해서 구체화되기 때문에-'적당한 말' 혹은 정확한 개념을 우리는 필요로 하게 된다. <정치와 프로파간다: 대중을 유혹하는 무기> 저자의 말처럼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희미하게 이해하는 현상을 묘사할 장황한 문구를 찾다가 요지를 더욱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14). 그래서 이 책은 지금의 세상을 '읽기' 위해 필요한 개념인 '프로파간다'(propaganda, 교의나 사상 등을 선전하는 일)를 새롭고 정밀하게 정의하고 있다.

정치와 프로파간다(한울아카데미, 2009) ⓒ 한울



시사 이슈와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이 세상을 보는 창(窓)이 될 수 있다면 그를 통해 2009년 대한민국의 시사 이슈들을 어떻게 읽어볼 수 있을까?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 중에서도 가장 관련성이 높은 이슈는 미디어법을 둘러싼 정치적 의지들의 격돌이다. 프로파간다가 열어주는 인식의 창은 우리에게 '경제적이고 편향된 정보의 전달방법'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보게 한다. 왜 정부와 여당은 그토록 미디어법에 목숨을 거는가? 아무래도 2008년 PD수첩과 광우병집회라는 경험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겠다.

저자의 지적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간접으로 알게 된 공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직접 그 타당성을 면밀히 따져볼 시간과 도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고기협상이라는 이슈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안심해도 좋다'는 정부의 주장이 어느 정도까지 믿을 만한 것인지 검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대중은 언론에 기대게 되고 PD수첩의 광우병 집중보도는 최대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의 일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어떤 정부든지 자신들만의 '홍보'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들 입장에서 정보를 전달해줄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기를 희망하게 된다. 이것이 그들에게 '경제적이고 편향된 정보의 전달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홍보'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프로파간다'를 둘러싼 사회적 사건이다.

4대강 사업도 프로파간다를 통해 새롭게 볼 수 있다. 저자는 프로파간다에 대한 사례연구에서 영국정부를 예로 들어 '상징정부'의 활동을 조명한다. 이런 형태의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신중한 조사나 연구 끝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수사적인 비전'이 새로운 정책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왜 4대강인가? 대한민국 선진화라는 신화와 우리나라 전국토를 상징하는 주요 하천은 '4대강 살리기'라는 수사적 비전으로 결합한다. 그리고 이것이 4대강 사업이라는 정책을 만들어냈다. "절실한 필요나 경험적 연구 결과에 대한 신중한 대응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상화된 국가의 이미지가 주는 매력에 의해 제기되고 유지되는 것이다."(270)

또한 4대강 사업의 부정적인 효과는 덮어두고 긍정적인 효과를 찾아내는 '국책연구원'들의 활동에서는 프로파간다의 '새로운 차원'을 볼 수 있다. 이른바 '객관적 증거'를 통한 설득이다. 이런 설득방식은 과학과 민주주의의 시대에 더욱 확산되는데, 모든 정부는 광우병 사태를 겪을 당시 영국 정부가 했던 말에 공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영국의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안전하다고 증명하기를 원한다."(193) 하지만 이런 편파적인 의도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데이터를 통한 설득에는 여전히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그들이 공명정대한 '데이터'와 전문가의 과학적 의견에 대해 평소 훈련받았던 대로 경의를 표하"며,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통계와 기타 분석적 기술들을 비판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194)

지금까지 설명한 두 가지 사안 외에도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이자 현상은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시장주의자'의 '시장' 방문을 비웃기만 하고 그 정치적 영향력을 간과하는 사람, 용산참사를 도시 공간설계상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로만-정부의 바람대로-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프로파간다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만 성행하는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가 프로파간다라는 인식의 창(窓)이 시급히 필요한 이들이다.

프로파간다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하지만 정부만 프로파간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국가는 분명 프로파간다의 주모자이지만, 인터넷과 보편적 교육의 시대에 그들만 선전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일한 사안을 관철시키는 데에 모든 힘을 집중하는 NGO나 이익단체의 활동이나, 상품이 아닌 이미지를 광고하는 기업의 활동에서 프로파간다를 읽을 수 있다. 네거티브 전략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프로파간다이다. 물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으나 한국과 분명 관련되어 있는 전쟁-국면에서 이것이 빠지는 경우는 없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파간다가 나타났으며 이전 양식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프로파간다에 대한 분석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주장이다 (365).

그의 주장을 더욱 의미있게 하는 것은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의 지형도를 구체적으로 그려낸 2부의 내용이다. 그의 '개념 정리'는 우리가 흔히 프로파간다와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이데올로기, 기만, 과장, 적대의식과 같은 요소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사법, 신화, 상징'에 대한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을 통해 저자는 이들이 어떻게 프로파간다를 구성해내는지를 정교하고 해박하게 설명해낸다.

"프로파간다는 어디에나 있다. 전체주의 정권에서 선전이 충만한 것은 명백하게 보이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좀 더 은밀하다(364)." 그래서 저자는 '프로파간다'라는 개념에 대한 종합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를 우리에게 내놓았다. 이제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들 사이에 녹아있는 프로파간다를 읽어내자. 그리고 프로파간다로 세상을 읽어내자. 저자가 내놓은 개념을 좀 더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 괄호 안의 숫자는 인용된 페이지임.

▲ 원서의 표지 ⓒ 박순석




니콜라스 잭슨 오쇼네시
(Nicholas Jackson O'Shaughnessy)

: 런던 대학교 경영학부 마케팅 전공 교수이다. 현재 '예술, 제조 및 상업의 장려를 위한 왕립학회(RSA)'의 펠로이며, <정치 마케팅 저널(Journal of Political Marketing)>의 선임편집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마케팅 분야에서 7권 이상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냈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주의의 특징적인 표현형인 마케팅을 통해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광고와 설득 커뮤니케이션: 광고는 어떻게 소비자를 설득하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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