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갓 태어난 강아지의 아빠는 누구일까

묶인 채로 임신과 출산을 감당한 마루에게 바치는 글

등록|2009.11.22 15:59 수정|2010.01.19 17:55

▲ 뭐야, 누구야, ⓒ 김수복



막내아우 결혼식을 치른다고 나도 나름 긴장했던 모양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흘 나흘째나 계속 아침이 괴롭다. 날이 밝았다는 것을 알겠는데도 일어나기가 싫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왼쪽 오른쪽 뒤집어가며 끙, 끙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내는 나 자신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리를 멈추지는 못한다. 만일 어머니가 옆에서 일어나는 기척을 내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그렇게 뒹구는 자세인 채로 하루를 좋게 보내고 말 것이다.

그렇다. 요 며칠 계속 어머니가 나를 깨우신다. 일어나라는 말도 없이 일어나게 하신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지면, 나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새나라의 어린이는" 어쩌고 소리를 질러가며 벌떡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 소리에 어머니는 놀라서 "어매 깜짝이야" 하시는데 그 앞에는 언제나 이불이 예쁘게 개켜져 있다. 신기하다. 양말은 곧잘 뒤집어 신기도 하고 짝짝이를 신기도 하면서 이불은 어쩌면 그렇게도 가지런히 개켜놓을 수 있는지 나는 볼 때마다 의아해서 한참이나 서 있곤 한다.

밤새 마루가 새끼를 낳았다

오늘도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데 밖에서 뭔가 낯선 소리가 들린다. 여러 마리의 모기가 아주 가까이에서 앵앵거리는 것 같기도 한, 아주 멀리서 확성기로 뭔가 효과음을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심상찮아서 귀를 기울이고 서 있는데 퍼뜩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혹시, 혹시? 총 맞은 토끼처럼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세상에, 어머나 정말이다. 맞다. 마루가 밤새 새끼를 낳았다.

본디 개를 기르고자 해서 데려온 녀석이 아니었다. 내가 워낙 생활이 불규칙해서 언제 어디를 가게 될지, 가면 며칠이나 혹은 몇 달이나 밖에서 지내다 올지 알 수 없는 까닭에 동물을 집에 두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면서 아주 규칙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와 늘 함께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궁리 끝에 강아지를 입주시키기로 했다. 진도견 잡종이라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고, 어쨌든 갓 젖을 뗀 녀석들로 암수 한 쌍을 데려왔다. 이름은 마루1, 마루2라고 아주 간소하게 지었다. 마루란 고갯마루 산마루 할 때의 그 마루이기도 하고 평평한 바닥을 뜻할 때의 그 마루이기도 하니 간소하지만 욕심을 좀 많이 낸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어머니는 마루 녀석들과 더불어 한 달 정도는 좋게 잘 지냈다. 둘 다 색깔이 하얗다 보니 쌀 같다는 둥, 눈 같다는 둥, 나로서는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아주 참신한 표현으로 어머니는 강아지들을 상찬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 달쯤 뒤에 수컷은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장염에 걸려 이틀 정도 고생을 하다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본래부터 강아지는 한 마리였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홀로 남은 암컷을 대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등등 제법 심각한 의문을 만지작거리는 기회를 갖기도 했었다.

치매 어머니의 친구가 된 마루, 그런데...

▲ 이렇게도 어렸던 애가 ⓒ 김수복


문제는 홀로 남은 암컷 마루가 어느새 강아지 티를 벗어나면서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온 집안을 쏘다니며 찔끔찔끔 영역표시를 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그러나 이불이든 베개든 옷가지든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흔들어서 찢어발기는 것은 용서가 안 되었다. 게다가 녀석은 어머니의 손을 물어뜯기도 하고 발등을 발톱으로 긁어 피를 흘리게도 했으며, 밤이면 잠자는 사람들 배 위로 뛰어다니는데 그 무게가 여간 아니어서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아이고 나 무서워. 무서워."
"어매 또 왔네. 저리 가. 저리 가."

강아지는, 아니 개는 이제 어머니의 친구가 아니었다. 어머니를 공포에 떨게 하고, 울게 하고, 구석으로 자꾸 숨어들게 만드는 무서운 침입자였다. 불청객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마루를 밖으로 내놓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내놓고 보니 더 많은 문제가 생겼다. 다시 실내로 들어오고자 하는 칭얼거림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당이 넓다 해도 담이 없이 생울타리이다 보니 언제라도 제 마음이 내키면 마을로 나가서 쏘다닐 수 있었다. 쏘다니다 보면 남의 고추밭이며 땅콩밭이며 아무 데나 들어가서 난리를 피운다. 뿐만이 아니다. 옆집에서 개장사에게 팔 목적으로 수십 마리의 개를 작은 철제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는데 마루가 툭하면 그쪽으로 가서 갇혀 있는 개들을 구해내고자 하는 것인지 조롱을 하는 것인지 하여튼 왔다갔다 하는데 그때마다 갇힌 개들이 왕왕 월월 컹컹 짖어대서 온 마을을 뒤집어놓는 것이었다.

"집이 개새끼 묶어놓시오 잉. 오징어에다 쥐약 잔뜩 발라서 여기저기 뿌려놓을 것인게, 알아서 하시라고요."

개 사육장 주인의 그 말이 아니었어도 묶어둘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만 선뜻 나서지지가 않아서 오늘, 내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마루는 개 줄에 묶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루 너, 혹시 임신한 거니?

아마 두 달 정도 서로 다른 고생을 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우는 소리가 안쓰럽고 끔찍해서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녀석은 밤만 되면 여우처럼 길고 날카로운 소리로 내게 항의를 해대느라 역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길들여져 갔다.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녀석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한눈에 그냥 알아볼 수 있었다. 얘가 어른이 되었구나. 신랑이 필요할 때가 되었구나. 녀석을 볼 때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면 잊어버리는 날이 며칠이나 흐르고 또 몇 주일이나 흘렀던가 어쨌던가.

어느 하루 먹이를 주려고 다가서는 내게 두 발을 번쩍 들고 칭얼칭얼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녀석의 속살이 전보다 이상하게 돋보인다. 털이 빠진 것도 아닌데 꼭 털이라도 빠진 것처럼 두 줄로 늘어선 젖꼭지가 털 밖으로 툭툭 불거져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신체 전반이 부풀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 어느 날 보니 이렇게 배가 불러 있더니 ⓒ 김수복



"너 혹시, 혹시 응? 임신한 것이냐? 정말로 그런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확신은 안 섰다. 녀석은 처음 개줄에 목이 묶인 이후 한 번도 그 줄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임신을 해? 아니야, 아닐 거야. 하지만 녀석은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젖이 커지고 배도 커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의심이 바보짓이다.

"너 남편이 누구냐, 응? 말 안 할래?"

녀석을 볼 때마다 입으로는 그렇게 한 마디씩 우스개소릴 내놓고 있었지만 마음은 글쎄, 뭐라고나 할까, 우울까지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그 근처 어디를 배회하고 있었다. 줄에 묶인 상태에서 어떻게 임신에까지 이르렀을까. 그 부자유와 그 굴욕감을 내가 역지사지를 수만 번 한다 해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 상황이 결코 편안함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정도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아릿아릿해지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아직 너를 풀어줄 수는 없어. 너 몸 풀 때가 되면, 그때는 틀림없이 이놈의 개 줄을 풀어주마. 듣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나는 겨우 그런 약속이나 하는 것으로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쩌면 최소한의 예의라고나 해야 할 그 약속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찢겨진 담요, 출산의 고통을 혼자 버텨낸 마루

막내아우 결혼식장으로 가기 전에 담요 한 장을 넣어준 것이 내가 마루의 출산준비랍시고 해준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한 장의 담요조차도 마루에게는 그리 썩 좋은 것은 아니었던가보다. 불에 타기는 잘해도 사람이 손으로 찢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그 질기디질긴 담요가 토막토막 찢겨진 채로 출산이 끝난 개 집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 오늘은 또 이렇게 새끼를 낳고 기진맥진해서 누워 있다 ⓒ 김수복




그러니까 마루는 밤새 그 질긴 담요를 입으로 물고 발로 당겨서 찢고, 또 찢고 그렇게 해서 태어날 아이들의 누울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 노고가 얼마였을지는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다만 일이 모두 끝난 뒤의 상황을 보면서 어렴풋이 유추나 해볼 따름이다.

멀리서 내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뛰쳐나와 꼬리를 흔들고 앞발을 쳐들어대던 녀석이 집 앞으로 바싹 다가섰는데도 축 쳐진 채로 누워만 있다. 눈을 뜰 힘도 없는지 꼭 감은 채로 온 몸으로 숨을 쉬고 있는 어미에게 달라붙어 새끼들은 젖을 빤다. 이것은 무엇이냐.

새끼 한 마리를 손으로 들고 보니 탯줄이 아직 촉촉하고 물렁하다. 짐작컨대 새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안에 진통과 출산을 했을 것 같다.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마루는 초산인즉 보나마나 고통이 상당했을 것이고 그 고통을 외부로 표출했었을 것이다. 게다가 목이 줄에 묶인 채로, 신음소리를 내는 한편 새끼가 나오면 눕힐 자리를 마련하느라 담요를 찢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까맣게 모르는 채로 이불이나 뒤집어쓴 채 끙, 끙, 앓는 소리나 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미안하다. 너무 많이 미안하다. 무엇보다 목이 묶인 채로 임신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고 새끼까지 낳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되도록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일을 꾸며 왔었다는 사실이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도록 미안스럽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져보니 막내아우 결혼잔치를 끝내고 남은 것을 가져왔던 돼지고기 수육이 제법 있다. 그것을 냄비에 넣고 식은밥을 넣고 물을 붓고 끓이다가 된장도 한 숟갈 넣어 팔팔 끓인 다음 찬물에 냄비채로 넣어 식기를 기다렸다가 마루에게 주니 녀석은 그것도 고맙다고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대며 금방 먹어치운다.

아, 음, 오늘의 이 사건을 나는 아마 꽤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더불어 밉살스런 사람에게 아무 반성 없이 써 왔던 "이런 개 같은..."이런 따위 소리는 앞으로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도대체 이 아이들 아비는 누구일까.

▲ 뭔 개밥을 사람 먹는 냄비에 주느냐고 옆집 할머니는 야단이시지만 글쎄, 안 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서 늘 이렇게 준다. 지금은 이를테면 첫국밥을 먹고 있는 셈이다. ⓒ 김수복



▲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 김수복




▲ 기진맥진 ⓒ 김수복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