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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는 인간들은 모두 꺼져버려라!

[리뷰] 카를르 아데롤드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등록|2009.11.21 10:54 수정|2009.11.21 10:54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겉표지 ⓒ 열림원

세상을 살다보면 짜증나는 일이 많다. 당장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다보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런 상황과 마주한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나의 주문만 늦게 받거나 음식이 유독 늦게 나올 때, 지하철 안에서 어떤 사람이 커다란 목소리로 장시간 통화할 때 우리는 짜증이 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내가 선 줄만 계산이 천천히 진행될 때, 보도에서 여러 명이 한 줄로 서서 느릿느릿 걸어가며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때도 짜증이 난다.

이럴 경우 짜증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느긋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맘 편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질 급한 사람은 터지는 분통을 속으로 꾸역꾸역 누르고 있을 것이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참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될 때, 사람들은 요란하게 소리지르면서 화를 낼지도 모른다. 물론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해결은커녕 자기만 정신나간 사람 취급받을 가능성이 많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짜증나는 사람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의 주인공도 이런 상황에서 짜증이 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계속 잔소리를 하거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을 때 짜증이 난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운전을 하며 전조등을 깜박이는 인간, 공원에서 멋대로 아이들을 뛰어놀게 만드는 젊은 부부에게도 화가 난다.

주인공은 그런 상황의 모든 책임은 바로 그들에게 있다고 단정 짓는다. 도무지 생각이란 것을 안하고 살며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했으면 그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열받은 주인공은 그런 인간들의 명단을 수첩에 적어놓고 한 명 한 명 직접 제거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분내키는 대로 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공에게도 개념과 용어가 정립된다. 주인공은 그런 생각없는 인간들을 가리켜서 '짜증나는 씹새'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 짜증나는 씹새들이 도대체 왜 생겨나는지, 유전적인 요인인지 환경적인 문제인지 고민한다.

씹새들도 유형별로 분류한다. 센티멘탈씹새, 어리버리씹새, 유전적씹새, 은퇴씹새 등. 주인공은 어떤 유형이건 최소한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확신한다. '한 번 씹새는 영원한 씹새'라는 점이다.

주인공이 씹새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다. 이들은 결코 교화되거나 개과천선하지 않는다. 사회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원히 인생에서 퇴장시키는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대상자들을 죽이고 사고 또는 자살로 위장한다. 대놓고 다가가서 권총을 쏘는 경우도 많다. 동네 가게에서 새치기를 하는 할머니,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폭주족, 커다란 개를 그냥 풀어놓는 아저씨 등. 주인공의 앞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짜증나는 씹새로 변할 수 있다. 누가 주인공에게 직업을 물어보면 "짜증나는 씹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일을 남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지는 못하겠지만, 주인공은 확신이 있다. 모든 사회의 역사는 짜증나는 씹새들과의 끝없는 투쟁의 역사이며, 권력을 남용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씹새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거침없이 살인행각을 해나가지만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도 남들이 보기에 짜증나는 씹새가 아닐까?

경찰의 수사를 피해가는 주인공

씹새들에 대한 주인공의 활약은 1년이 넘게 계속된다. 그동안 죽인 사람들만해도 100명이 훌쩍 넘는다. 이 정도면 거의 기네스북에 오를 수준이다. 단순한 연쇄살인이 아니라 대량살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범죄소설의 역사에서도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대형 살인범이 등장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이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 범죄를 추적하는 형사의 치밀한 추리도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볍고 유쾌하다. 잘 만든 범죄소설의 재미가 아니라, 읽다보면 그냥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재미다.

사람들은 화가나면 "다 죽여버려!"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말하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천지차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참지 못하고 살인을 벌이지만, 좀처럼 경찰의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고야 만다. 그때 주인공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에게 "인생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해치우기 시작했다"라는 말을 늘어놓는다. 해치우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 셈이다.
덧붙이는 글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카를르 아데롤드 지음 / 강미란 옮김. 열림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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