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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271) 선진국적

― '선진국적인 상식'과 '잘사는 나라처럼 생각하기'

등록|2009.11.21 15:18 수정|2009.11.21 15:18

- 선진국적인 상식

.. 가난한 나라에서는 구걸이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선진국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129쪽

 '구걸(求乞)'은 '동냥'으로 다듬고, "인간(人間)의 정신(精神)"은 "사람들 마음"이나 "우리 마음"으로 다듬습니다. "상식(常識)을 가진"은 "생각을 하는"으로 손질하고, '별(別)로'는 '거의'나 '그다지'나 '얼마'로 손질해 줍니다.

 ┌ 선진국적 : x
 ├ 선진국(先進國) : 다른 나라보다 정치ㆍ경제ㆍ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
 │   -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다 /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다
 │
 ├ 선진국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
 │→ 선진국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 선진국다운 생각을 품는 사람
 │→ 잘사는 나라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 잘사는 나라처럼 생각하는 사람
 └ …

'선진국적'과 같은 낱말을 쓴다면, 이와 같은 꼴로 '후진국적'이라는 낱말을 쓰겠구나 싶습니다. 우리한테는 '같은'이나 '다운'을 붙이는 말마디요 말버릇이요 말흐름이요 문화이지만, 이러한 버릇과 흐름과 문화를 죄 버리고 그예 '-적'만 즐겨 붙이는구나 싶습니다. 비슷한 꼴로 '개발도상국적'을 쓸 테고, '중진국적'이라느니 '외국적'이라느니 '이국적'이라느니 '국가적'이라느니 할 테지요.

 ┌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다 → 앞선나라가 되다 / 잘사는 나라 무리에 들어서다
 └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 → 앞선나라 돈과 재주 / 잘사는 나라 돈과 솜씨

 생각해 보면, '앞선나라-뒤선나라'나 '앞장선나라-뒤처진나라'처럼 새말을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말을 빚어내어 써도 괜찮습니다. 아니, 이렇게 새말을 빚어내면서 차근차근 말살림을 가꾸어야 우리 말이 발돋움하고, 빛이 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先進國'이라는 한자말이 처음부터 '先進國'이었겠습니까. 이런 낱말이 처음부터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낱말을 새로 빚어내야 할 까닭이 있고 쓸모가 있으니 빚어냈을 뿐입니다. 세상 어느 한자말이든, 또 세상 어느 알파벳말이든, 그때그때 까닭과 쓸모에 따라 새롭게 낱말 하나 일구어 냅니다.

 다만, 한국사람들은 한국땅에서 한국넋을 키우며 한국말을 가꾸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 말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일이란 드뭅니다. 바깥말을 끌어들여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서 생각하거나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나라밖으로 나가서 나라밖 생각과 이야기에 빠져들거나 파묻히기 일쑤입니다.

 ┌ 동냥이 사람들 마음을 좀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 동냥이 우리 넋과 얼을 좀먹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 없다
 ├ 동냥 때문에 우리 마음이 좀먹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 …

 부질없는 생각이 아닌가 싶은데, 우리 가운데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옳고 바르게 쓰지 않는 일이 우리 넋과 얼을 좀먹는 짓임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알차게 일구지 않는 일이 우리 생각을 좀먹고 있음을 알아채는 사람은 얼마 없지 싶습니다. 우리 마음을 쓰고 우리 몸을 움직이며 우리 생각을 가다듬어 우리 말글을 북돋우지 않고서야 우리 터전이 아름다이 거듭나면서 우리 삶이 아름답게 새로워질 수 있음을 깨닫는 사람은 몇 없으리라 봅니다.

 가만히 따지면,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알뜰살뜰 여미지 않아도, 다들 먹고살기에 아무 걱정이 없는 듯 보입니다. 우리 마음밭을 일구며 우리 글을 싱그럽게 엮어내지 않아도, 누구나 놀고 즐기기에 어떠한 근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우리 말글이 아주 형편없이 뒤떨어지는 줄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대학교를 다닌다 해서 우리 말글을 갈고닦거나 가다듬을 줄 아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고 느낍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생각을 깊이깊이 하면서 산다 할지라도, 우리 삶 모든 일에서 밑바탕이 되는 말글을 슬기롭고 알맞게 돌아보거나 보듬는 사람을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가난한 나라, 못사는 나라 / 잘사는 나라
 └ 빈곤국 / 선진국

 보기글을 들여다보면 첫머리에는 '가난한 나라'라 했습니다. '빈민국'이나 '빈곤국'이라 하지 않습니다. 뒤쪽에는 '선진국'이라 적었지만, 뒤쪽을 '잘사는 나라'로 적었다면, 뒤쪽에 '-적'붙이 낱말이 튀어나올 일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앞에서 '가난한'이라 적었다면, 뒤쪽은 '잘사는'이나 '넉넉한'을 넣어야 앞뒤가 잘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말마디가 살고 말느낌이 맑습니다. 차근차근 우리 말마디를 살려야 차츰차츰 밝은 말줄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 가난나라 / 넉넉나라
 └ 거지나라 / 부자나라

 가난하여 말 그대로 '가난뱅이'이듯이, 가난하니 말 그대로 '가난나라'입니다. 넉넉하니 말 그대로 '넉넉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넉넉하여 말 그대로 '넉넉이'가 됩니다.

 꺼벙해서 꺼벙이요, 예뻐서 예쁜이이듯이, 우리는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내어 알맞춤하게 우리 이름 하나 빚어내면 됩니다. 우리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으면서 튼튼하고 싱싱하게 올바른 낱말 하나 가꾸어 내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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