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2분 차이로 삼풍백화점 사고 피한 사람, '생각은 찰나'

구례 사성암에서

등록|2009.11.24 20:48 수정|2009.11.24 20:48

▲ 금강산 보덕암을 닮은 사성암 약사전. 전라남도 문화재 222호로 원효가 그린 마애불을 볼 수 있다. ⓒ 오문수


야! 천국 같구나!

사성암을 방문했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하신 말씀이다. 사성암은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다. 오산(531m) 바로 아래 500m에 자리한 사성암은 544년 (성왕22)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했다. 사성암에는 약사전과 지장전 산신각만 있고 대웅전은 없는 조그만 절이다.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원효, 도선국사, 진각, 의상의 네 고승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개명했다. 오산은 산정상의 암봉이 자라 머리 모습과 흡사해 자라 오(鰲)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한쪽 면을 대고 서있는 약사전은 근방 어떤 절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섬진강을 끼고 도는 구례읍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며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과 하동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금강산 보덕암의 모습과 흡사한 약사전은 강과 들판 깎아지른 산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지옥에 있는 중생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구제하겠다는 서원이 서린 지장전 ⓒ 오문수

▲ 소원바위. 뗏목팔러 하동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소원바위에 한 관광객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붙이고 있다. ⓒ 오문수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육도 중 어디에서 업보를 받아야 할지 몰라 이곳저곳 떠돌다가 49일 째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불교의 사후 세계관이다. 보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사성암에서 49재를 지내고 있다.

스님이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어머니의 영면을 빌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원한과 증오심, 사랑과 부귀영화가 다 부질없는 것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눈으로 보이는 세상 만물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 뿐 아무것도 아닌 공(空)이라는 데 부족한 나는 집착에 시달린다.

어머니를 모신 곳은 지장전. 지장이란 모태가 아기를 잉태하듯이 땅이 만물을 길러내는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뜻한다. 지장보살은 석가가 입멸한 뒤에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온 세상의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제도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 보살이다.

사성암의 온화한 지장보살의 오른쪽에는 현왕탱화가 있다. 현왕탱화는 흔치않다. 죽은 사람의 운명을 재판하는 시왕탱을 보면 갖가지 지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어느 장면이나 지옥의 현장에는 이곳에서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이 있다.

망자를 철판에 뉘여 놓고 쇠못으로 박는 철상지옥, 죄인을 판자에 묶어 세워놓고 창자를 뽑아내는 박피지옥, 혀를 길게 늘여놓고 옥졸들이 쟁기질하는 발설지옥, 끓는 가마솥에 넣는 확탕지옥, 날카로운 칼로 된 산에 던져 넣는 도산지옥, 죄인을 양쪽에서 톱으로 써는 거해지옥, 철판사이에 끼인 죄인을 올라타는 중합지옥, 빙산에 갇혀 추위에 떠는 한빙지옥, 재판이 끝난 죄인들은 육도윤회의 길로 떠나기 위해 머리에서 육도를 뽑아 올리는 옥졸 주변에 모여 다음 길을 준비하는 흑암지옥이 있다.   

지옥도는 지옥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행동을 바르게 하여 지옥의 고통을 맛보지 않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선행을 하고 나아가 윤회를 깨뜨리고 해탈을 이루어야 하겠다는 다짐이 지장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회는 근본적으로 마음 곧 인간 의식의 문제이며 인간의 내부에서 파악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의식의 변혁을 통해 고통의 세계인 현실은 곧바로 열반이라는 이상 세계로 바뀔 수 있다. 종무소에서 일하는 보살이 전하는 말이다.

"윤회는 생명의 무한성을 상징하는 것인데 마음은 찰나적으로 바뀝니다. 얼마 전 여기 오신 한 신도가 무너진 삼풍백화점 바로 뒤에 살았습니다. 사고 당시 필요한 물건을 사고 2층 식품부에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순간 짐이 무겁게 느껴져 '에이 그만 집에 가자' 하고 나온 뒤 채 2분도 안 돼 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마음은 찰나 순간의 맘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불교에서 나 자신을 낮추라는 것은 깨닫는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낮추면 주변 사람들이 높아져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진다는 의미입니다."  

▲ 마애약사여래불. 원효 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전설이 서린 불상으로 약 25m의 기암절벽위에 음각돼 있다. ⓒ 오문수


▲ 사성암에서 바라본 섬진강으로 곡성쪽에서 흐른다. 반대쪽에는 구례읍과 지리산이 한눈에 보인다. ⓒ 오문수



▲ 사성암에서 내려다 본 구례읍 전경. 뒤편에 지리산이 보인다 ⓒ 오문수


약사전은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제해주는 약사여래를 봉안한 전각이다. 사성암 약사전은 절벽에 한쪽면은 대고 반대쪽은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을 세워 받친 전각이다.  절벽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파헤쳐 그렸다는 마애불이 조각돼 있다. 

절을 찾은 이들이 마애불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를 해 사진 찍기가 미안할 정도다. 무슨 기도를 올릴까?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해방? 아니면 축문? 장수기원? 기와장에 써진 기도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절을 찾은 이들의 갖가지 기원문이 씌어있다. 기원문만 읽어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교사임용고시에 합격을 기원 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승진을 기원합니다. 취직을 기원합니다"

험한 세상에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빈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