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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출구전략 유예, 지방선거 때문?

전문가 "고용부진이 문제라면서 건설경기 부양에만 힘써"

등록|2009.11.25 14:45 수정|2009.11.25 14:45

▲ 부동산 등 자산 시장 거품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출구전략의 시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최근 고분양가 논란을 일으킨 서울 고덕동의 '고덕 아이파크'. ⓒ 선대식


국책연구기관의 출구전략 주문에도 이명박 정부가 시기상조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출구전략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는 "고용이 늘지 않아 지표상의 경기 회복세만으로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것은 이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22조 원을 4대강 사업에 쏟아 붓는 등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부동산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에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부진을 핑계대면서도 거품을 일으키고 경기부양에 나섰다"며 "경기부양책을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금리 정상화(인상) 등의 출구전략 시행을 통해 자산시장 거품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성급한 출구전략은 자산시장 거품 붕괴→가계 부실→제2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출구전략을 미룰수록 자산시장 거품이 커져, 거품 붕괴에 대한 충격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KDI, 출구전략 주문... "저금리로 가계 부실과 자산 시장 거품 부작용"


지난 22일 한국개발연구원이 사실상 출구전략을 주문하면서 출구전략 시행 조건과 시기에 대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구원의 뜻은 고용·내수·투자 등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탓에 금리인상 등의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이명박 정부의 방침과 충돌하는 것이다. 정부는 금리가 조기에 인상될 경우,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가계와 중소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연구원은 내년 한국 경제가 5.5%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자산 시장 거품에 대한 우려를 지나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현재의 확장적인 정책기조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감안해, 저금리 기조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연구원은 밝혔다.

저금리가 경기 후퇴를 막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지만, 가계 빚 증가와 그에 따른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가계들이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쉽게 대출을 늘린 탓이다.

최근 대출규제로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진정됐지만, 저금리가 이어지면 부동산 거품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연구원의 지적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이 가시화된 때에, 뒤늦게 금리를 인상하면 빚과 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출구전략의 유예는 오히려 한국 경제 회복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저금리로 인해) 현재 주택 담보대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경기 회복에 따른 정책 정상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지난 11일 "경기회복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자산 가격 상승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정상화에 대한 결정시점도 당초 예상시점보다는 앞당겨져야 한다"고 밝혔다.

고용 부진 걱정하면서 건설경기 부양에 올인... 지방선거 때문?

▲ "출구전략을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고용 문제 때문이라면, MB정부는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 4대강 사업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 청와대


이명박 정부가 출구전략을 미루는 이유는 내년 지방선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고용 부진을 우려하면서도 정작 근본적인 고용 대책을 내놓지 않고, 건설 경기 부양에만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부진이 문제라면, 22조 원을 4대강 사업이 아닌 적극적인 고용정책에 쏟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또한 출구전략을 내년 상반기에 시행해야 한다는 관료들의 발언을 보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출구전략을 미룰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출구전략을 미루면 미룰수록 자산 거품에 대한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출구전략의 시행을 주문했다. 민간의 회복을 기다리기보다는 출구전략을 통해서 민간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저금리로 부실기업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보다 금리 정상화를 통한 구조조정으로 경제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금리가 인상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서민·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이 전제되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4일 '출구전략, 언제가 적기인가' 좌담회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구조조정을 미루고 재정을 쏟는 정책을 오래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기업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정부에 대한 의존만 커졌다"고 전했다.

신동진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고용이 늘지 않는 것과 관련, 출구전략을 유예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구조적인 문제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구조조정을 해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문제 때문에 출구전략을 계속 미루면 안 된다"며 "금리 인상 시 발생되는 중소기업과 서민 가계에 대한 대비책을 빨리 내놓고,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자산 거품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급한 출구전략 경계 목소리... "빚 갚을 능력부터 회복돼야"

물론, 출구전략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부동산 거품의 심각성은 인정하지만,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24일 '2010 신한금융투자 리서치포럼'에 참석해 "자산거품을 그대로 두면 더 부풀어 오른 후 꺼지면서 또 한 번 커다란 경기하강이 올 수 있다"면서도 "성급한 출구전략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의 소득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황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는 큰 문제가 없다"면서 "하지만 급하게 금리를 올리면 결국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종학 교수는 "금리인상에 따른 더블딥(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경제 위기에 다른 나라처럼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자산 거품이 심각한 상황에서 거품 붕괴를 두려워해 출구전략을 미룬다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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