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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나서는 개구리의 설렘이 보인다

[음반의 재발견⑩] 인디밴드 '순이네 담벼락'의 1집, '정저지가(井底之歌)'

등록|2009.11.25 09:46 수정|2009.11.26 16:46

▲ 2009년 11월, 데뷔음반 [정저지가(井底之歌)]를 발매한 '순이네 담벼락' ⓒ 순이네담벼락홈페이지


삶을 살아가다가 때때로 비어있는 공간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공간은 어떨 때는 너무 작아 바쁜 일상에 그대로 묻혀버리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너무 커서 며칠간 쳐진 어깨 그 어느 부분에서 진득하게 남아 하루를 짓누르기도 한다.

음악을 찾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 누구는 그곳에서 일탈을 찾고, 누구는 분위기를 얻어간다. 누구는 긴 출근길에서 시간을 때우기도 하고, 누구는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미끈한 외모의 누군가를 보며 행복을 품는다.

하지만 그 음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삶의 빈 공간의 메움이라 한다면, 최근 새롭게 등장한 이들 인디밴드에 대해 나는 그 길을 묻고자 한다. TV속에 화려한 아이돌 그룹의 춤사위에도, 귓전을 맴도는 기계음 섞인 댄스튠에서도 발견치 못한 나만의 소박한 보석의 존재는 사실 그렇게나 소중한 것이다.

순이네 담벼락 1집 <정저지가(井底之歌)>

▲ 순이네 담벼락 1집 [정저지가] ⓒ 순이네담벼락

올해 11월 첫 음반 <정저지가(井底之歌)>를 발매한 '순이네 담벼락'의 소리들은 그래서 일상 안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올해 발매된 여러 음반 가운데 가을이후 집중적으로 발매된 오소영, 생각의 여름, 양양의 음반들 역시 그랬듯이 이들의 조용한 읊조림은 결국 일상 밖에서 누가 얼마나 청자의 가슴속에 울림을 강하게 울리는가를 내기한다. 그들의 선배들이 그랬듯 그것은 '공감'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공감의 키워드를 순이네 담벼락의 음악은 현실보단 이상과 꿈을 통해 이야기한다. 미래보다는 과거를 추억하고, 힘내라는 응원가 대신 'No Brave'라는 곡을 통해 나도 너와 같이 겁 많고 소심한 그 누군가일 뿐이라는 자학적인 가사로 비집고 들어온다. 뿌연 수채화 같이 뭉뚱그려 먹먹하게 들어온다.

거기다 파스텔로 대충 칠한 그들의 소리는 그래서 그런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적어도 내가 세상을 통해 배웠던 승리의 공식은 안 되도 되게 하라는 불굴의 진리와 개인의 신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들 음악은 성공하지 못한 누군가의 기백 없는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음악 속에 들어가 있는 화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울 속에 비쳐져 있는 그 덥수룩한 머리를 한 손으로 쓸며 담배를 입에 문 감성적인 사내는 언젠가 내가 우리 집 거울에서 본 그 사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음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아침마다 그럴듯한 양복과 폭 좁은 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껍데기의 나를 볼 때 느끼는 가식적인 자존감은 그렇게 이 음악의 흐름속에 비참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조우한 그 사내는 언젠가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은 듯 손을 흔들며 그곳에서 그렇게 홀로 서있다.

때로는 유년시절 떡볶이를 나눠먹던 소년으로, 때로는 방황하던 학창시절에 청년으로, 때로는 뒤늦은 사랑에 얼굴 붉히는 지금의 모습으로.

공감이다. 그렇게 강력한 파워로 만들어진 3단 합체 로봇은 칼을 집어 들어 저 앞에 있는 현실의 거대한 악당로봇과 싸우지는 못하지만, 나무로 만든 목검으로 다져진 우정만큼은 변치 않으리라. 그리고 함께 영원한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꾸는 그곳, 완성되는 저곳

▲ 많은 인디 밴드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음반도 '자체제작'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그들의 꾸는 꿈도 그곳에서 출발 하듯이. ⓒ 순이네담벼락홈페이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순이네 담벼락이라는 밴드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은 그렇게 꿈을 지향한다. 보컬과 기타의 백수훈, 베이스의 최동일, 드럼에 천승윤, 피아노의 성종훈의 라인업은 각자가 이 불안정한 사회의 파고 속에서, 그 중심을 아련하고도 순수한 음악의 내면에 정박해 닻을 내리며 의기투합해 있다.

88만원 세대. 따지고 보면 높으신 어른들이 팔짱끼고 불어대는 휘파람에 조련 받은 동물처럼 휘둘리는 불안한 20대 끝자락에 선 청년들의 꿈은, 사실 그곳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음반 마지막에 실린 'Superman'이라는 곡은 그래서 꿈을 꾸다 깬 현실의 아이가 두려움에 울부짖는 그 한 서린 울음과 닮아있다.

2005년 결성되어 커다란 빛을 보지 못했던 그들이 경험했던 벽과 스스로의 보이지 않는 타협 혹은 자조 속에서 완성된 데뷔앨범 <정저지가(井底之歌)>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재미없고 심심한 미디엄템포의 곡을 그 누가 들을 것인가 하며, 멤버들끼리 맞대어 서로 쓴웃음 지어보여도 그들 마음 한 구석에는 음반의 제목처럼 우물을 나서는 개구리처럼 설레는 가슴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음악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들의 음악은 그렇게 청자의 빈곳을 메움에 부족함이 없다. 누구 말마따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다. 마모되어 쓸어져도 담벼락에 쓰인 우리들의 낙서 같은 이야기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것이 전해지는 소리. 그것이 확장되는 곳에 이들의 음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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