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는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얗다. 이 말은 미국에서 교포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겉은 황색 피부의 아시아인이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은 백인 미국인과 같기 때문이다. 꽤 그럴듯한 비유이지만 바나나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그다지 차분하거나 세련되어 보이진 않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내가 만난 대부분의 교포들은 바나나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기분이 썩 좋진 않다고들 말했다.
통상 재미교포를 가리켜 바나나라고 하지만,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최소한 십 수 년 이상을 그곳에 살았다면 바나나로 봐도 무방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이미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훨씬 편하고 미국 문화가 더 몸에 더 배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나나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한국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하느냐이다. 미국에서도 꾸준하게 부모나 한국 친구들과 함께 한국어 사용을 게을리 하지 않은 교포들은 꽤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반면 중학교 때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이민을 갔는데도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어를 한마디만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교포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도는 그들의 한국어 소통능력과 거의 비례한다. 역시나 언어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
시애틀에서 꽤 많은 교포들을 만나보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그들이 '깬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하다. 처음엔 어린아이처럼 한국어를 쓰니 사람 자체가 순수해 보여 그들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가도 어느 순간 속사포 영어를 쏘아대며 그제야 자기 할 말을 마음껏 하는 걸 보면 괜히 속은 느낌이 들고 이중인격자 같은 인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언어의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 나라에 대한 정체성이 없을 때 백인들과 함께 똑같이 공부하고 뛰어 놀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들의 진짜 조국이 한국이고 국적에 상관없이 자신은 한국인이어야지 않나,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아직도 미국사회에 많이 존재하는 인종차별 때문에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많은 바나나들이 이런 정체성의 혼동과 미국 백인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때문에 커가면서 피해의식이나 과민한 성격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무언가 달라 보이고 깨는 진짜 이유이다.
분명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만나 본 재미교포의 대부분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한국사회에 끼고 싶어 했다. 이것이 한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고 단정을 짓기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은 한국을 더 알고 싶어 하고 한국어를 더 유창하게 하고 싶어 한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것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결정지어진 것이지 획득의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국적 하나를 두고 자부심을 갖거나 자랑거리로 두는 교포는 없다. 슈퍼 파워 국가인 미국에 산다고 그들 개개인이 모두 부유하거나 행복하다는 보장은 더욱 없고 말이다.
오히려 그들이 나중에 자신들이 바나나라는 것을 알고 한국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당연한 영어실력과 어눌한 한국어가 지나치게 환대 받는 것에서 얼떨결에 안일의식과 특권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맞겠다. 단적인 예로 그들의 한국어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겨우 '그것 밖에'가 아니라 '그 정도나'라는 칭찬으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바나나=영어 잘하는 교포' 정도로 너무 쉽게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이해하려고만 한다.
유명 연예인들 중에서도 바나나가 꽤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한국말이 서툰 미국 시민권자이고 군대를 가지 않으며 그 중 얼마는 언젠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 많고 친절하고 영어에 미친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쉽게 열광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바나나 따위가 감히 우리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몇 바나나 연예인들은 그릇된 말 한마디, 행동거지에 엄청난 융단폭격을 받거나 심지어 한국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그리고 꼭 그들의 죄목엔 언제나 '바나나'라는 데서 출발한 이런 저런 이유가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때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나나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적 운명을 두고 괜한 미움을 받는다면 언제든 미국 사회로 다시 복귀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게다. 참 돌아가기는 쉽지만 심장으로 느껴지는 조국이 아닌 미국으로 말이다.
그 비난과 제재들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답이야 누구든 명확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바나나들에게도 평생을 애매한 공통집합 속에서 살아가며 겪는 그들만의 답답한 심정이 있음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통상 재미교포를 가리켜 바나나라고 하지만,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최소한 십 수 년 이상을 그곳에 살았다면 바나나로 봐도 무방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이미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훨씬 편하고 미국 문화가 더 몸에 더 배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나나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한국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하느냐이다. 미국에서도 꾸준하게 부모나 한국 친구들과 함께 한국어 사용을 게을리 하지 않은 교포들은 꽤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반면 중학교 때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이민을 갔는데도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어를 한마디만 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교포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도는 그들의 한국어 소통능력과 거의 비례한다. 역시나 언어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
시애틀에서 꽤 많은 교포들을 만나보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그들이 '깬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하다. 처음엔 어린아이처럼 한국어를 쓰니 사람 자체가 순수해 보여 그들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가도 어느 순간 속사포 영어를 쏘아대며 그제야 자기 할 말을 마음껏 하는 걸 보면 괜히 속은 느낌이 들고 이중인격자 같은 인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언어의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 나라에 대한 정체성이 없을 때 백인들과 함께 똑같이 공부하고 뛰어 놀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들의 진짜 조국이 한국이고 국적에 상관없이 자신은 한국인이어야지 않나,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아직도 미국사회에 많이 존재하는 인종차별 때문에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많은 바나나들이 이런 정체성의 혼동과 미국 백인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때문에 커가면서 피해의식이나 과민한 성격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무언가 달라 보이고 깨는 진짜 이유이다.
분명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만나 본 재미교포의 대부분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한국사회에 끼고 싶어 했다. 이것이 한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고 단정을 짓기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은 한국을 더 알고 싶어 하고 한국어를 더 유창하게 하고 싶어 한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것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결정지어진 것이지 획득의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국적 하나를 두고 자부심을 갖거나 자랑거리로 두는 교포는 없다. 슈퍼 파워 국가인 미국에 산다고 그들 개개인이 모두 부유하거나 행복하다는 보장은 더욱 없고 말이다.
오히려 그들이 나중에 자신들이 바나나라는 것을 알고 한국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당연한 영어실력과 어눌한 한국어가 지나치게 환대 받는 것에서 얼떨결에 안일의식과 특권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맞겠다. 단적인 예로 그들의 한국어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겨우 '그것 밖에'가 아니라 '그 정도나'라는 칭찬으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바나나=영어 잘하는 교포' 정도로 너무 쉽게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이해하려고만 한다.
유명 연예인들 중에서도 바나나가 꽤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한국말이 서툰 미국 시민권자이고 군대를 가지 않으며 그 중 얼마는 언젠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 많고 친절하고 영어에 미친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쉽게 열광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바나나 따위가 감히 우리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몇 바나나 연예인들은 그릇된 말 한마디, 행동거지에 엄청난 융단폭격을 받거나 심지어 한국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그리고 꼭 그들의 죄목엔 언제나 '바나나'라는 데서 출발한 이런 저런 이유가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때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나나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적 운명을 두고 괜한 미움을 받는다면 언제든 미국 사회로 다시 복귀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게다. 참 돌아가기는 쉽지만 심장으로 느껴지는 조국이 아닌 미국으로 말이다.
그 비난과 제재들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답이야 누구든 명확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바나나들에게도 평생을 애매한 공통집합 속에서 살아가며 겪는 그들만의 답답한 심정이 있음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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