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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사진 찍어주고, 너무 큰 걸 받았어요

[나눔의 행복②] 기아대책기구 캠페인에 동참하며 만난 아이들

등록|2009.12.04 09:30 수정|2009.12.04 09:30
이맘때쯤, 한파주의보가 한번씩 휘몰아칠 때마다 다녀오는 곳이 있다. 장소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만, 가는 목적은 똑같다. 기아대책기구에서 주관하는 저소득 가정의 난방비 지원 캠페인을 위한 사진 촬영이 바로 그것이다. 기아대책기구에서 사진으로 '재능기부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약 4년 정도 지났다. 기아대책기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나 홈페이지에 실리는 사진을 촬영하는 게 내 주요 기부 내용이다. 

잡지사 사진기자로, 방송국 카메라맨으로 돈에 따라, 뉴스에 따라 피사체를 담다보니 내 영혼이 말라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가진 재능(대단치도 않지만)을 대가없이 기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나를 위해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곳의 NGO단체들과 사진과 글, 영상 작업들을 통해 관계를 맺으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전기장판 하나로 다섯 식구가 추위를 견디는 현아네

▲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온 겨울 ⓒ 박영록


올해도 역시, 갑자기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진 11월 초 어느 날 기아대책기구 간사들과 함께 이문동 골목길로 들어섰다. 개미골목이라 불릴 만큼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간 곳은, 낮고 어두운 재래식 주택의 현아네 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현아는 현우(가명 초4), 현호(가명 초3), 막내 그리고 엄마와 함께 산다. 이날 원래는 가족 모두를 촬영하기로 돼 있었지만, 엄마의 일터에서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 막내와 어머니는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가족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발견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이미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혀 있거나, 심하게 기침을 하고 있다는 거다. 대부분의 집이 낡고 온기가 전혀 없어 집안 공기마저 싸늘하다. 게다가 환기마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남들 보다 거의 한 달 먼저 감기를 앓고, 그것이 생활화 되어 한 겨울을 난다. 남동생 현우, 현호도 이미 코 막힘 소리, 쉰 목소리를 내며 감기로 고생하고 있었다.

현아네 집은 방이 여러 개지만 보일러 성능이 좋지 않아 난방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이면 모두 한 방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다섯 식구가 모여 잔다. 사실, 이런 가정들의 겨울 난방비는 의외로 많이 들어간다. 집 자체가 낡아서 외풍도 심하고 난방 시스템의 효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일러를 교체하려 해도 대부분 세를 들어 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수리를 하기가 어렵다. 만약 현아네도 기아대책기구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겨울 내내 차디찬 집에서 몸과 마음을 웅크린 채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 많은 난방비를 어머니 혼자 벌어 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 수줍게 웃는 아이들

▲ 가구라도 있으면 외풍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텐데.. ⓒ 박영록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모두 자는 방은 정말 간소함을 넘어, 마치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양식의 절정을 보는 듯했다. 가구라고는 TV 한 대. 방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무 장식없는 벽과 이불이 깔려 있는 전기장판이 전부인 바닥. 어떻게 다섯 명이 그 좁은 전기장판 위에 몸을 뉘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몸부림에 냉골 위에서 자곤 했을 것이다.

이불 속에 누워있는 현우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자꾸 웃는다. 그리고, 동생은 현호는 쑥스러워 하기도 하고.

"왜 웃어? 뭐가 웃기는 거야? 아저씨가 웃기나 부다."
"그냥…."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만난, 게다가 그다지 착하게 생기지 않은 나에게 굉장히 빨리 다가오는 모습을 보인다. 쉽게 말을 걸고, 쉽게 손을 잡고 심지어 나를 안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누군가가 나를 만나러 와 준다는 것. 내가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그리고 내 꿈이 무엇인지 물어봐 준다는 것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아니면 조부모 밑에서 생활하는, 내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의 특징이다.

"딱정벌레가 죽어버렸어요, 집이 너무 추워서"

▲ 따뜻한 붕어빵이 아이들의 가슴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 박영록


재작년 기아대책기구 난방 지원 프로젝트 촬영 때문에 만난 은지, 은수네가 기억난다.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은지(가명 당시 초6), 은수(가명 당시 초3)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을 지나 밭이랑을 걸어 만난 산중턱 집에 살고 있었다.

방 벽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집안은 진정 '냉(冷)'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차가운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꿈이 뭐야?"
"전 가수가 되고 싶어요!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 하거든요!"
"전 곤충학자! 벌레 기르는 걸 좋아하는데, 딱정벌레를 기르다가 죽어 버렸어요. 너무 추워서."

누군가가 자신의 꿈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꿈에 대해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동생 은수가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이라고 보여주는데, 동갑내기 우리 집 아이에게도 있는 게 아닌가? 내 머리 속에서 '번쩍'하는 느낌이었다.

순간, 은수가 '도와주어야 하는 아이'가 아닌 '내 아들과 같은 아이'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지 나의 3만원을 받아가는 아이가 아닌, 은수도 내 아들처럼 똑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꿈을 이루는데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한 아이였던 것이다.

은수네 방문에는 은수가 지켜야 할 규칙들이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 리스트 맨 밑에는 그 누구도 지키기 힘든, 하지만 은수는 지켜내야만 하는 규칙이 적혀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 않기.'

4년간의 재능기부, 수혜자는 나였다

▲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 않기로 할머니와 약속한 은지, 은수는 올 겨울 원하는 만큼 따뜻한 방에서 지내기를.. ⓒ 박영록

어린이가 자신의 환경 때문에 시작하기도 전에 벌서 스스로 포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 잘못이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라고 넘겨 버리기엔 우리 경제가 너무나 잘 살고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이다.

개인들의 성금과 기업체의 후원보다 정책적인, 저소득층 어린이들 입장에서 필요한 정책들이 확충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어지는 것을 막고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특히 저소득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의 필수적인 조건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겨울이 다가올 때 마다 추운 방에서 밤을 보내는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다.

'어디까지 가봤니'라며 넓은 세상을 보러 떠나라는 항공사 광고에, 나는 '너무 추워서 잠들기 힘든 밤을 지내는 어린이들이 사는 곳을 가봤다'. 때론 '멀리' 가보는 것만큼이나 '깊이' 내려가 보는 것으로도 세상은 넓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기부의 수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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