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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이 익을 무렵

자연이 준 선물

등록|2009.11.26 10:38 수정|2009.11.26 10:38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누군가의 시 중에 "텃밭에 고추가 꽃처럼 예쁘다" 라는 싯귀가 있었다. 지금도 시골의 가을풍경이 그리울 때면 가만히 소리 내어 읊조려보곤 한다. 그러면 가슴 가득 그리운 추억이 고인다.

감꽃가지에 주렁주렁 꽃처럼 매달린 감 ⓒ 김현숙



가을 들녘에 나서면 사방에 감들이 벌거벗은 나무에 꽃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일손이 딸리기도 하지만 감을 수확하는 노동력과 운송비 등 수지가 맞지 않으면 그냥 나무에 달려둔 채로 내버려둔다. 그런 가을풍경들이 타임머신처럼 아득히 먼 어린 시절을 열리게 한다.

여기저기서 한창 곶감이 상품으로 등장해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말랑말랑 선명한 색깔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유일한 간식거리였던 감이 지금은 다른 과일들에 밀려 별 인기를 누리지 못하지만 먹는 방법이 사과나 배 등 다른 과일처럼 단순하지 않고 다양했다.

곶감이 되기 위하여줄지어 있는 감 ⓒ 김현숙



빨갛게 익기 전의 파란 감은 된장물에 우려서 먹고, 잘 익은 감은 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홍시 만들어서 먹고,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곶감도 만들었다. 지금처럼 단감은 흔하지 않았으나 떫은 감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활용했다. 우리 집 곳곳에는 감나무가 많아서 이맘때쯤이면 마당 빨랫줄이나 처마 밑에 감이 제 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채 꽂이에 꽂혀서 줄줄이 서있어 또 다른 가을풍경을 연출했다. 그 옛날 세 끼 밥 외에는 간식이 없는 우리들을 위해 어머니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다. 감나무와 우리는 함께 자랐다.

그때는 공해가 없어서인지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많이도 열렸다. 모양 좋은 감은 일찌감치 임자 만나서 팔려나가고 작고 못난 감들은 그대로 남았다. 그 감들은 유난히 색깔도 고왔다.

낮에는 힘들게 농사일 하시고 밤이면 광주리에 가득 담아놓고 남은 감들을 밤늦게까지 깎으시곤 했던 어머니, 아버지. 고단한 몸으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르고 돌돌 깎여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어보였는지 내게는 마치 놀이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몰래 따라하다가 손 베기 일쑤였다.

주렁주렁매달린 곶감 ⓒ 김현숙



밤잠을 줄여가며 새벽까지 깎아서 10개씩 맞추어 꿰어놓으시면 아버지 몰래 하나씩 빼먹는 게 우리 일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아나는 말랑말랑, 달콤한 그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아버지께서 모르실 줄 알고 한 줄에서 꼭 하나씩만 빼먹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먹고 싶으면 이것저것 손대지 말고 한 가지에서만 빼먹으라고 하셨다. 아,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했는지.

들키지 않으려고 머리 쓴다면서 개수 맞추어 놓으신 것도 모르고 줄마다 다 건드려놓았으니. 그래도 그 다음부턴 열두 개씩, 열세 개씩 꿰어놓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셨었다. 아버지께선 곶감이 다 건조되면 그대로 가운데로 모아 붙여서 상품처럼 솜씨 좋게 보관용으로 만드시곤 하셨다. 지금은 어디서 그 기막힌 맛을 다시 맛볼까.

 껍질 아프게 벗고 나신으로 가을 찬 바람 앞에 서있으면 떫디 떫은 땡감도 바람이, 햇볕이 달디 달게 만들어주었다. 단감은 감히 따라오지도 못할 정도로 당도가 높았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한입 베어 물었다가 떫은맛이 입안에 가득 차버려 고생했으나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그 떫은맛은 어디로 가버리고 말랑말랑 달콤한 맛만 남았다. 떫은 감이 껍질을 벗고 나니까 전혀 다른 맛으로 변했다. 그걸 보면 늘 신기하기만 했었다. 그것은 바람과 햇볕 등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

나도 자연 앞에 옷을 벗으면 감처럼 그렇게 말랑말랑, 달콤하게 무르익을 수 있을까. 오늘따라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메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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