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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성유물을 둘러싼 음모가 펼쳐지다

[리뷰] 핍 본 휴스 <페트록의 귀환>

등록|2009.11.26 16:04 수정|2009.11.26 16:04

<페트록의 귀환>곁표지 ⓒ 문학수첩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세의 유럽에는 성당이 많았다. 그 성당들을 몇 가지 유형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돈 잘 버는 성당과 그렇지 못한 성당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돈을 잘 벌어들이는 성당은 십중팔구 중요한 성유물을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예수를 따랐던 열두 제자의 손가락이라든지, 세례 요한의 치아 같은 물건이다.

아니면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의 조각이나 예수를 감쌌던 수의 또는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던 롱기누스의 창도 좋다.

이런 물건들이 진품이건 아니건을 떠나서, 성당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순례자들을 불러모은다. 당연히 돈도 따라온다. 성유물은 성당의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많은 성당들이 그럴듯한 성유물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문제는 성유물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설처럼 떠도는 성인들의 수난이야기 속에서, 수난의 상징이 될 만한 물건을 발견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에 감춰져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도 장담하지 못한다.

설령 알아냈다 하더라도 어려운 점은 남는다. 성유물에 대한 소문이 퍼져버리면 여러 성당에서 그것을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다른 성당을 제치고 먼저 성유물에 접근하기 위해 당시에도 많은 계략과 음모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런 음모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항상 힘없는 서민들이다.

하루아침에 바뀐 수도사의 운명

<페트록의 귀환>의 주인공 페트록도 그런 음모의 거미줄에 걸려든다. 작품의 무대는 13세기 영국이고 페트록의 신분은 예수회 소속 수도사다. 열여덟 살의 페트록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왁자지껄하게 맥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다음날이 되면 숙취로 고생하고 강의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래도 저녁이면 다시 술을 마시고 밤이 되면 하숙집으로 돌아가 빈대 투성이인 침대에 몸을 누인다. 한마디로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고 별다른 특징도 없는 젊은 수도사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주교의 청지기에게 초대를 받는다. 청지기는 템플기사단 출신으로 십자군 전쟁에도 참가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페트록은 청지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할만큼 낮은 신분이다. 청지기는 그런 페트록을 주교에게 추천한다. 세력가와 손을 잡게 되면 사람의 인생도 하루아침에 확 필 수 있다.

대신에 페트록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주교와의 대면을 끝낸 청지기는 페트록과 함께 성당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청지기는 성당의 부사제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죄를 페트록에게 뒤집어 씌운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페트록은 전력으로 도주하기 시작하고, 청지기는 부하들을 동원해서 그를 쫓는다. 페트록은 두 번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서 맥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영국 밖으로 달아나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도중에도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주교와 청지기는 왜 별 볼일 없는 수도사인 자기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웠을까?

작품에서 묘사하는 13세기의 유럽

영국에서 시작된 페트록의 모험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프랑스를 거쳐서 이탈리아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유럽을 종횡무진하는 스릴넘치는 여행이다.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황량한 아이슬란드, 그 아이슬란드가 안락하게 느껴질 만큼 폐허와 죽음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린란드의 황무지가 펼쳐진다.

빵과 고기, 토사물의 냄새가 가득한 보르도 항구의 거리, 대리석으로 지어진 대성당과 그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괴상한 모양의 종탑을 가진 피사의 풍경도 나타난다. 여정이 계속되면서 페트록도 성장한다. 촌뜨기 수도사가 조금씩 강인한 전사로 변해간다. 그동안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지만 점차 사랑에도 눈을 뜬다.

한때 성직자이자 주님의 종이었던 페트록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운명의 장난 때문에 그 신앙조차도 버리고 만다. 껍데기를 깨고 나온 페트록의 앞에는 두 가지의 숙제가 놓여있다. 자신이 휘말린 음모의 정체를 밝히고, 순식간에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작가인 핍 본 휴스는 런던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했다. 그만큼 13세기의 유럽대륙과 무법천지의 바다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페트록의 귀환>은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거대한 모험담이다.
덧붙이는 글 <페트록의 귀환> 핍 본 휴스 지음 / 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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