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댐 수몰민 이야기, 15년만에 다큐로
이형기 감독 다큐 <말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떠난다>
"제2의 워낭소리를 본 것 같습니다. 잘 만들었어요. 이건 단순히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만이 아니라 기록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습니다."
진안 용담댐은 1990년 착공, 1읍(진안읍) 5개면(용담면, 상전면, 정천면, 주천면, 안천면) 68개 마을, 2864세대, 1만2616명의 이주민을 만들며 2001년 10월 13일 완공된 댐이다. 그만큼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곳이다.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운영 중인 진안군 마령면 소재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는 현재 용담 수몰지구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이야기 '용담(龍潭) 위로 나는 새'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곳에 최근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용담댐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던 이우일ㆍ김부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것. 감독은 최근 완성된 자신의 영화 첫 상영지로 계남정미소를 택했다.
지난 24일 계남정미소에서 조촐한 발표회가 있던 날, 영화는 이곳에 설치된 흑백TV를 통해 상영됐다.
"큰 스크린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비디오를 통해 오래된 TV로 상영되는 것에 처음에는 약간 실망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곧 이곳에 맞는 장치라는 걸 깨닫고 이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오며 가며 들르는 주민들도 재미있어 하는 걸 보니 자신감도 생겼고요. 이번 12분짜리는 샘플 영상이라고 만들었는데, 이것이 나의 다큐멘터리 작품의 첫 길잡이가 되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감독은 이들 부부의 아들 이형기(38)씨. 가족이어서인지 수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노부부의 일상을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이미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을 걸으며 이우일씨가 "여기는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다. 아빠 큰아빠 삼촌 등이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 다녔고 할아버지 고향인데 없어졌다"며 손자에게 말을 건네며 시작된다.
손자들에게 새총 만들어주기, 고추밭에 약치러 가기, 벼베기, 텃밭에서 가지따기, 마당에서 콩타작하기, 냇가에서 벼 말리기, 감 따서 곶감 만들기, 배추 묶기, 시래기 엮기 등 소소한 일상들이 전개되며 지금은 물에 잠긴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었다는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잠깐 현재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주기도 한다. "배운 것도 많고 편안하게 살았다면 달랐겠지만 시골 생활은 고생하며 일만해서 너무 질려 생각하기 싫다. 도시 생활은 농촌과 달리 먹고 살기 바빠서 고향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대도시는 부지런만하면 농촌보다 먹고 살기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남편 이우일씨의 고백이 아련함을 더한다.
부인 김부순씨의 마지막 말은 가슴에 더욱 새겨진다.
"우리 자식들 여기서 잘 키워서 나간다. 이곳 생활은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이것은 종자씨앗이다. 농사꾼은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으란다고 이렇게 골고루 준비했다. 이 가랑팥씨는 둘째 아들집 앞 아주 작은 터밭에 뿌릴려고 한다. 어머니는 와서 소일거리로 해요 하는데 뿌려만 주면 알아서 할테지. 흙도 좀 파가야 하는데 내일 조금 파서 솥단지 가져갈 때 함께 챙겨야겠다."
덤덤한 말투지만, 그래서 더욱 깊이 다가온다.
영화 제목도 재밌다. '말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떠난다.' 대체 무슨 말인가. 전북 진안군 용담면 말뫼산 아래 황산마을. 이 마을에 살던 노부부의 이야기라 그렇다. 진안에 용담댐이 들어서며 말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뫼산에 물이 들어차니, 그 아래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감독은 건축학을 전공,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영화쪽은 문외한이었다. 그러던 1994년, 댐 공사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라져 갈 그 고향 풍경을 담아보자는 생각에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 취미삼아 촬영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책을 구입해 기본적인 것을 공부해가며 고향 동네와 부모님의 일상을 찍기 시작, 1994년 여름부터 1997년 집을 정리하며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는 이것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이곳을 기억할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에 거주하던 1999년, 이 영상을 작품으로 남겨보자는 생각에서 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 영상학과에 편입해 체계적으로 영상을 공부했고, 2002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영상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후 6년 동안 영화 메이킹 필름을 담당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첫사랑사수궐기대회, 위대한 유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마파도, 간 큰 가족, 야수와 미녀, 파랑주의보, 각설탕, 아랑, 내 생애 최악의 남자, 가면, 허밍, 더게임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그러나 메이킹 작업 역시 자신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과 함께 2007년 접게 되며, 꾸준히 작품을 구상하다 이번 작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늘 마음의 짐이었던 고향 영상을 작품으로 남겨 세상에 내보이려 준비를 했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계남정미소에 우연히 들렸다가 김지연 작가님이 용담댐 관련 사진전을 한다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작업에 들어갔죠. 그래서 15년 전의 묵은 영상이 이제야 세상 구경을 하게 된 겁니다. 촬영 할 때는 쓸데없는 짓한다고 부모님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선물로 전해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계남정미소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12분짜리다. 그렇지만 감독이 당시에 찍었던 테이프는 40개나 된다. 이 정도 분량이라면 장편영화도 가능하다. 감독 생각은 어떨까.
"이번에는 계남정미소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짧게 편집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된 작품으로 온 가족이 극장에서 지난 일을 추억하며 웃을 수 있으면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길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주영화제에도 출품하려 합니다. 앞으로는 수몰민의 이야기를 더 다뤄보고 싶고, 영화스태프들 삶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준비 중입니다."
이형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말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떠난다'는 사진전이 진행되는 2010년 1월 3일까지 계남정미소에서 관람할 수 있다.
▲ 수몰되기 전의 마을 모습 ⓒ 이형기
진안 용담댐은 1990년 착공, 1읍(진안읍) 5개면(용담면, 상전면, 정천면, 주천면, 안천면) 68개 마을, 2864세대, 1만2616명의 이주민을 만들며 2001년 10월 13일 완공된 댐이다. 그만큼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곳이다.
▲ 수몰 후의 마을 모습 ⓒ 김상기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운영 중인 진안군 마령면 소재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는 현재 용담 수몰지구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이야기 '용담(龍潭) 위로 나는 새'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곳에 최근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용담댐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던 이우일ㆍ김부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것. 감독은 최근 완성된 자신의 영화 첫 상영지로 계남정미소를 택했다.
지난 24일 계남정미소에서 조촐한 발표회가 있던 날, 영화는 이곳에 설치된 흑백TV를 통해 상영됐다.
"큰 스크린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비디오를 통해 오래된 TV로 상영되는 것에 처음에는 약간 실망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곧 이곳에 맞는 장치라는 걸 깨닫고 이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오며 가며 들르는 주민들도 재미있어 하는 걸 보니 자신감도 생겼고요. 이번 12분짜리는 샘플 영상이라고 만들었는데, 이것이 나의 다큐멘터리 작품의 첫 길잡이가 되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감독은 이들 부부의 아들 이형기(38)씨. 가족이어서인지 수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노부부의 일상을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이미 폐허로 변해버린 마을을 걸으며 이우일씨가 "여기는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다. 아빠 큰아빠 삼촌 등이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 다녔고 할아버지 고향인데 없어졌다"며 손자에게 말을 건네며 시작된다.
▲ 집에서 콩 타작하는 모습 ⓒ 이형기
손자들에게 새총 만들어주기, 고추밭에 약치러 가기, 벼베기, 텃밭에서 가지따기, 마당에서 콩타작하기, 냇가에서 벼 말리기, 감 따서 곶감 만들기, 배추 묶기, 시래기 엮기 등 소소한 일상들이 전개되며 지금은 물에 잠긴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었다는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잠깐 현재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주기도 한다. "배운 것도 많고 편안하게 살았다면 달랐겠지만 시골 생활은 고생하며 일만해서 너무 질려 생각하기 싫다. 도시 생활은 농촌과 달리 먹고 살기 바빠서 고향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대도시는 부지런만하면 농촌보다 먹고 살기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남편 이우일씨의 고백이 아련함을 더한다.
부인 김부순씨의 마지막 말은 가슴에 더욱 새겨진다.
"우리 자식들 여기서 잘 키워서 나간다. 이곳 생활은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이것은 종자씨앗이다. 농사꾼은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으란다고 이렇게 골고루 준비했다. 이 가랑팥씨는 둘째 아들집 앞 아주 작은 터밭에 뿌릴려고 한다. 어머니는 와서 소일거리로 해요 하는데 뿌려만 주면 알아서 할테지. 흙도 좀 파가야 하는데 내일 조금 파서 솥단지 가져갈 때 함께 챙겨야겠다."
덤덤한 말투지만, 그래서 더욱 깊이 다가온다.
영화 제목도 재밌다. '말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떠난다.' 대체 무슨 말인가. 전북 진안군 용담면 말뫼산 아래 황산마을. 이 마을에 살던 노부부의 이야기라 그렇다. 진안에 용담댐이 들어서며 말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뫼산에 물이 들어차니, 그 아래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감독은 건축학을 전공,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영화쪽은 문외한이었다. 그러던 1994년, 댐 공사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라져 갈 그 고향 풍경을 담아보자는 생각에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 취미삼아 촬영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책을 구입해 기본적인 것을 공부해가며 고향 동네와 부모님의 일상을 찍기 시작, 1994년 여름부터 1997년 집을 정리하며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는 이것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이곳을 기억할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에 거주하던 1999년, 이 영상을 작품으로 남겨보자는 생각에서 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 영상학과에 편입해 체계적으로 영상을 공부했고, 2002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영상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후 6년 동안 영화 메이킹 필름을 담당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첫사랑사수궐기대회, 위대한 유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마파도, 간 큰 가족, 야수와 미녀, 파랑주의보, 각설탕, 아랑, 내 생애 최악의 남자, 가면, 허밍, 더게임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그러나 메이킹 작업 역시 자신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과 함께 2007년 접게 되며, 꾸준히 작품을 구상하다 이번 작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 이형기 감독 ⓒ 김상기
"영화 작업을 하면서 늘 마음의 짐이었던 고향 영상을 작품으로 남겨 세상에 내보이려 준비를 했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계남정미소에 우연히 들렸다가 김지연 작가님이 용담댐 관련 사진전을 한다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작업에 들어갔죠. 그래서 15년 전의 묵은 영상이 이제야 세상 구경을 하게 된 겁니다. 촬영 할 때는 쓸데없는 짓한다고 부모님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선물로 전해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계남정미소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12분짜리다. 그렇지만 감독이 당시에 찍었던 테이프는 40개나 된다. 이 정도 분량이라면 장편영화도 가능하다. 감독 생각은 어떨까.
"이번에는 계남정미소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짧게 편집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된 작품으로 온 가족이 극장에서 지난 일을 추억하며 웃을 수 있으면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길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주영화제에도 출품하려 합니다. 앞으로는 수몰민의 이야기를 더 다뤄보고 싶고, 영화스태프들 삶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준비 중입니다."
이형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말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떠난다'는 사진전이 진행되는 2010년 1월 3일까지 계남정미소에서 관람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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