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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고 꿈을 담는 학교를 위하여

등록|2009.11.27 14:14 수정|2009.11.27 14:14
올 해 보건실에서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계발 활동 부서가 비만예방 건강증진반이다. 전근 오기 전 학교에서는 계발 활동 부서로 응급처치 예방반을 설치하여, 각 학급당 1-2명 내외로 학생들을 선발하여 간단한 응급처치 방법을 가르쳤다.  보건교육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학급에서 1-2명이라도 응급처치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응급 상황에서 보다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운영했다.

학생들의 학습 태도나 실천율도 생각보다 좋아, 우리 학교에서도 새로이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 교장 선생님께 건의를 드렸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교보건법 개정으로 올 해부터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 보건 교육이 실시되고 보건 수업 시간에 응급처치를 배우니, 그 보다는 오히려 비만예방 건강증진반을 운영하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하셨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비만 학생을 강제로 선발하는 대신, 자율적으로  희망자를 모집하여 개설했는데, 비만 학생보다는 건강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신청을 했다.

처음 운영하는 것이라 미숙하지만, 학생들이 또래들에게 비만 예방의 전도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 관리, 비만의 문제점,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운동법, 우울증과 자살 등 비만과 관련될 수 있는 여러 건강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있다.

스트레스 관리 시간에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과제는,  현재 자신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을 중심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시기별로 -100점부터 100점까지 행복 점수를 매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는 부모님이 원하던 아이여서 처음에는 행복지수 100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수가 하강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마이너스 점수에서 플러스 점수까지 파도처럼 급격하게 행복지수 그래프가 요동을 치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프만 봐도 아이들의 심리 상태가 어떠할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다.

8년여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것이, 꿈이 구체적인 아이들일수록 같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비교적 잘 견딘다는 사실. 이 아이들이 심리 상태도 대체로 안온한 경우가 많다. 명상, 운동, 음악 감상, 독서, 생각 바꾸기 등 여러 스트레스 관리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탐색할 줄 아는 아이들은 흔들림이 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을 지도하거나 상담할 때, 꿈만큼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구체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게 취미(?)가 되었다.

각자 자신의 행복 지수 그래프를 설명하고,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아이가 인상에 남았다. 아이의 꿈은 향수를 만드는 것. 백화점에서 향수 매장을 들렀다가 왜 세계적인 명품 향수들은 많은데, 우리 나라가 만든 명품 향수는 없는지 안타까웠다는 것. 어떤 향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좋은 생각도 하게 하니, 자신은 화학공학과에 진학해서 관련 공부를 하고, 향수를 만들 수 있는 회사나 연구 기관에 취업해서 세계적인 향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다부진 발표를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백화점에 가끔 들러 향수 매장을 다녀본단다. 몇 년 후에 자기가 개발한 향수가 진열되어 판매되는 생각을 해본다는 데, 발표를 듣는 내내 내가 더 흥분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꿈 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류태영 교수님은 자신의 책에서 성공적인 리더십을 소개하시면서, 일곱 가지 쌍기역을 강조하셨다. 첫째가 꿈, 간절히 바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자신을 완전히 사로잡는 그 꿈이 있어야한다고 역설하셨다. 그 사로잡힘을 바탕으로 실천을 해야 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천이 없으면 허상이나 망상이라며 거침없는 주장을 펼치셨다. 둘째가 깡, 지치지 않는 추진력이 있어 반드시 끝장을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꾼이 되어 전문성을 발휘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항상 웃는 모습의 꼴이 필요하며, 재능과 유머를 갖춘 끼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재치와 신선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꾀를 갖추도록 노력하면서, 다른 이들과 네트워크할 수 있는 끈을 만들어 갈 것. 이 일곱 가지 쌍기역을 갖추려고 노력하면, 길은 열리고, 만들 수 있다는 데 강한 자신감을 표하셨다.

보건실에서 아이들과 상담하다보면,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꿈을 물어보면, 부모님이 정해준 전교 10등을 달성하는 것, 전공 학과는 상관없고, 무조건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 당장 갖고 싶은 옷 사고, 실컷 놀 수 있게 돈 많이 생기는 것, 얼굴 예뻐지고 키 커져 돋보이는 외모를 갖는 것..꿈이 아니라 허상에 빠져 있다. 일전에 어느 선생님께 어머니란 단어의 어원이 꿈을 담는 주머니에서 시작됐다는 말씀을 들었다. 지금 아이의 꿈을 담아주어야 할 어머니, 그리고 근대 사회 이후, 꿈을 담는 어머니를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 학교가, 과연 아이들의 꿈을 제대로 담고 있나, 가끔 깊은 한 숨을 쉴 때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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