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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33) 것 6

[우리 말에 마음쓰기 807] '내밀 거니' '술을 마시는 것', '부정하는 것' 다듬기

등록|2009.11.29 12:20 수정|2009.11.29 12:20

ㄱ. 내밀 거니?

.. '언제 또 내밀 거니?' / 기다리며 앉아 있다 ..  《이상교-먼지야, 자니?》(산하,2006) 77쪽

 아이들 말투를 살피면, 아니, 아이들한테 건네는 어른들 말투를 살피면 '것(거)'이 아주 자주 끼어듭니다. 워낙 아이들은 '것(거)'을 즐겨 말하기에 어른들 스스로 이 말투를 자주 쓰게 되었는지, 아니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이 말투가 익숙해지도록 이끌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어느 어린이문학을 들여다보아도, 동시이고 동화이고 '것(거)'이 안 들어간 작품이 없습니다.

 ┌ 언제 또 내밀 거니?
 │
 │→ 언제 또 내밀 생각이니?
 │→ 언제 또 내밀 셈이니?
 │→ 언제 또 내미려 하니?
 │→ 언제 또 내미니?
 └ …

 단출하게 끊어 "언제 또 내미니?" 하고 말하는 어른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말끝에 살짝 힘을 싣고 싶다 할 때 "언제 또 내밀 셈이니?"나 "언제 또 내밀 생각이니?" 하고 말하는 어른 또한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이쯤 되면, '것'을 붙이건 '거'를 달건, 우리들 모두가 쓰는 말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 싶곤 합니다. 다들 이렇게 쓸 뿐더러 아무 말썽거리를 찾지 못하는데, 굳이 이런 말투를 털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해 본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싶습니다. 모두들 버릇으로 굳어 버렸는데. 모두들 생각하지 않는데.


ㄴ. 술을 마시는 것

.. 먹을 걸 사야 할 돈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니, 영양 상태는 갈수록 엉망이 되고 결핵에 걸린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98쪽

 "영양(營養) 상태(狀態)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몸은"으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또는 "잘 먹지 못해 몸은"이나 "잘 못 먹어 몸은"이나 "제대로 못 먹은 몸은"으로 다듬어 봅니다.

 ┌ 술을 마시는 것이니
 │
 │→ 술을 마시니
 │→ 술을 마시는 셈이니
 │→ 술을 마시는 판이니
 └ …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잊어 가고 있기에, 나날이 얄궂은 말투가 널리 퍼지면서 우리 삶으로 굳어지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한결 나은 삶으로 거듭나도록 하고자 애쓰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찾느라 바쁘다 보니, 자꾸자꾸 어리석은 글투가 깊이 뿌리내리면서 우리 삶인 듯 보여지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는 것이니"처럼 말하거나 글써야 할까요. 우리는 왜 "술을 마시니"나 "술을 마시고 있으니"처럼 말하거나 글쓰지 못할까요.

 '것'을 붙여야 할 까닭이 있는가요. '것'을 넣지 않으면 말이나 글에 힘이 안 실리는가요. '것'이 있어야 말답거나 글다움을 느끼는가요.

 지난주에 어느 잡지사에 보내 준 제 글에, 그곳 일꾼이 '것'을 잔뜩 집어넣었습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다고 느꼈지만, 그네들 생각으로는 '여기에도 것을 넣고 저기에도 것을 넣어야 말이 되는데, 이이는 도무지 글을 쓸 줄 모르는 바보로군!' 하는 생각이 아니었느냐 싶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것'을 한 마디도 적지 않는 까닭을 모르며,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뭇칼질을 한달까요. '것'을 넣는 자리라 한다면, 이 보기글 첫머리에 나오는 "먹을 것을" 같은 자리일 뿐인데, 이 씀씀이를 옳게 아는 사람이 몹시 드물다고 할까요. 그러나 "먹을 것을" 같은 말투는 "먹을거리를"로 적어야 한결 알맞습니다.

 ┌ 술을 마시고 있으니
 ├ 술을 마시고 마니까
 ├ 술을 마시기 때문에
 ├ 술을 마시는 탓에
 └ …

 다른 사람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잊거나 잃거나 버리거나 내치면서, 우리들은 무엇을 얻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어지럽히고 우리 글을 헝클어 놓으며 우리 삶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차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ㄷ. 부정하는 것은 무모한 짓

.. 살아 있는 증인들의 목소리를 부정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  《김효순-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서해문집,2009) 80쪽

 "증인(證人)들의 목소리"는 "증인들 목소리"나 "사람들 목소리"로 다듬고, '부정(否定)하는'은 '없다고 하는'이나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이나 '듣지 않는'이나 '못 들은 척하는'으로 다듬습니다. '무모(無謀)한'은 '어이없는'이나 '터무니없는'이나 '못된'이나 '말도 안 되는'이나 '몹쓸'로 손질해 봅니다.

 ┌ 부정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
 │→ 부정하는 일은 무모하다
 │→ 못 들은 척 하는 일은 어처구니가 없다
 │→ 안 들린다고 한다면 어이가 없다
 │→ 없다 한다면 말도 안 된다
 └ …

 오늘날 '것'이든 '-의'이든 '-的'이든 '-化'이든 붙이지 않고 말할 수 있거나 글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몇 사람쯤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이 같은 말투가 그리 옳지 않다는 이야기는 곧잘 나오지만, 이런 이야기만 나올 뿐 정작 이 말투를 걸러내거나 털어내거나 씻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쯤 가다듬기는 해도, 오래도록 꾸준히 이어가며 우리 말투를 어루만지거나 돌보지는 못합니다.

 백 사람을 놓고 보면 백 사람 모두, 천 사람을 놓고 보아도 천 사람 모두, 우리 말과 글이란 도무지 거들떠보지 않으며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만 사람을 놓고 보아야 비로소 한 사람쯤 우리 말과 글을 곰곰이 살피며 알맞게 쓰려고 마음을 쏟지 않느냐 싶습니다.

 문학을 하는 이라 해서 좀더 낫지 않습니다. 교사 일을 맡았다 해서 더욱 알차지 않습니다. 어버이 된 몸이라 해서 한결 아름답지 않습니다. 문학 아닌 사회학이나 인문학이나 과학을 하는 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더 안 살핍니다. 교사 아닌 교수로 일하는 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더더욱 안 살핍니다. 어버이로 아이 앞에 설 때 스스로 아름답고자 하는 분들은 뜻밖에도 그리 안 많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이 모자란 탓인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를 되새길 틈이 없는 탓인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를 가꾸거나 일굴 짬을 내지 못하는 탓인지 모릅니다.

 ┌ 살아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 살아 있는 사람들 목소리에 귀를 막는 모습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 살아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듣지 않는 모습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 살아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지우려 하는 모습은 몹쓸 짓이다
 └ …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 말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을 아낄 때 바야흐로 우리 글을 아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넋과 얼을 돌볼 때 시나브로 우리 말을 돌볼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을 따스하게 감싸거나 어깨동무할 때 참으로 우리 글을 따스하게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삶이 있고 말이 있으니까요. 삶에 따라 말이 달라지니까요. 삶 그대로 말을 하니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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