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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섬이라 불린 금오도

기후보호전문가 교육생들의 금오도 방문

등록|2009.11.30 15:11 수정|2009.12.01 10:32

▲ 금오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의 하나인 절터인근.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따뜻해 노루들의 놀이터라고 한다 . 안타깝게도 해무가 짙게 끼어 멀리 나로도가 안보인다. ⓒ 오문수


여수시 남면에 위치한 금오도는 원래 봉산이어서 나무가 많아 검게 보여 거무섬이라고 불린데서 유래됐다. 거무섬이 금오도(金鰲島)가 된 건 순전히 한문의 음을 차용한 것이다. 봉산(封山)이란 조선 초부터 국가에서 나무를 쓰기위해 출입을 금한 산을 말한다. 금오도는 특히 임금의 관을 짜는 나무를 공급했던 황장봉산으로 유명하다.

기후보호전문가 고급과정교육생 66명이 여수시 남면에 위치한 금오도를 찾았다. 돌산 신기 선착장에서 30분쯤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금오도 여천이다. 남면 면사무소에 도착한 일행은 차에서 내려 명가모텔에 여장을 풀고 태양광발전소 견학을 했다.

교육생 중에는 서울과 익산, 광주와 고흥에서 매주 2회씩 있는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분도 있다. 교육은 저녁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전북에서 생태 해설사와 문화 관광해설사를 겸하고 기후보호해설사 공부를 하러 익산에서 온 유칠선씨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먼데서 밤늦게까지 여수에 와 공부를 하십니까?"
"생태해설사를 하다보면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측정해야 합니다. 생태계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어 현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합니다. 식생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를 알아야하기 때문이죠." 

▲ '인형의 집'의 첫 장면이 된 장소. 절터로 가는 길에 있다. ⓒ 오문수


금오열도는 침강운동으로 형성된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수심이 다른 해안보다 깊다. 남면은 섬이 많아 섬과 섬 사이에는 예로부터 주요한 교통로인 수도를 이루고 있다. 섬들의 대부분은 억겁의 파도에 시달려 수직으로 깎여진 해식애를 이루고 절벽아래는 수많은 해식동이 있어 해상국립공원에 걸맞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일행은 여수 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의 강의와 설명을 들으며 금오도 문화 및 생태답사를 시작했다. 김이사장은 금오도가 고향이다.

"금오도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해양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곳입니다. 조선시대 최전방지대에 속해 정세를 탐하여 망을 본다는 망산, 망끝, 망기미, 봉수대 등의 지명이 있는 곳입니다."

인근에 있는 화태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돌산도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섬이 저절로 울어 왜적의 침공을 알려 주었다고 하여 휫대(나팔)섬이라 불리다가, 마을 위쪽에 있는 노적산을 군량미 적재 지역으로 위장하였다 하여 벼이삭 '수(穗)'자를 써서 수태(穗太)섬이라 하였으며, 뒤에 벼 '화(禾)'자를 써서 화태도가 되었다.

▲ 초분의 모습으로 사체를 매장하지 않고 유해가 탈골이 될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다가 탈골이 되면 매장한다. 지붕위의 나무가지는 누가 왔다 갔다는 표시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분이 여수지역사회 연구소 김병호 이사장. ⓒ 오문수


남면 소재지에서 함구미 가는 길에는 초분이 있다. 초분은 사체를 매장하지 않고 옷을 입힌 채 또는 관에 넣어 공기 중에 놓아 두는 장례법이다. 나뭇가지나 풀을 덮어 숲 속에 방치하거나 관에 풀이나 널빤지로 장집을 만들어 덮는 경우도 있다. 풍장은 풍화하는 대로 두는 경우도 있으나 유체가 해체되기를 기다렸다가 뼈를 거둔다. 풍장의 풍습은 북아시아의 고산족, 인도차이나, 인도네시아, 멜라네시아, 오키나와 섬에서도 발견된다.

선착장인근 여천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마을 북동쪽 해안 구릉에서 동서의 길이가 46m, 남북이 22m 정도인 밭에서 패각층이 발견됐다. 패각층은 흑갈색 자갈층을 기반토로 하여 그 위에 형성됐으며, 육안 관찰에 의한 구분은 어렵다. 현재 각종 토기류 14점과 4점의 석기가 채집됐다. 

함구미에서 절터로 오르는 길은 영화촬영 장소로 애용될 정도로 아름다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돌담 골목길에 들어서면 옛 정취를 물씬 풍긴다. 동네 정상에서 절터로 이르는 길은 '인어공주' 첫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그 밖에도 금오도에는 '혈의 누'가 촬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이 흠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으나 사진을 찍으려면 전봇대가 눈에 거슬린다. 하물며 영화촬영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김 이사장의 말이다.

"함구미절터에서 초포까지의 벼랑길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길입니다. 초포는 금오도를 최초로 개척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고, 옛날 사슴 사냥하던  사냥도구를 제작 수선하기 위해 불무가 설치됐다하여 '불무골'이라고도 합니다. 이 길은 벼랑을 타고 걷는 길로 시에서는 비랑길(벼랑길)로 개발 중입니다. 일종의 올레길이죠. 헌데 가는 곳마다 전봇대가 있어 전봇대 지중화 사업을 실시해 추억의 옛길로 되돌릴 생각입니다."
 

▲ 함구미에서 절터로 가는 골목길로 영화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 오문수



▲ 고구마를 얇게 썰어 말린 빼깽이로 주정의 원료로 사용된다. 배고픈 시절에는 아이들의 맛있는 과자 대용품이었다. ⓒ 오문수

▲ 금오도에는 사방에 유자가 널려 있다. 주민들이 유자를 썰어 길가에서 말리고 있다 ⓒ 오문수


한 시간 반쯤 걷는 길에는 폐허가 돼 돌담만 남은 마을이며 울창한 숲과 억새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울창한 숲속 오솔길을 걷다보면 여기가 섬인가 싶다가도 나무사이로 보이는 망망대해가 섬이라는 게 실감나게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환경단체가 개발을 반대해 살려둔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구간 같은 느낌이 든다.

함구미 마을 뒷산에 약 6천평이 되는 널따란 평지가 있는데 높은 산봉우리 바로 밑에 있는 이곳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절터라고 부른다. 구전되어 오는 얘기로는 옛날 어떤 도사가 이곳에서 지팡이를 한 번 두들겨 절터를 만들어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다. 하루는 상좌아이가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리기 위해 쌀을 씻던 중 그만 잘못하여 수십길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어 도사가 이곳을 떠나면서 지팡이를 쳐 산봉우리를 무너지게 해 절의 흔적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숲과 오솔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걷고 있는데 여수YMCA 김대희 국장이 직업에 대한 티를 내자 모두 웃고 말았다.

"이 나무들이 모두 탄소 덩어리입니다. 공기 중의 탄소를 삼키고 죽어서 에너지원이 되는 거죠. 우리들에게는 산소를 내뿜고." 
"아따, 한참 숲속 분위기에 취해 있는데 누가 전문가 아니라고 할까봐."

▲ 오솔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지 버섯을 들고 서있는 박금희씨. 여수시 문화관광해설사이다. ⓒ 오문수

한참을 가던 중 앞서가던 백형선씨가 "심봤다"고 외치며 뭔가를 땅속에서 뽑고 있었다.  그가 캐낸 것은 영지버섯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시골의 옛 정취를 물씬 맛보게하는 이 섬에도 슬픈 역사가 숨어있다.

1950년 8월 7일 남면 횡간도와 금오도 사이에 있는 두룩여 사이의 바다에는 전날 조기떼가 나타나 많은 고기를 잡은 관계로 이날도 인근 돌산도와 횡간도, 화태도, 금오도, 개도, 제리도 등의 여러 섬에서 백여 척의 낚시 배가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이용해 조기를 잡고 있었다.

이날은 전날과 달리 조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 정오 무렵이 되자 일부 배들은 철수를 시작하였다. 이때 돌산도 부근에서 미군 제트기가 나타나 저공으로 정찰비행을 하면서 남면 쪽으로 날아간 후 다시 비행기 소리가 나더니 조기배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실시하였다. 이렇게 세 번 비행기가 지나간 바다에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로 붉게 물들었고 어떤 이는 총탄에 목이 날려 배 위에는 목이 없는 시신이 걸쳐있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2명으로 조사됐으나 누락된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 절터에서 두모리로 넘어가는 오솔길에서 본 절터 모습. ⓒ 오문수



▲ 한국전쟁 중 슬픈역사를 간직한 두룩여 전경 ⓒ 오문수


일설에 의하면 그 비행기는 동경 맥아더 사령부에서 출격한 미공군 제25 전투비행단 F80 슈팅 스타기로 추정되고 있다. 김이사장은 "현재 피해자들이 살아 있어요. 그러나 도무지 말을 안하려고 해요. 진상조사가 이뤄지다가 미군이라는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어요" 여순사건을 경험한 세대는 앞에 나서면 죽는다는 걸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섬에는 숨어있는 보석들이 많이 있다. 생태와 문화 역사가 어우러진 관광은 현대 관광의 추세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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