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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273) 물리적

― '물리적인 이유', '물리적 시간 거리' 다듬기

등록|2009.12.01 16:19 수정|2009.12.01 16:19
ㄱ. 물리적인 이유

.. 사기꾼이 넘쳐나서 가난한 사람에게 가야 할 푼돈을 가로채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조금 더 물리적인 이유를 언급해 보겠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최대 이유는 많은 지역에 전차는 물론 노선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 가까워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근처에 탄광이 있거나 빈민굴 안에 통학로가 있으면 여자아이는 위험해서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130, 132쪽

'사기꾼(詐欺-)'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속임꾼'이나 '속임쟁이'나 '못된 사람'으로 다듬어도 됩니다. "가로채는 경우(境遇)"는 "가로채는 일"이나 "가로채는 때"로 손보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손보며, '언급(言及)해'는 '말해'로 손봅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최대(最大) 이유는"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가장 큰 까닭은"이나 "무엇보다 학교에 갈 수 없는 까닭"으로 손질하고, '근처(近處)'는 '둘레'로 손질하며, '빈민굴(貧民窟)'은 '가난한 동네'로 손질하고, '위험(危險)해서'는 '걱정되어'로 손질해 봅니다.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는 "보낼 수가 없다"나 "보낼 수가 없는 노릇이다"로 고쳐씁니다.

 ┌ 조금 더 물리적인 이유를 언급해 보겠다 (x)
 └ 학교에 가지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o)

보기글에서 '물리적'인 까닭이 어찌어찌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뒷 글월을 살피면서도 알 수 있는데 "물리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라고 적어 주면 한결 낫습니다. 돈이 없든 삶터가 메마르든, 이런저런 까닭은 바로 '다른' 까닭이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앞뒤에 '어찌어찌한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고 있으니, 구태여 '물리적' 같은 말마디를 넣지 않아도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충돌"이니 "물리적인 빈곤"이니 "물리적인 폭력"이니 "물리적인 나이"이니 하는 말투가 새삼스레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만, "몸과 몸이 부대끼"거나 "돈이 없이 가난"하다거나 "주먹이나 총칼을 휘두르는 노릇"이라거나 "햇수로 먹은 나이"라 해야 알맞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이는 그대로 말하며, 느끼는 그대로 말할 때가 가장 올바릅니다.

 ┌ 조금 더 다른 까닭을 들어 보겠다
 ├ 조금 더 안타까운 까닭을 이야기해 보겠다
 ├ 조금 더 힘들밖에 없는 까닭을 말해 보겠다
 ├ 조금 더 어려운 까닭을 헤아려 보겠다
 └ …

온누리 적잖은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가고,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다치거나 죽을까 걱정되어 학교를 보내기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보내는 일은 없을 텐데, 예나 이제나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일은 그치지 않아 새로운 걱정거리가 있고 오래된 근심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지난날처럼 이 돈 저 돈 내라는 말은 줄었으나, 급식비니 다른 무슨 돈이니를 내도록 합니다.

온누리 한쪽은 가난이 깊어서 힘들다 하고, 온누리 다른 한쪽은 사랑이 메말라서 힘들다 합니다. 그러면서 두 곳 모두 돈힘과 주먹힘이 사람들을 옭아매거나 들볶습니다. 넉넉하게 껴안지 못하고, 따사롭게 부둥켜안지 못합니다. 즐겁게 맞아들이지 못하고, 살가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내 이웃을 따뜻하게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 삶터를 따스하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를 따숩게 곱씹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내 이웃이며 삶터며, 또 나 스스로를 깊이 사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어우르지 못하고 있으니, 내 이웃하고 즐거이 나눌 말과 글을 추스르지 못한다고 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를 한결 널리 사랑하지 못하고 한결 깊이 믿지 못하니, 나 스스로 내 뜻과 넋을 나타낼 말과 글을 다독이지 못한다고 해야 할지 모릅니다.

말마디를 꾸미려 한다면 어떻게 꾸며야 알맞는지를 모릅니다. 말마디를 꾸미지 않고 펼치려 할 때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를 모릅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기는 하지만 참다운 내 말이 되지 못합니다. 내 손으로 적히는 글이기는 하나 참다운 내 글이 되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을 담는 말이 못 되고, 맑고 고움을 싣는 글이 못 됩니다.

 ┌ 조금 더 골칫거리가 되는 까닭을 들어 보겠다
 ├ 조금 더 말썽이 되는 까닭을 들어 보겠다
 └ …

차근차근 가꾸는 삶인 가운데 차근차근 가꾸는 생각이 되고, 차근차근 가꾸는 말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랴 생각해 봅니다. 하나하나 북돋우는 삶인 가운데 하나하나 북돋우는 생각과 말이 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습니다. 한결같이 갈고닦는 삶인 가운데 한결같이 갈고닦으면서 시나브로 밝고 맑게 거듭나는 생각과 말이 된다면 얼마나 보람차고 멋질까 헤아려 봅니다.

ㄴ. 물리적 시간 거리

.. 혹은 분단 이후에서 분단 이전의 삶을 떠올리는 일은 그 물리적 시간 거리의 길고 짧음을 떠나 ..  《이현식-곤혹한 비평》(작가들,2007) 36쪽

 '혹(或)은'은 '또는'이나 '아니면'으로 고칩니다. "분단 이전(以前)의 삶을 떠올리는"은 "분단되기 앞서 살아온 모습을 떠올리는"이나 "남북으로 나뉘기 앞서 어떻게 살았는가 떠올리는"이라든지 "한 나라로 살았을 때를 떠올리는"이라든지 "남북으로 나뉘지 않았을 때 살아온 모습을 떠올리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 그 물리적 시간 거리의 길고 짧음
 │
 │→ 그 시간 거리가 길고 짧음
 │→ 그 시간이 길고 짧음
 └ …

 '시간'이라고 말할 때와 '물리적 시간'이라고 말할 때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해 봅니다. '물리적'이라는 말이 꾸미는 구실을 하면서 뜻이나 깊이를 더해 줄는지, 아니면 뜻이나 느낌을 외려 흐리멍덩하게 하거나 두루뭉술하게 하는지 가누어 봅니다.

 꾸밈말은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를 돌이켜보고, 군말이란 무엇인가를 곱씹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즐거이 나눌 말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헤아리고, 우리가 뒷사람한테 고이 물려줄 글이란 어떤 모양새여야 할는지를 되돌아봅니다. 이 나라 지식인들은 참으로 어떤 말과 글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우리는 그예 '물리적'이 아니면 시간이 어떠한가를 이야기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그저 '물리적'을 갖다 붙여야 이때와 저때를 알맞게 나눌 수 있을까요.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사회를 다루면서, 교육을 밝히면서, 우리는 '물리적'인 때와 흐름과 마음자리와 넋으로 살아야만 할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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