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제게 왜 그러셨어요?
[일본 간사이 지역을 찾아서 39] 금각사가 아름다운 이유 2
▲ 금각사로 많이 알려진 로쿠온지 금각 사리전, 11월 말 가을 단풍 속에서 서쪽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 박현국
금각사는 교토에서 두 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보통 금각사로 알려진 이곳은 교토시 북구에 있는 임제종(臨濟宗) 상국사(相國寺)파의 절입니다. 이곳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인 서기 1224 년 후지하라(藤原公經)가 서원사(西園寺)를 짓고 산장으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그후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 義滿)가 이것을 이어받아 저택으로 사용했습니다. 뒷날 역사적인 변천에 따라 아시카가의 법명을 따서 로쿠온지(鹿苑寺)라고 이름지었으나 금각 사리전(金閣 舍利殿) 건물이 두드러져 금각사(金閣寺, 긴카쿠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금각 사리전 주변에는 작은 호수를 비롯하여 잘 가꾸어진 정원을 비롯하여 방장(方丈)이나 서원(書院), 후도도(不動堂) 불당이나 차실들도 있습니다. 금각 사리전은 금박을 입힌 삼층 건물입니다. 사리전은 각층이 각기 다른 양식을 채용하고 있는 특이한 건물입니다. 1층은 침전조(寢殿造)식으로 홋스이인(法水院)이라고 하며, 중앙에 보관석가여래상이 있고, 반대쪽에는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 義滿)상 혹은 아미타여래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2층은 무가조(武家造)식 주택풍으로 조온도(潮音洞)라고 하며 관음상과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3층은 선종의 불전풍(佛殿風)으로 불사리를 안치한 구교죠(究竟頂)라고 부릅니다. 지붕은 삼나무 껍질로 덮은 우진각 지붕이고 지붕 꼭대기에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금각 사리전은 2층과 3층 겉면이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어 언제나 화려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주변 녹음이 우거진 주위 산을 배경으로 금빛이 빛나고, 가을에는 빨강, 노랑으로 변한 단풍과 조화를 이뤄 더욱 아름답습니다. 금각사는 제 홀로 아름다운 것이 아리고 주변 경치와 어울려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 셋카데이(夕街亭) 차실, 로쿠온지 경내에는 금각 사리전과 같이 화려한 건물만이 아니고 소박하고 서민적인 차실도 있어서 극단적인 화려함과 지극히 서민적인 차실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 박현국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각 사리전의 금박은 가나자와(金澤)에서 만든 것입니다. 한국 동해에 면한 가나자와는 옛날부터 금박 공예가 발전해 온 곳입니다. 금(94.43 %)에 구리(0.66 %)와 은(4.9 %)을 섞어 일만 분의 1 두께로 금박을 뽑아내서 정방형으로 잘라 시공한다고 합니다.
금각 사리전이 유명하게 된 것은 그 금박의 아름다움만이 아니고 소설의 소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 7월 2일 새벽 금각 사리전에 불이 나서 다 불에 타고 맙니다. 이곳에 불을 놓은 사람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오타니(大谷) 대학에 다니고 있던 당시 21세의 학승 하야시(林承賢)였습니다.
하야시는 교토부 북쪽 마이즈루(舞鶴)에 있는 작은 절의 주지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하야시는 친척집에서 자라다가 로쿠온지로 보내져 학승 생활을 하고 있던 중 금각 사리전에 불을 놓았습니다. 하야시는 불을 놓은 뒤 절 뒷산에 가서 자살을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경찰에 체포됩니다.
▲ 금각 사리전 지붕에 있는 봉황 장식, 봉황은 상서로운 짐승으로 상상의 동물입니다. 비슷한 장식이 뵤도인(平等院)에도 있으며, 백제 시대 유물인 공주 무령왕릉에서도 출토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백제금동대향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박현국
그날 오후 고향에서 어머니가 면회를 왔지만 하야시는 면회를 거부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로 그간 어머니는 한번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적이 없고 자신에게 너무 지나친 기대만을 해왔기 때문이랍니다. 면회를 거절당한 어머니는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전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맙니다.
하야시는 방화혐의로 7년 형을 언도 받고 복역하던 중 폐병이 악화되어 1955년 금각 사리전이 재건되던 해 가석방되어 치료를 받다가 1956년 병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소설가에 의해서 소설화 되어 금각 사리전의 유명세를 더욱 드높이게 되었습니다. 1955년 재건된 금각 사리전은 1987년 금박을 새로 입혔습니다.
▲ 가을 단풍에 휩싸인 로쿠온지 경내, 로쿠온지 안에는 물과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이 있고, 구석 구석에는 주지가 거쳐하는 방장(方丈),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는 후도도(不動堂) 불당이나 서원, 창고 등 여러 건물이 있습니다. ⓒ 박현국
금각 사리전은 교토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남아있습니다. 단순히 겉모습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장군과 귀족의 영욕과 한이 배어 있습니다. 일본 종전 후 급속히 밀려오는 미국 문화의 물결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좌절된 욕망, 이루지 못한 꿈이 스며있는지도 모릅니다.
금각사 가는법
교토역 앞에서 금각사행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갈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서정록 지음, 백제금동대향로, 학고재, 2001.
三島由紀夫, 『金閣寺』新潮社
水上勉, 『五番町夕霧樓』, 文藝春秋新社, 1963, 『金閣炎上』, 新潮社, 1979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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