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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털기 (85) 현現

[우리 말에 마음쓰기 809] '현 사회', '현 시점', '현 상태' 다듬기

등록|2009.12.02 12:01 수정|2009.12.02 12:01
ㄱ. 현 사회

.. 현 사회에도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여러 가지 금기가 있다. 텔레비전과 일반 신문에 보도되지 않는 진실이 얼마나 많은가 ..  《다나까 미찌꼬/김희은 옮김-미혼의 당신에게》(백산서당,1983) 107쪽

"크고 작은 차이(差異)는 있지만"은 "크고 작기는 다르지만"이나 "크기는 다르지만"으로 다듬습니다. "금기(禁忌)가 있다"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하지 말라는 일이 있다"나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보도(報道)되지'는 '나오지'나 '실리지'로 손질하고, '진실(眞實)'은 '참 이야기'나 '뒷이야기'로 손질해 봅니다.

 ┌ 현(現) : 현재의. 또는 지금의
 │  - 현 시각 / 현 세대 / 현 대통령 / 현 정권 / 현 대입 제도 / 현 상태
 ├ 현재(現在) (1) 지금의 시간
 │   - 현재와 미래 / 현재의 주소
 ├ 지금(只今) : 말하는 바로 이때
 │   -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만 놀자
 │
 ├ 현 사회에도
 │→ 지금 사회에도
 │→ 오늘날 사회에도
 │→ 이 사회에도
 │→ 우리 사회에도
 └ …

"현재의"나 "지금의"를 가리킨다고 하는 외마디 한자말 '現'입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현재' 말뜻을 찾아보면 "지금의 시간"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現 = 지금의 지금의 시간' 꼴이 됩니다. 터무니없는 겹말이 되는데, 토씨 '-의'마저 잇달아 붙습니다. 다시금 '지금' 말뜻을 찾아보면서 '이즈음'이나 '이때'나 '이무렵'이나 '이' 같은 말마디로 고쳐써야 알맞지 않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현 시각"이나 아니라 "이 시각"이라 옳다고 느낍니다. "현 세대"가 아닌 "이즈음 세대"라 해야 맞다고 느낍니다. 또는 "오늘 세대"나 "오늘날 사회"라 해야겠지요. 다만, "현 대통령"이나 "현 정권"이나 "현 대입 제도"나 "현 상태"에서는 "지금 대통령"처럼 한자말 '지금'을 넣을 때가 한결 알맞거나 매끄럽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이즈음-이무렵-이때-오늘-오늘날' 같은 말마디가 그리 어울리지 않습니다.

 ┌ 바로 이 사회에서도
 ├ 바로 우리 사회에서도
 ├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도
 ├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사회에서도
 └ …

한자말이니까 안 써야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자가 섞여서 나쁜 말이 아닙니다. 알맞게 가누어야 할 말이요, 올바르게 넣어야 할 말입니다. 얄궂게 겹치기로 적는 말이어서는 안 됩니다. 어설프게 뇌까리는 말이어도 안 됩니다. 올바르고 슬기롭게 펼쳐야 하는 말입니다. 아름답고 힘차게 나누어야 하는 말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니까요. 바로 이 땅에서 우리가 나누는 말이니까요.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니까요. 바로 이 터에서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말이니까요.

한꺼번에 천 걸음이 아닌 한 번에 한 걸음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한 번에 반 걸음이어도 좋고 한 발자국이나 반 발자국이어도 좋습니다. 날마다 고마운 밥상을 받으며 우리 몸을 먹여살리듯, 날마다 고마운 말 한 마디 살포시 마음자리에 얹으면서 우리 삶과 넋을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나 스스로 기쁜 말을 쓰고, 나부터 반가운 말을 나누며, 내가 먼저 살갑게 따스함 담는 말을 건네면 좋겠어요.

ㄴ. 현 시점

..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과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  《박용남-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시울,2006) 180쪽

"시급(時急)히 해야 할"은 "서둘러 해야 할"이나 "바삐 해야 할"이나 "먼저 해야 할"로 다듬어 줍니다. "사회를 변화(變化)시키는 일"은 "사회를 바꾸는 일"이나 "사회를 고치는 일"로 손질하고, "동시(同時)에 추진(推進)해야 한다"는 "함께해야 한다"나 "나란히 해야 한다"나 "한꺼번에 해야 한다"로 손질해 줍니다.

 ┌ 현 시점에서
 │
 │→ 이 자리에서
 │→ 바로 이 자리에서
 │→ 바로 이때
 │→ 이제부터
 └ …

"현재 시점"을 줄여서 "현 시점"이라고 적었을까요. "지금 시점"을 뜻하는 글월로 "현 시점"이라 적었을까요. 이래저래 생각해 보면, 이 말투를 굳이 고쳐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렇게 적더라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적을 테니까요. 다만, 아이들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현 시점"이 아닌 "현재 시점" 또한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깜냥껏 이 보기글을 가다듬어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서둘러 해야 할 일은 사회를 바꾸는 일과 삶을 고치는 일이며, 이 둘을 함께해야 한다"로 새롭게 적어 봅니다. 보기글을 죽 살피고 보면 앞뒤 흐름이 안 맞기도 합니다.

 ┌ 바로 오늘 우리가 서둘러 해야 할 일은
 ├ 이날 이곳에서 우리가 바삐 해야 할 일은
 ├ 오늘날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 이 같은 흐름에서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 …

말뜻을 헤아리면서 "바로 이 자리에서"로 손질하기도 하고 "이제부터"로 손질하기도 하며 "이 같은 흐름에서"로 손질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하는 어떠한 일을 가리키니 "오늘날"이나 "이즈음"이나 "요즈음" 같은 낱말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한자말이기 때문에 털어낸다든지, 외마디 한자말이니까 안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둘레 더 많은 사람한테 나눌 말이라면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자는 이야기입니다. 내 동무와 내 아이한테 살갑게 건넬 말마디라면 한 번 더 마음을 쏟자는 이야기입니다.

나 혼자 중얼거리는 말은 아닐 테니까요. 나 홀로 끄적거리는 글은 아닐 테니까요. 함께 나눌 말일 테니까요. 어깨동무할 글일 테니까요.

ㄷ. 현 상태

.. 그가 없으니 혼란의 그물은 점점 커져만 갔고, 현 상태로는 이할미우트 부족의 기억과 마음속을 깊이 파고드는 것은 결코 바랄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해졌다 ..  《팔리 모왓/장석봉 옮김-잊혀진 미래》(달팽이,2009) 159쪽

"혼란(混亂)의 그물은"은 "어지러움은"이나 "그물처럼 엉킨 마음은"으로 다듬고,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자꾸'로 다듬어 줍니다. '상태(狀態)'는 앞말과 묶어 털어낼 수 있으며, "이할미우트 부족의 기억(記憶)과"는 "이할미우트 부족 생각밭"이나 "이할미우트 부족 머리속과"로 손질합니다. "파고드는 것은"은 "파고들기란"으로 손보며, '결(決)코'는 '도무지'로 손보고, '분명(分明)해졌다'는 '또렷해졌다'로 손봅니다.

 ┌ 현 상태로는
 │
 │→ 이대로는
 │→ 이렇게 해서는
 │→ 이처럼 해서는
 │→ 이래서는
 └ …

이 자리에서는 한자말 '상태'를 그대로 두면서 "이 상태로는"이나 "이런 상태로는"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한자말 '상태'를 털어낼 때에는 "이 모습으로는"이나 "이런 모습으로는"으로 고쳐쓸 수 있고요. 어떻게 가다듬거나 추스르느냐는 우리 몫입니다. 좀더 알차게 쓰고 싶다면 좀더 알차게 마음을 쏟아 줍니다. 좀더 알맞게 쓰고 싶다면 좀더 알맞게 마음을 바쳐 봅니다. 좀더 올바르게 쓰고 싶다면 좀더 올바르게 마음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마음에 따라 우리 말을 달리 씁니다. 더 마음을 쓰니 더 알차게 쓸 수 있고, 더 마음을 바치니 더 곱게 쓸 수 있으며, 더 마음을 쏟으니 더 싱그럽게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쓰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우리부터 마음을 힘차게 쏟지 않으면서 우리 말마디와 글줄을 훌륭히 갈고닦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몸소 나서면서 마음을 바치지 않으면서 우리 말글 문화가 사랑스럽게 거듭나기를 꿈꿀 수 없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이대로 살아가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이 모양대로 내버려 두면 더 나빠집니다. 이처럼 팔짱을 끼거나 고개를 돌린 채 돈벌이에만 매여 있으면 우리 말글뿐 아니라 우리 넋과 얼이 무너지고, 우리 넋과 얼이 무너지면서 시나브로 우리 삶까지 어그러집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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