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64)
― '같은 금액의 참치', '보행자의 것' 다듬기
ㄱ. 같은 금액의 참치
.. 즉, 같은 금액의 참치라면 생물보다 냉동이 더 좋은 품질의 참치인 셈이지 .. 《미츠오 하시모토-어시장 삼대째 (18)》(대명종,2006) 104쪽
┌ 같은 금액의 참치라면
│
│→ 같은 값 참치라면
│→ 값이 같은 참치라면
│→ (참치) 값이 같을 때라면
└ …
보기글을 보면 '참치'라는 말이 앞뒤에 한 번씩 나옵니다. 그러니 "값이 같을 때라면 얼린 참치가 더 좋은 셈이지"처럼 다듬으면 넉넉합니다. "같은 값이라면 얼린 참치가 더 좋은 셈이지"로 다듬어도 됩니다.
옛말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듯이, 이 자리에서도 이처럼 쓰면 토씨 '-의'가 얄궂게 끼어들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글 뒤쪽에도 "더 좋은 품질의 참치"라고 나오는군요. 이 대목은 "품질이 더 좋은 참치"로 글차례만 살짝 바꾸어 줍니다.
┌ 곧, 같은 값이라면 살아 있는 놈보다 얼린 놈이 더 품질이 좋은 참치인 셈이지
├ 그러니까, 값이 같다면 산 녀석보다 얼린 녀석이 더 좋은 참치인 셈이지
├ 이리하여, 같은 값이라면 얼린 참치가 더 좋은 셈이지
├ 그래서, 값이 같다면 얼린 참치가 더 품질이 좋은 셈이지
└ …
옛말이 아니어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지거나 갚을 뿐 아니라, 말 한 마디로 믿음을 사거나 잃습니다. 그런데 같은 말 한 마디라 하여도 듣는 이에 따라 빚이 되거나 빛이 됩니다. 미움이 되거나 사랑이 됩니다. 말하는 이 스스로 제아무리 깊고 너른 사랑과 믿음을 담았다 할지라도, 듣는 쪽에서 열린 가슴이 아니라 한다면 아무런 사랑과 믿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온 땀을 들여 모든 넋과 얼을 바쳤다 할지라도, 읽는 쪽에서 따스한 가슴이 아니라 한다면 아무런 맑음과 밝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갈고닦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자꾸 얄궂게 쓰고 맙니다. 겉보기로는 틀림없이 한글로 적혀 있지만 속내는 어김없이 우리 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일구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날이 뒤틀리고 비틀리고 맙니다. 귀로 듣기로는 또렷이 한국말을 하는구나 싶지만 속알은 고스란히 어설픈 번역투이거나 일본 말투이기 일쑤입니다.
토씨 '-의'를 붙이느니 안 붙이느니 하는 말씀씀이가 아니라, 알맞게 붙여야 할 자리에는 알맞게 붙이되 안 붙여야 할 자리에는 안 붙여야 하는 말씀씀이입니다. 이런 낱말은 나쁘니 좋으니가 아니라, 우리가 고르는 낱말이 언제나 알맞춤한 자리에 들어가느냐를 살펴야 하는 말매무새입니다. 우리 삶을 어떤 낱말에 담는가를 곱씹어야 하고, 우리 생각을 어떤 말투에 싣는가를 되새겨야 합니다.
바르고 고운 말에 앞서 바르고 고운 생각입니다. 바르고 고운 생각에 앞서 바르고 고운 삶입니다. 흔들리거나 비틀리는 삶일 때에는 흔들리거나 비틀리는 생각이요 흔들리거나 비틀리는 말입니다. 제자리를 찾으며 제길을 걷는 삶일 때에는 제자리와 제길이 싱그럽고 튼튼하게 담기는 생각이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삶을 꾸리며 어떠한 길을 걷고 어떠한 생각과 매무새로 어떤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지, 아주 짧게나마 발걸음을 멈추고 곰곰이 되짚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ㄴ. 보행자의 것
.. 인도를 줄여 만든 자전거도로는 본래 보행자의 것이었고, 언제든지 보행자가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 《윤준호,반이정,지음,차우진,임익종,박지훈,서도은,조약골,김하림-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지성사,2009) 112쪽
'인도(人道)'는 흔히 쓰기는 하지만, '걷는 길'이나 '거님길'이나 '사람길'로 다듬으면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자전거도로(-道路)'는 '자전거길'로 손보고, '본래(本來)'는 '처음부터'로 손보며, '보행자(步行者)'는 '걷는 사람'으로 손봅니다. '점(點)'은 '대목'으로 손질하고, '상황(狀況)'은 '그 모습'으로 손질하며, '별(別)로'는 '그다지'나 '거의'로 손질해 줍니다.
┌ 보행자의 것이었고
│
│→ 걷는 사람 차지였고
│→ 걷는 사람 길이었고
│→ 걷는 사람 자리였고
└ …
우리가 다니는 길은 예나 이제나 길입니다만, 예나 이제나 '길'이라는 이름이 붙기 퍽 어렵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놓고 '사람길'이라 하지 않고 '人道'라 적으며, 자전거가 다니는 길을 놓고 '자전거길'이라 하지 않으며 '자전거道路'라고 적습니다. 버스가 다니는 길이니 '버스길'이건만 '버스專用車線'이라고만 적습니다. 이리하여,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찻길'이라 적는 사람보다 '車道'라고 적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걸어다니는 사람이니까 '걷는이'라 하면 되는데 꼭 '步行者'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길이니 '건널목'이건만 언제나 '橫斷步道' 같은 말마디를 자꾸 쓰려고 합니다. '고가도로'와 '지하도로'와 '육교'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마디 아니면 길을 가리킬 수 없었을까요. 우리는 우리 깜냥껏 한결 손쉽고 부드럽고 알맞게 가리킬 길이름을 하나하나 빚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 거님길을 줄여 만든 자전거길은 처음에는 걷는 사람 길이었고
├ 걷는 길을 줄여 만든 자전거길은 처음부터 걷는 사람 자리였고
├ 사람길을 줄여 만든 자전거길은 워낙 걷는 사람이 오가는 데였고
└ …
길이 길이 아니게 되었다고 할 우리 삶터입니다. 길을 오가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고 있다 할 우리 삶터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헤아려 주는 마음을 잃어 가는 우리 삶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말인 만큼, 서로서로 사랑스럽게 어울리고 있다면 사랑스러움을 말마디마다 차근차근 담을 테며, 서로서로 돈바라기로 제 밥그릇만 채우고 있다면 말마디마다 차가움과 쌀쌀맞음을 담습니다.
삶에 따라 길이 달라집니다. 삶에 따라 말이 달라집니다. 삶에 따라 서로서로 어우러지는 삶터와 일터와 놀이터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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