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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삶자락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책읽기가 즐겁다 320] 유선진, <사람, 참 따뜻하다>

등록|2009.12.05 16:14 수정|2009.12.05 16:14
- 책이름 : 사람, 참 따뜻하다
- 글 : 유선진
- 펴낸곳 : 지성사 (2009.10.26.)
- 책값 : 12000원


 (1) 제대로 닥친 추위를 느끼며

 새벽부터 깨어난 아기는 한낮까지 잠깐이나마 잠들지 않습니다. 다문 삼십 분이라도 아침잠을 자 준다면 아빠와 엄마는 숨을 돌리며 글을 쓴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할 텐데, 이렇게 숨돌릴 겨를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기한테는 마땅한 몸짓일 테니,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아기하고 옹글게 마주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나중에 아기가 크면 엄마 아빠가 아이보고 '엄마랑 아빠랑 함께 놀아 주렴' 하고 노래를 불러도 밖에 나가서 동무들하고 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기는 '나중에 엄마 아빠 스스로 안타까워 하지 말고, 바로 이 자리에서 놀아 주셔요' 하는 마음일는지 모릅니다.

 셈틀 앞에 앉았으나 글쓰기는 못하고 아기하고 놀던 아침나절, 무슨 냄새가 나는가 싶어 아기 기저귀를 만지니 젖어 있습니다. '쉬를 했구나' 생각하며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구수한 냄새가 나면서 아기 엉덩이에 넓게 눌러붙은 똥이 보입니다. '언제 이렇게 똥을 누었지?' 다시 기저귀를 엉덩이에 대고 아기를 덥석 안고 씻는방으로 갑니다. 씻는방 바닥에 똥기저귀를 내려놓고 따순 물을 받아 아기 아랫도리와 엉덩이를 씻습니다. 다 씻은 아기는 마루로 보내고 똥기저귀를 빱니다. 냄새가 빠지라고 창문을 열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름이 우중충합니다. 비가 오려나? 올겨울에는 눈 구경이 어려울 듯한데.

 똥을 푸지게 눈 아기는 뱃속이 시원한지 눈자위가 벌거며 졸음이 가득한 데에도 잠잘 생각은 않고 더 놀자고 칭얼거립니다. 아빠는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인형놀이를 합니다. 벌써 두 시간 반을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데 아기는 지루해 하지 않고 팔팔합니다. 아홉 시 반이 조금 못 되어 옆지기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빠는 아기한테 이길 수 없다며 잠자리에 듭니다. 이제부터 엄마하고 더 놀든지 잠들든지 하기를 바라면서.

 살짝 눈을 붙이지만 얼마 잠들지 못하고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 집을 찾아올 처가 식구를 헤아리며 기저귀 빨래를 해 놓습니다. 옆지기는 마루와 방을 쓸고 닦습니다. 밥을 한 솥 해 놓고 집살림을 조금 갈무리합니다. 그래 보았자 아기가 도로 어질러 놓겠지만.

 도서관 문을 열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창문을 열고 골목을 내다봅니다. 싸락눈이 온 골목을 휘감습니다. '눈?' 아침에 본 구름은 비구름이 아닌 눈구름이었을까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사진기를 챙기며 집을 나섭니다. 바깥 날씨가 꽤 쌀쌀합니다. 이런 날씨에 옆지기와 아기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장갑을 끼고 골목을 걷습니다. 온도가 퍽 떨어졌는지 손가락이 금세 얼어붙습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르려 해도 손가락이 굳어 잘 안 움직입니다.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고 늘 푸념하고 있는 소리를 하늘이 들었을까요. 두 시간 반쯤 골목마실을 하며 겨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귀와 코와 입이 시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딱딱하게 굳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으며 따뜻한 장갑 한 켤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혼자 살며 한겨울에도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하루 열 시간을 자전거로 달려도 손가락이 얼지 않을 만한 장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꾸었습니다. 겨울날 열 시간쯤 쉬지 않고 자전거를 달리면 손가락도 얼고 발가락도 어는데, '발가락이 안 얼 만한 양말이 있으면' 하는 꿈도 함께 꾸었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모진 추위를 견디게 해 줄 좋은 장갑과 양말이 더없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저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에 땀이 나니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손님을 기다리며 내내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분들 손과 발과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옷 한 벌이 참말 그립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늘 그 자리에서 동냥을 하는 사람을 볼 때에도 '값싼 장갑 한 켤레'를 건넬 수도 있지만, '그저 손에 끼는 장갑이 아닌 손이 따뜻할 장갑'을 건넬 수 있기를 꿈꿉니다.

 밥 한 그릇을 먹을 때에 그저 배만 가득 채우는 싼 먹을거리도 나쁘지 않겠으나, 조금 더 돈을 치르면서 내 삶을 채우고 내가 얻은 곡식과 푸성귀를 길러 준 일꾼한테까지 이바지를 하는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옷 한 벌을 장만할 때에도 같은 마음입니다. 책 하나를 사들여 읽을 때에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더 싸게 싸게 또 싸게 싸게 해서 내 주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짐스럽다면 반가울 수 있습니다만, 나 혼자만 홀가분한 삶이기보다는 내 이웃과 함께 홀가분하며 기쁠 삶이고 싶습니다. 내가 얻는 대로는 아니나, 내가 얻은 기쁨을 내 이웃이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골목 할매는 이 빨랫줄에 명태 코다리를 걸어 말리곤 합니다. 당신이 드시는지, 아니면 이렇게 말려서 저잣거리에서 파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느 날에는 수십 마리를 한꺼번에 빨랫줄 가득 널어서 말리곤 합니다. ⓒ 최종규



 돌아보면, 지난날에는 이런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어리고 철부지일 때에는 그저 '돈을 적게 쓰는' 쪽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적게 쓰고 덜 쓰고' 하면서 내 삶을 가꾸고 내 삶터를 일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적게 쓰는 삶과 덜 쓰는 삶이란 틀림없이 나와 내 둘레 터전에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밑바탕을 튼튼하게 일구지는 못합니다. 겉훑기예요. 참으로 도움이 되려면 '쓸 곳에 알맞게 써야' 하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적게 쓰는 삶에서 알맞게 쓰는 삶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덜 쓰는 삶에서 올바로 쓰는 삶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적게 쓰거나 덜 쓰는 삶이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적다'는 테두리에서 머뭅니다. 알맞게 쓰거나 올바로 쓰는 삶이란 '아예 한푼조차 안 쓸 때가 있는 한편, 내 모두를 송두리째 바칠 때가 있'습니다. 써야 할 곳에는 아낌없이 쓰고, 쓸 까닭이 없는 데에는 조금도 안 씁니다. 이와 같은 삶이 알맞게 쓰는 삶이요 올바로 쓰는 삶입니다. 그렇지만 제 삶은 아직 알맞게 쓰는 삶이나 올바로 쓰는 삶에 가 닿지 못합니다.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시늉이나마 한다 말할 수 있는데, 하루아침에 탈바꿈하는 꿈이 아니라 나날이 차츰차츰 애쓰는 땀방울로 지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갑작스레 닥친 추위에 손가락이 얼어붙으며 사진을 찍는 동안 뼛속 깊이 느끼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에 추위를 느끼며 찍는 사진에는 추위와 아픔과 괴로움을 함께 담아야 한다고. 사진기로 골목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끼는 추위뿐 아니라 사진으로 찍히는 골목사람 삶터에 그동안 배어 온 추위를 함께 담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이 추위를 살며시 녹이는 따스한 손길을 놓치면 안 된다고.


 (2) 책에 담는 할머니 삶

 몇 해 앞서 <지는 꽃도 아름답다>(달팽이,2007)라는 책을 읽으며 참으로 기뻤습니다. 기쁘면서 반가웠고, 반가우면서 고마웠습니다. 이 책을 쓰신 할머니는 할머니이기 때문에 이렇게 받아들이고 곰삭이고 되새기면서 글 한 줄 우리한테 선물로 내어준다고 깨달으면서 기뻤습니다.

 요 한 달 사이에 <사람, 참 따뜻하다>라는 책을 읽으며 새롭게 즐거웠습니다. 즐거우면서 놀라웠고, 놀라우면서 흐뭇했습니다. 이 책을 쓰신 할머니는 할머니가 되었고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알차고 푸진 말마디를 우리한테 선물로 내려주는구나 하고 깨달으며 즐겁습니다.

▲ 겉그림. ⓒ 지성사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쓴 문영이 할머님은 1935년에 태어났습니다. <사람, 참 따뜻하다>를 쓴 유선진 할머님은 1936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느새 일흔을 넘기고 여든 가까운 나이가 되어 가는 두 분입니다. 생각을 곰곰이 가누며 당신들 또래 할아버지들은 어떠한 글을 쓸까 궁금해집니다. 아니, 일흔을 넘기고 여든이 되어 가는 '예부터 글을 써 온' 할아버지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일본사람 '사하시 게이죠'라는 분은 <할아버지의 부엌>(여성신문사,1990)이라는 책을 쓰면서 '나이 들어 혼자 남는 할아버지들이 집일을 하나도 못하며 너무 힘없이 쓰러지며 무너지는 삶으로 끝장이 나는 모습이 안타까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앞서 집일을 익히며 늙은 삶을 아름다이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일본사람 '소노 아야코' 님은 <아름답게 늙는 지혜>(정우사,1985)라는 책을 쓰며 '늙음은 덧없음이나 못남이 아니라 새롭게 아름다움을 찾는 나이'라고 밝히며 스스로 늙어 가고 있음을 돌이킵니다. 나이가 들어 가기 때문에 스스로 더 아름다워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며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사하시 게이죠 님 책은 <아버지의 부엌>(지향)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새로 나왔고, 소노 아야코 님 책은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리수)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새로 나왔습니다).

 모두들 어린 날은 어린 날이기에 아름다우며, 어린 날 철없이 구는 모든 짓거리는 철없이 굴 수 있는 기운이 있는데다가, 뒷날 스스로를 깨닫고 고쳐 나갈 수 있어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젊은 날은 철이 차츰차츰 들면서 어린 날부터 품어 온 꿈을 일구어 가는 땀방울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늙은 날은 기운이 없어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이 되는데,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품에 안고 지내 온 삶이 아름답고 당신 꿈을 뒷사람한테 고이 물려줄 수 있어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선진 님 책 <사람, 참 따뜻하다>는 수필문학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수필문학이라는 이름 없이 당신이 보내 온 삶을 적바림한 이야기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따로 어떤 문학 갈래로 나누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글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굳이 어떤 대단한 문학이 되어야 하는 글이 아니요, 반드시 어떤 높은 이름을 얻어야 하는 자귬이 아닙니다. 아픈 지난날을 아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 좋은 글이고, 외로움을 고스란히 즐기는 당신 삶을 속살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 좋은 글입니다. 꼭 마음 뭉클하게 읽지 않아도 좋은 글이요, 오래오래 간직하며 거듭 돌아보지 않으며 살포시 삭여내어도 좋은 글입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내려놓을 수 있음을 고마워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나이 들지 않은 사람들 또한 언제나 홀가분한 몸이 되어 사랑을 나누면 더욱 아름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조촐히 적바림한 글입니다. 할머니가 어린 딸아들한테 조곤조곤 들려주는 글이요, 할머니가 더 어린 손자와 손녀한테 조용조용 나누어 주는 글입니다.


 (3) <사람, 참 따뜻하다> 곰곰이 되읽기

 앞으로 할머님들 책이 우리 앞에 얼마나 선보일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크게 이름 높지 않은 할머님들 책들이, 이를테면 예순이 넘은 뒤 처음 붓을 잡고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수채그림을 즐기는 박정희 할머님 같은 분들 책이든 온삶에 걸쳐 집살림을 꾸려 온 여느 할머님들 책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할머니 된 분들한테 '홀로 넉넉하고 느긋하게 당신 삶을 돌아보며 글 한 줄 적어 내려갈 틈'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쉽게 나오기 어려운 만큼 더 고맙게 받아 읽은 <사람, 참 따뜻하다>를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되읽어 봅니다. 저 스스로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 먹어 가기 때문이 아니라, 한 해 두 해 갈수록 할머님들 삶자락이 한결 따스하고 포근하다고 느낍니다.


▲ 일흔 넘은 할머니가 쓴 또 다른 책 <지는 꽃도 아름답다> 겉그림. ⓒ 달팽이



[23, 65, 147쪽] 사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학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재 삶의 내용이 학력이지요 … 쇠잔이란 얼마나 평화로운 체념인가. 젊음의 열정과 과욕이 씻기어 나간 평화. 그리고 쇠잔이란 또 얼마나 사람을 조그마하게 만드는가. 나는 아주 작아져서 엄지의 엄지가 되어 그의 등에 업혀 잠들고 싶다 … 내가 도착한 '노년'은 축복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이 걷힌 빈 마음으로 풍요의 고장이었고, 비로소 '신'이 바로 보이는 밝은 눈의 영토였다.


[39, 42∼43쪽] 나는 자라면서 내가 딸이어서 좋구나, 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연코 없다. 아들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지만, 딸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컸던 것이 내가 살았던 사회환경, 아니 우리 집의 가정환경이었다 … 짐을 풀면서 솜씨 좋은 어머니가 새로 만드신 분홍빛 아기 옷에 눈이 가자,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꼭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학교도 다녀 보고, 돈도 벌어 보고, 큰소리도 치면서 살고 싶다, 를 입에 달고 사셨던 어머니. 딸 다섯을 낳을 때마다 섭섭하고 섭섭하여 몽땅 도둑을 맞았다 해도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으리를 노상 읊어대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당신 딸이 낳을 넷째 아이는 "딸이기를……" 바라는 당신의 절박한 염원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64, 94∼95쪽] 고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관점에서 장점을 볼 줄 아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아니 장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새로웠다.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꼭 쓰이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깨달았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약초이구나. 그래서 다른 이의 삶에 치유의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한다. 구태여 익명으로 나를 감추지도 않는다. 언제나 실명이다.

[79쪽] "조카, 아주 이쁘게 나이를 먹었네." 내가 칭송하자 "아마 미국에서 살아서 그럴 거예요. 한국에서라면 사방의 적들이 견제하고, 자연히 조급증에 걸리고, 사회 전체가 무언지 불안하고 바쁘잖아요? 그 가운데서 나도 그런 표정으로 늙었겠지요?"

[86∼88쪽] 오빠는 다섯 가지 약을 열심히 먹었다. 그 약이 자기를 살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지성으로 먹었다. 그것은 소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자기 목숨에 대한 최대의 성실이었다. 성한 몸이든, 병든 몸이든, 생명을 부여받은 자로서 생명을 준 자에 대한 최고의 감사며 정의였다 … 소식을 듣고 모인 형제들에게 (오빠는) 미소를 지으며 "고마웠어요" 말을 하고 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모처럼 단잠에 잠기는 듯 편안하게. 그 모습은 맑고 고왔다. "어서 와서 영진의 이뻐진 얼굴을 보아라!" 용케 참고 계시던 아버지가 오열을 터뜨리셨다 … 옆에서 보기에 답답하고 한심하고 지루한 병상에서 오빠가 누렸을 자유!

[102, 133쪽] "아무 생각 마시고 그림만 보세요." 동서가 가만가만 말을 합니다 … 교편을 잡고 있는 동서가 아이를 낳자, 병원에서 바로 제 집으로 데려와 키울 때나, 열세 식구 조석을 단풍잎만 한 손과 종이배 같은 발로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육신의 고달픔이 보기에 안쓰러워 "그러지 말고 약국을 하거라. 너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람을 써서 살림을 맡기면 덜 고단하지 않겠니?" 내가 말하면 "언니, 우리 가족에게 젤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우. 형제 간에 사랑하고 화합하는 일이 문제인데 그 몫을 돈이 할 수 있나?"

[106쪽] 역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날렵한 차를 몰고 가는 이웃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운전석 옆 유리창을 열고 정중하게 동승을 권한다. "역까지라도……." 나는 한껏 상냥한 어조로 사양을 한다. 미끄러지듯 멀어지는 차를 보며 '당신은 오늘 그 귀찮은 물건을 끌고 다니느라 수고가 많겠구나' 하고 가당찮게 오히려 동정을 한다. 그러면서 상대적인 자유를 느낀다.

[138쪽] 나는 다행히 나를 닮은 딸은 없고 아들만 있는데, 내 아들들에게 아버지가 내게 훈도하신 대로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일러 주며 길렀다. 아니 아버지보다 한술 더 떠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약점을 갖는다는 건 축복이야. 약점으로 인생에 승부를 걸어 보거라."

[280쪽] 사실 70년을 산 여인들에게 쌓여 있는 것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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