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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여 안녕! 평등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상상마당 열린 포럼 "한국에서의 문화예술 소비, 여성만의 것인가"

등록|2009.12.07 14:14 수정|2009.12.07 14:37
'공연장은 어째서 여성들로 해운대 쓰나미를 이루는가.'

지난 5일 오후 2시, 홍대 앞 상상마당. '문화예술 소비는 여성의 전유물인가'란 주제로 열린 이날 '열린포럼'은 대중음악 평론가인 김작가의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 공연장 관객의 성비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남성들이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뮤지컬 시장만 하더라도 수요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다. 왜 이런 걸까.



실제로 김작가 본인이 해외에서 받은 충격은 공연뿐만이 아니다. 음악, 책, 영화 등 문화적 관심사에 대한 폭넓은 대화가 남성들 사이에 널려있어 매우 당황했다고. 패널 중 한 명인 이택광 교수는 서구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근대사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지금까지 성역할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왔다는 것. 게다가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고 있다. 운전하는 김 여사를 소재로 아줌마에 대한 차별적 선입견이 유머로 쓰이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게으른 남편을 혼내면서까지 당차게 살았던 신사임당 같은 여걸이 존재하는 나라의 혼인빙자간음 처벌법은 최근에서야 폐지되었고 간통죄는 아직도 잔존한다. 이름만 대한민국이고 사회는 밴댕이다.



전통적 유교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은 남녀유별을 통해 성의 다름을 말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적 구분과 차별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분명 일제를 거치면서부터. 남자는 노동을 통한 벌이에 전념하고 여자는 살림을 담당하며 소비하는 역할로 확연히 나뉘면서 한국의 사회 문화 또한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온 것이다.

이 교수는 이것을 근대적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하며 이제야 비로소 대한민국의 탈근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서구의 경우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전쟁터로 떠난 남자들 대신 사회활동을 하며 성역할에 대한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패미니즘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가.

▲ 이택광 문화 평론가, 경희대 교수 ⓒ 김현준



포럼의 발제문은 대중문화소비에서 나타나는 성비의 불균형이 한국 사회가 근대와 탈근대의 충돌 지점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일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성공이 가치로 자리 잡아 경쟁사회로 흘러온 근대와 다르게 탈근대란 행복이 중심 가치다. 성공이란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치가 되어 당장의 욕구를 희생시킨다.

이것은 한 잔에 만원짜리 블루마운틴이 아니라 커피믹스다. 허나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 만원짜리 한 잔을 위해서는 성공해야 한다고. 여기서 우리는 무의식 가운데 자리 잡은 근대적 당위성을 알게 된다. 아직도 한국사회 대다수 남성들은 근대적 가부장제도의 영향 속에 살고 있다.

성공을 사회활동의 이데올로기로 삼는 것 역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언젠가 짊어질 가장으로서의 굳건함을 위해서라며 항변한다.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의식. 이러한 태도에는 권위로서 정복하고 소유하려는 남성 특유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가정과 배우자는 히말라야 같은 산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마초적인 갱스터 리메이크 영화 <스카 페이스>에서 주인공이 좋아하던 문구는 바로 '세상은 너의 것이다'였다. 이 교수 역시 남녀의 욕망구조가 다름을 지적했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성은 그냥 본인들이 머물다 가는 서식지로 여긴다는 것이다. 때문인지 전쟁과 개발의 역사엔 남성들이, 생태와 환경운동의 역사엔 여성들이 존재해 왔다.

대중문화예술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서 파워를 발휘하는 상당수 여성들은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행복이란 것은 현재의 가치다. 미래를 향한 고민도, 타인들의 시선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오직 지금의 자기 자신을 만족시킴으로서 발현되는 가치이고 대중문화 상품은 이를 위해 생산된다. 최근 문제가 되는 막장 드라마 역시 상당한 수요자인 여성들의 억눌린 해방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갑자기 온라인에서 안티가 되어 이를 비판하는 상당수의 남성들이 아른거린다.

대중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성들은 그렇다면 문화가 없을까? 있다. 밤 문화. 얼마 전 밤 문화가 남자들의 놀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정도라는데 순수하게 밤에 문화 활동을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더라도 남자들이 가는 곳은 술집 아니면 당구장 그도 아니면 단란주점.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싸잡아 직장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세대적인 차이가 있다. 솔직한 의미의 밤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여가와 비교해 얼마나 초라한가. 밤 문화에 올인하지 않더라도 야동을 보고 있지는 않나. 성인 사이트의 주요 접속자 상당수가 아저씨들이라는 비공식적 통계 역시 웃어넘기기엔 씁쓸하다. 같은 짐승이라도 아저씨와 20대는 다른 법.

박경연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 국장은 실제로 20대 초반을 중심으로 여성과 대중문화를 공유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음을 밝혔다. 이것은 최근 2~3년 동안 나타난 현상으로 과거의 유니섹스처럼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처럼 일방적인 변화가 아닌 새로운 변화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겸비하는 생활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까지는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 홍진경. 모델, (주)홍진경 대표이사 및 KBS Cool Fm 가요광장 DJ ⓒ 김현준



예술가로서 그리고 연예인과 사업가로 자리 잡아 살아가는 홍진경씨 역시 이날 패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게이나 레즈비언 친구가 많다고 밝힌 그녀.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수성을 가진 게이들이 목표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남자답게 집중하는 모습에서 강화된 인간 형태를 느낀다고 했다.

게이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양성적인 감각을 갖춘 사람이 성공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는 그녀.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에서도 역시 여성성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다만 남자들이 얼마나 여성성을 받아들이느냐만 남아있다고 한다. 특유의 승부욕과 가부장적 문화에 찌든 남성들은 그런 식의 변화가 창피할지도 모른다.

현재 이현우의 음악앨범 작가로 일하고 있는 정현주씨는 남성 청취자들의 소극적인 모습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프로그램 청취율의 성비를 보면 여자와 남자가 6:4 정도 된다는데 참여율은 여자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인기가 없다고 생각되는 코너를 없앴더니 그제야 잠자코 있던 남성 청취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는 것. 이것은 최근 인기 있는 걸 그룹들이 막상 실제 음반 판매량은 저조하다는 것과 비슷하다.

▲ 박경연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국장. 대한민국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 분석, 불황기 소비자 분석 프로젝트 등을 기획 및 진행. ⓒ 김현준



박경연 국장은 문화 예술 같은 것은 사회적으로 노출된 것이고 대중문화는 여성 것이라는 사회적인 시각이 아직까지 크게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남성들이 아직까진 표출하기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순환 고리는 유지되고 있지만 앞으로의 변화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남자들도 20대를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장하는 남자들도 많이 늘었다. 나 역시 가방에 화장품 파우치를 넣고 다닌다. 그 안에는 왁스와 립밤은 물론이고 달팽이크림까지 들었다.

포럼이 끝나고 박경연 국장과는 따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가장 강화되는 것은 결국 양성성을 가지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성이 여성화 되고 여성이 남성화 되더라도 본인의 것을 지켜가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며 그런 사람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요즘 성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지는 것은 물론, 성역할의 표출에 있어서 개념이 바뀌고 있지만 장애물도 존재한다. 요즘 남자들이 미용이나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마케팅 문구 또한 "외모도 성공이다"처럼 명분을 제공해 주는 문구가 그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장르 역사에서 그 흐름을 생각해보자. 여성을 타깃으로 신파와 멜로가 중심을 이루는 서사가 꾸준히 계보를 이어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혼성장르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이제 장르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돼버렸다. 실제로 요즘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장르를 떠올리며 작업하지 않는다. 독특한 캐릭터와 사건이 있을 뿐이다.

양성성이 강화되는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지배적인 남성의 권위와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성역할은 이제 그만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할 때가 진실로 임박했다. 이것은 논리와 이성, 사상으로 무장한 386 세대의 민주화 운동으로도 타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감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를 통한 조용한 변화가 시작됐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성에 대한 이해를 더욱 쉽도록 만들어줄 것이며 배려와 존중을 통한 양성평등을 확산시킬 것이다. 이미 시작된 이상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다만 시간문제일 뿐. 앞으로의 세상이 더욱 재미있어질 것이라는 것에 공감하며 포럼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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