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히틀러가 사실은 유대인이었다?

[리뷰]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읽기

등록|2009.12.08 11:38 수정|2009.12.08 11:40

▲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돌프 셋의 황폐한 운명을 그린다. ⓒ 세미콜론

일본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란 영감님이 있다. 흔히 '일본의 사르트르'라 불리는 문예비평가이며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딸로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예전 한국에 '386세대'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전공투 세대'가 있었다.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며 들불처럼 번졌던 60년대 일본의 좌파 학생운동 청년들에게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신화적 존재였다. 그는 옛날 전시체제에 봉사했던 문학가들의 전쟁 책임을 물음으로써 평론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허나 동시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자신도 학생 시절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진정으로 믿었던 파시스트 황국소년이었다고 고백한다. 일본의 패전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로 전향을 감행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만큼 그의 지성은 충격을 받고 괴로워했다.

당시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절대 게으른 학생이 아니었다. 세계대전의 현실에서 그는 정말이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황과 국가의 현실을 전혀 똑바로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 충격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그는 완벽하게 무지했다.

정의와 이성이 만든 야만의 전쟁

전쟁이 나쁘다고 알고서도 반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전쟁이 옳지 않다는 생각조차 아예 하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이란 한갓 개똥이나 다름없느냐는 불안이 싹튼다. 나아가 어찌하면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작품에서 나름의 해답을 내놓고 있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데즈카 오사무 말년의 걸작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삼아 '정의'의 정체를 캐묻는 만화다.

아직도 만화에 천박한 인상이 남아 있는 이들은 만화가 주제에 무슨 비판이냐고 마땅찮아 한다. 허나 데즈카 오사무를 보라. 대중에게 <우주소년 아톰(철완 아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의 신'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한편 '쇼와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라 불릴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의학박사 학위에다 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자기 공부를 만화 작업에 더하여 수많은 걸작을 낳았다.

데즈카 오사무는 <아돌프에게 고한다>에서 세 명의 아돌프를 그린다. 널리 알려진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유대인 소년 아돌프 카밀, 독일인 소년 아돌프 카우프만이다. 그러니 이는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이 교배한 '팩션'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히틀러가 실은 유대인이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만화는 히틀러의 출생 증명서를 추적하는 스릴러로서도 훌륭하지만, 급변하는 역사에서 아돌프 세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를 눈여겨보면 비로소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아돌프 카밀과 카우프만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에서 둘도 없는 원수 사이가 되었고, 미술을 사랑하던 섬약한 청년 아돌프 히틀러는 결국 전쟁 미치광이로 변신했다. 이들은 모두들 자신이 직면한 절박한 현실에서 정의롭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어떤 아돌프도 이성을 잃어서 이런 비극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돌프 셋은 전부 정의를 말함에 있어 진정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인류가 야만으로 후퇴하는 세계대전이 이성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오싹한 절망을 안겨준다.

역사가 '아돌프'에게 묻는 책임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가 세 명의 아돌프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죄를 물으려 한다. 단지 데즈카 오사무는 네모난 그림컷 안쪽의 가짜 아돌프가 아니라 컷 바깥에서 살고 있을 수많은 '진짜 아돌프'에게 죄를 환기시키고 있다. 세상에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주 흔하다. 독일인 아돌프, 유대인 아돌프, 미국인 아돌프, 일본인 아돌프, 한국인 아돌프가 있다.

진짜 이름과는 상관없다. 아돌프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름이다. 그러나 평범한 '아돌프'가 자칫하면 끔찍한 야만의 대명사 '아돌프'로 되기는 아주 쉽다. 그래서 데즈카 오사무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아돌프에게 고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지 않으면 당신도 언제든지 악의 무저갱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그러니 이는 어제의 아돌프에서 오늘의 아돌프에게 영원히 상속되는 단죄다.

앞서 말한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하다. 황국소년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전쟁이 나쁘다는 걸 몰랐다. 일본의 일부 전쟁세대는 '우리는 모르고 그랬다'고 변명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변명한다. 모르는 게 죄냐? 잘못이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잘못이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원인이 된 나를 진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의 자세라는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무지했던 책임을 져야 한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무지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책임을 졌다. 무지에 대한 책임은 무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즉 세상을 똑바로 보고 악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요시모토 다카아키가 전쟁 책임론을 말하고 마르크스주의에 투신한 일은 책임의 방법이었다.

청년 시절 군수공장에 동원되었다가 오사카 공습을 경험했던 데즈카 오사무는 평생 국가주의와 전쟁을 증오하며 살았다. 그는 만화의 네모 세계에 아돌프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려 했다. 그래서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탄생한 것이다.

비록 사실 반, 상상 반으로 지어낸 만화지만 아돌프의 죄를 거듭 환기시키고 무지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 바로 이런 만화야말로 걸작이란 말을 붙일 만하다.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돌프를 역사에 남겨두는 것이다. 어제가 오늘에게, 오늘이 내일에게 아돌프의 이름을 묻고 답해야 한다. 아돌프가 역사에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