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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 꿈 새롭게 품어...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쓰는 일"

[순천시장 예비후보 릴레이 인터뷰2] 노관규 순천시장

등록|2009.12.08 17:52 수정|2009.12.08 17:52
앞으로 6개월여 뒤인 2010년 6월 2일, 제5기 민선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내년 지방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은 2010년 2월 2일부터 시작되지만, 지역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출마예상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일찌감치 출마 선언을 공식화한 후보자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나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에서는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지금 순천지역 정가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주자들은 모두 민주당 공천을 목표로 뛰고 있다. 때문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들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민주당 공천을 받기위해 밑바닥 민심을 얻고자 뛰고 있는 순천시장 예비후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자 말

▲ 정원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준비중인 노관규 민선4기 순천시장 ⓒ 양준석



노관규 현 순천시장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렇게 올라가는 서울길에 맞는 바람은 상당히 시리고 찼으리라. 그게 1978년 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돈을 버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때 그는 운명이 지금처럼 바뀐다는 걸 알았을까. 그렇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순천을 떠난 삶이 이후 거친 파도를 탔다. 그로부터 어느덧 30년 변화의 결정체 '순천시청 시장실'에 도착한 11월 중순 오후 3시, 가을 태양도 빛나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많지 않아 앞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입맛 다실 시간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순천만정원박람회 얘기부터 가볍게 했다. 노관규 시장은 예상문제가 나왔다는 듯 지체없이 "순천의 꿈을 새롭게 품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여 의미를 부여했다. 순천만정원박람회에 대한 기사는 다른 언론에서 많이 다뤄 우리신문은 다른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 시장도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그럴 수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구로공단에 취직을 했다.

- 고등학교 진학할 때도 쉽지 않았다면서요.
"당시 작은아버지가 순천에서 만화가게를 하고 있었어요. 작은아버지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매산고등학교를 다녔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것은 여동생이 악세사리 공장에 있었습니다. 부산은 왠지 낯설고 그래서 서울로 갔습니다."

- 공단에서 몇 년정도 일했나요.
"2년정도 공단에 있었습니다. 몇 개월동안 라면만 먹어서 몸이 퉁퉁부어 올라 가라앉지 않을때도 있었지요. 그게 영양실조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 그럼 그때 세무공무원이 된 건가요.
"아니죠. 공단에서 나와 수유리에 있는 우유보급소에서 총무로 일했지요. 거기서 공부를 한 겁니다. 당시 세무공무원에 합격했을때 정말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문과출신이라 '부기'를 몰랐어요. 부기라면 '키타부기'만 알았지요. 뒤늦게 부기를 배우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 군대는 언제 다녀왔나요.
"세무공무원 하는 도중에 군대를 갔습니다. 5군단 통신병이었는데, 통신용어를 몰라 맞기도 무지 많이 맞았습니다. 어느때는 하도 맞아 머리가 부어서 하이바(군모)가 안써질 때도 있었으니까요."

공무원이 되고 보니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군대 제대하고 몇 년을 더 근무하다 본격적인 사법시험 준비를 한다. 이른바 고시생이 된 것이다. 남들처럼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할 처지는 아니었기에 사직도서관을 이용했는데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첫눈에 반했느냐고 물어보니 "서울 여자라 그런지 세련되어 보였다"고 했다. 아무래도 첫눈에 반한 것 같지는 않았나 보다.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만났으니 여자집안에서 승낙이 쉽지 않았을 터. 장인 장모가 당연히 반대가 심했다고.

- 어떻게 하였나요.
"별수 있나.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사법시험 합격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죠. 전라도 촌놈이 고졸에다 고시준비생이니 당연히 반대가 심했죠. 공부시작 4년만에 합격하고서야 결혼했습니다. 연수생 시절에 골드카드가 나왔는데 그걸로 카드깡을 해서 결혼자금 마련했습니다."

-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었습니까.
"하나는, 인생을 마이너리그로 살았기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선 당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어려운 여건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 대검 중수부에 발탁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당시 모 중수부 과장이 반대를 했다 하더군요. 촌뜨기를 받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인상은 맘에 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대검중수부는 역량이 있으면 되는 곳입니다. 한보사건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을 구속시키면서 제 능력의 200%를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특수수사에서 자금추적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자부 합니다."

호남인의 한을 풀어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발탁은 새로운 출발이었을 터.

- 김 전 대통령의 전화를 직접 받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수원지검에 있을 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해보라는 권유와 함께 도움을 요청 받았을 때 영광스러웠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왕이면 어려운 지역에서 출마를 하여 도움이 되고 싶어, 당시 정치거물이던 한나라당 이부영과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었습니다. 결과는 졌지만요."

- 국회의원이 최종 목표인가요.
"물론 권력을 얻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목표를 정해놓고 하진 않습니다. 순천시민들께서 저에게 국정을 위해 일하라는 기회를 주시는 때가오면 도전 하겠지만 현재 시장으로서의 일도 아주 중요합니다."

- 시장직의 집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시장직이 고되고 힘든 것도 많지만 보람되고 좋은 일입니다. 저는 시장직을 하면서 정치적 안목이 더욱 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게으름을 피울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은 같은생각 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 많지만 시장은 혼자이기에, 생각 한 번 잘못하면 많은 일들이 어그러집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 내년 선거에 도전하는 많은 인사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뛰고 있는 분들은 조금 무례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제 임기가 8~9개월이나 남아있습니다. 민심을 교란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전임 시장이 부재중일 때 나섰습니다. 당당하게 더 나은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에서 하는 정책을 인신공격성 어투로 깎아내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 조금 격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제가 출마 할 때와 시장직을 준비할 때는 두 가지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시장'과 '새로운 순천'이라는 모토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민주당을 일관되게 지킨 사람입니다. 다른 정당에 몸을 담은 적이 없습니다. 저에 대해서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하고 다만, 사람이 싫은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싫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순천시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사람들이 돈은 자원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땅은 자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수의 화학단지와 세계박람회, 광양의 제철소와 광양항 등으로 인해 주변도시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순천은 지금까지 교육 이외는 이렇다 할 도시가치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순천만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원박람회를 통하여 도시브랜드에 대한 비전과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결국 시민들의 몫입니다. 어떻게 도시가치를 높여갈 것인지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우리신문에도 중복송고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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