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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을 얻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김두경의 상형한글(상형+조형)전

등록|2009.12.08 19:50 수정|2009.12.08 19:50

▲ 김두경의 상형한글전 현장. ⓒ 김상기


서예가 의사전달의 기능을 담당하던 시절, 서예는 삶과 밀접한 관계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예는 소수 사람들만의 전용물이 되고, 일반으로부터 멀어졌다. 현 시대에서 서예는 소통의 도구라기보다는 예술의 한 장르로써의 역할이 더 중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문이 아닌 한글 서예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외국인들은 딱딱하고 비슷비슷하게 기계로 찍은 듯한 한글 서예를 예술로써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예는, 그 중에서도 특히 한글 서예는 대중과는 더 멀어졌다. 향유 층의 감소는 서예가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외종조부인 고 강암 송성용 선생 밑에게 먹을 갈며 서예를 배웠던 김두경(50)씨 역시 처음에는 여느 서예가처럼 한자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한글 서예의 대중성, 그리고 그 무한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1997년부터 한글 서예를 디자인 콘텐츠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러기를 10여년. 그는 한글과 서예, 그리고 디자인이 만나면 또 다른 예술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현재 스스로가 개발하고 이름 붙인 '상형한글'의 국내 1인자다. "획 하나를 그대로 긋지 않고, 그 안에 표정을 입히는 데 10년 세월이 걸렸다"는 고백은 그저 나오는 말이 아니다. 쉬운 일이라면 누구라도 했을 테니 말이다.

서예가 김두경씨가 그간의 작업성과물을 보여주는 자신의 네 번째 개인전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지난해 1월 서울에서 10년 침묵을 깨고 자신의 상형한글을 일반에 선보인 지 근 2년만이다. 이번 전주 전시 역시 주제는 상형한글(상징+조형)이지만, 서울에서는 전시할 수 없었던 대형작품과 새롭게 시도한 실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 꽃을 보며 명상하는 '왜' ⓒ 김상기


'왜'라는 한글 글자 하나만으로 15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가의 그 '왜'라는 단어 하나에 15개의 각기 다른 표정을 덧입힌 것이다. 어떤 왜는 꽃을 보며 명상에 잠겨 있고, 부부처럼 왜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는가 되묻기도 하고, 혹은 무엇 때문에 다퉈야하는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 다툼의 '왜' ⓒ 김상기


"'왜'라는 글자를 티셔츠 디자인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근데 글자가 너무 밋밋하고 재미가 없으면 누가 그 티셔츠를 사려고 하겠어요. 글자에 다양한 상상력이 가미되면 더 없는 상품이 탄생하는 겁니다."

▲ 부부의 '왜' ⓒ 김상기


보수적인 서예계 일각의 "서예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김두경씨의 상형한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1인 창조기업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그의 글이 새겨진 티셔츠가 외국인 대상의 국내 면세점에서 인기 품목으로 자리 잡는 등 한글 서예의 대중화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깊이 있게 서예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단계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며, 10년 넘게 서예를 배운 제자들이 아직도 한글 디자인을 시작하지 못할 정도"라며 상형한글이 결코 우연히, 또는 감각만으로 단시일 내에 이뤄진 성취가 아닌 지속적인 구도과정의 한 결과물임을 강조했다.

서예는 선과 획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김두경씨는 "획이라는 것은 정신이 실린 선"이라며 "획을 얻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실에서 오는 10일까지 전시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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