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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 꿈의 행진을 시작하다

색소폰 동호회의 '제 1회 난소리 음악회'

등록|2009.12.09 10:29 수정|2009.12.09 10:29
12월, 한 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저기 송년모임들을 위한 준비로 술렁거리고, 통 연락이 되지 않던 사람들도 12월이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동안의 노력을 밖으로 내놓기 좋은 달이기도 하다. 아이들만 배운 것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중년의 아버지들도 자신들이 배운 것을 가족들 앞에서 유치원 재롱잔치 발표하듯 솜씨를 뽐내고 싶어 한다.

난소리 음악 발표회색소폰 동호회에서 처음으로 발표회를 가졌다. ⓒ 박금옥


젊었을 때는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 때문에 좋아하는 것들을 접고 살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고 아이들이 다 자라서 제 갈 길로 가게 되면 남녀를 떠나서 중년의 사람들은 '빈둥지증후군'을 앓게 된다. 그래서 다 큰 아이들을 향한 해바라기를 떨치고,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그동안 꿈만 꾸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려고 취미교실을 기웃거리게 된다.

예전에는 부부들이 거의 따로 움직였다. 남자들은 집안의 여자들에게 자신들의 취미활동에 동참시키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족이 배제된 모임이 주를 이루었다면 요즘은 달라졌다. 아예 부부가 함께 같은 취미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부인이나 혹은 남편에게 자신의 취미생활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조언자로 나서줄 것을 간청하기도 한다.

색소폰발표회'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연주하고 있는 김춘환님 ⓒ 박금옥


그런 취미중의 하나가 중년의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색소폰 배우기다.

색소폰으로 뒤늦은 꿈 찾기에 나선 아버지들을 응원하는 자리가 지난 6일에 마련되었다. 중년의 아버지들이 들뜬 마음으로 가족들을 초청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자리였다. 연주회장으로 빌린 동네 라이브카페 무대에는 '제1회 난소리 음악회' 현수막도 걸렸다.

아버지들은 현역이거나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를 했거나 간에 직업, 나이 불문하고 색소폰을 매개로 동기들이 되어 삶을 즐기고 있다. 그들의 평균 나이는 오십 중반을 넘어섰을 것이다. 젊었을 때 배웠으면 훨씬 더 빨리 잘 습득을 했겠지만, 이제는 배에 힘도 빠지고 호흡도 달려서 불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아버지들의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다.

사회자로 나선 김진선(52)님의 "첫무대고 처음 머리 올리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송년의 밤을 갖게 되어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한 뒤 색소폰 연주를 시작했다.

색소폰 연주 발표회그날 김진선님은 사회도 보고 연주도 하느라 바빴다. ⓒ 박금옥


첫 번째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보다 젊어 보인다. 배운 지 얼마 안 돼 색소폰 연주는 한 곡만 하고 한 곡은 노래로 대신했다. 가수가 와서 뺨맞고 울고 가게 생겼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연주 한 김춘환(53)님은 "여보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깝다, 그러니 앞으로 재밌게 살자"고 외친다. 부인 생일 축하곡이라면서 'Stranger on the shone'도 연주되고, 'For ever with you를 연주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친단다. 그럴 때마다 '우우' 관중의 밉지 않은 야유도 연주곡에 함께 실린다.

'후후 푸푸', '삐삑~~'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열심히 연습을 했건만, 가족들이 지켜보는 데서 하려니 색소폰이 생각만치 불어지지 않는다. 자꾸 호흡이 새어버린다. 그렇다고 누구라도 탓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격려의 박수가 쏟아진다.

예비 며느리와 예비 안사돈의 축하를 받으며 연주를 한 권태호(56)님은 오늘 출연한 사람들 속에서 베테랑에 속하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내가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 '낭만에 대하여'인데, 사돈 앞이라 그런지, 갑자기 리듬을 탈 수가 없더라고"하면서 평소 실력을 다 발휘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색소폰연주회권태호님은 테너 색소폰으로 '낭만에 대하여'를 멋지게 연주했다. ⓒ 박금옥


약방의 감초처럼 가족 노래자랑도 진행됐다. 부부가 손잡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부인 옆에서 어깨가 저절로 으쓱 올라가는 남편도 있다.

"몸을 리듬에 맞추어 흔들면서 해야 연주가 잘되는데, 갑자기 경직이 되어서...연주가 엉망이었어, 하하."
"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이, 불수가 없더라니까."
"자넨, '루이 암스트롱' 같았어" 
서로 칭찬도 하고 조언도 하고, 가족들 앞에서 무대 위에 있을 때 자신이 어떠했는지도 궁금해 묻는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가족들을 불러서 함께 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이렇게 좋은 걸 하면서 따로 따로 놀면 보기 안 좋아."
"그렇다면 이왕 내친 김에 신춘 음악회도 해볼까?"

난소리 색소폰 회원그날 연주를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홍일점 윤연희 원장 ⓒ 오경모


어설픈 연주회였지만 가족과 함께한 자리라서 아버지들은 대단히 흥분했다. 꼭 재롱잔치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아이들처럼 들떴다. 연주회가 끝나고 뒤풀이에서의 무용담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 같지 않게 순진무구해 보인다.

하고 싶은 것을 접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아버지들, 자신의 꿈을 가슴 한 편에 숨겨놓고 꺼내볼 새도 없이 살아온 아버지들, 이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가족의 후원자로 있었지만, 이제는 가족이 아버지들의 후원자가 되어 줄 때다.
꿈을 꾸고 그것을 천천히 완성해 가는 아버지들의 삶은 여전히 든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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