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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뉴타운' 헐린 집만 남나

답십리16구역 재개발 사업, 법원 제동... 조합 "항소할 것"

등록|2009.12.11 11:06 수정|2009.12.11 11:06

▲ 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주택가에 대한 철거가 시작된 가운데,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세입자간의 분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은 8일 오후 서울 답십리동 주택가의 모습이다. ⓒ 선대식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할 나이에, 매일 같이 법원에 다니고 있다. 내 땅 33㎡(10평)를 지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16구역 뉴타운 지역에서 만난 고흥대(80)씨의 말이다. 그는 "재개발조합이 뉴타운사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비리나 잘못된 부분들이 나오고 있다"며 "조합에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조합에 재개발 사업 계획을 다시 세우라는 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냈다"며 "조합이 올바른 길을 갈 때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반면, 재개발조합은 "전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항소를 하면서 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향후 소송에서 조합이 또 패소할 경우, 이미 이주가 85% 이뤄지고 철거가 시작된 상황에서 뉴타운 사업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조합의 '묻지마 재개발(뉴타운)'이 '유령 타운'을 만드는 셈이다. 또한 사업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가로 조합원과 세입자의 고통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비대위 "조합 설립, 임원 선출부터 엉망"

▲ 8일 오후 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주택가에서 철거가 이뤄지고 있다. ⓒ 선대식


답십리 16구역 뉴타운 재개발조합은 내년 착공을 목표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조합은 서울 답십리동 178번지 일대 14만5574㎡ 부지에 3258세대가 살고 있는 가옥 등을 헐고, 2455세대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조합은 조합원들의 분양신청을 토대로 지난해 12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 재개발 사업을 확정했다. 하지만 착공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조합의 일정은 어그러졌다. 지난 4일 조합의 관리처분계획이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조합이 조합원에게 받은 조합설립 동의서에 비용부담에 대한 사항이 누락된 것이 판결의 주요한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이유로 조합설립이 무효된 지역의 사례를 감안하면, 향후 답십립 16구역 뉴타운 사업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분양신청을 포기한 20여명으로 이뤄진 비대위는 "조합 설립뿐 아니라, 임원 선출부터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6월 총회에서 당시 조합장이 선거관리규정을 바꾸면서 현 조합 임원을 선출하려고 하자, 비대위는 총회 전에 법원에 소송을 내 "총회 때 임원 선출을 하지 말라"는 판결을 얻었다. 비대위는 "현 조합 임원의 선출이 불법이기에 그 이후 결정은 모두 무효"라고 지적했다.

조합과 시공사·협력업체가 유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도 크다. 비대위는 "조합은 2006년 7월 시공사 선정공고를 냈지만, 그 이전에 2004~2005년 삼성물산으로부터 1억2600만원의 운영비를 빌리는 등 석연치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물산은 시공사로 선정됐다.

조합과 협력업체간의 유착은 이미 확인됐다. 지난해 1월 조아무개 초대 조합장은 설계업체 선정 청탁 대가로 A사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A사는 현재 설계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조합원 부담은 늘고, 세입자는 쫓겨나고

▲ 8일 오후 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한 주민이 철거가 진행 중인 주택가를 걸어가고 있다. ⓒ 선대식


비대위는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조합원 부담이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2006년 8월 조합창립총회 때 책정된 총 사업비는 4308억 원. 이후 2007년 8월 사업시행인가 때는 5090억 원으로 늘더니, 현재의 관리처분 계획에서는 6032억 원까지 증가했다. 향후 소송에 따른 사업 지연으로 조합원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대위에서 실무업무를 담당하는 김영종(52)씨는 "조합원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조합이 재개발 이익에 대한 장밋빛 환상으로 조합원들을 현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합이 밝힌 3.3㎡ 당 조합원 분양가는 1300만 원 안팎이다. 111㎡(34평)형은 4억4천만 원에 이른다. 조합은 2008년 3월 사업설명회에서 2012년 입주할 때 111㎡형 시세가 7억~8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홍보했다. 현재 비슷한 크기의 인근 아파트 시세는 4억원 대. 비대위는 "예상 시세를 터무니없게 높게 책정했다"고 지적했다.

조합은 비대위 뿐 아니라 세입자와도 분쟁을 치르고 있다. 조합은 일부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를 내주지 않아 올해 2번 소송을 당했고, 2번 다 패소했다. 조합은 일부 법적 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한 세입자는 "조합은 세입자를 상대도 하지 않는다"며 "주거이전비도 못 받고 쫓겨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박수형 민주노동당 동대문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은 "조합의 양심불량이 가장 큰 문제이고, 조합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시청과 구청에도 문제가 있다"며 "향후 소송 결과에 따라 '뉴타운'사업이 답십리 16구역을 '유령 타운'으로 만들 수 있고, 세입자는 더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재개발 조합 "세입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 줄여야"

▲ 8일 오후 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주택가에 대한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 선대식


반면, 조합은 "재개발은 전 조합원이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관리처분계획 무효 판결은 사업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봉 조합장은 "관리처분계획 무효 판결은 사소한 문제로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총회를 통해 새로운 관리처분계획을 승인받겠다"며 "또한 무효 판결을 낸 재판부는 조합 쪽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항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비대위 사람들은 이미 분양신청을 포기했고 그들이 가진 땅과 건물이 모두 조합에 넘어온 터라, 그들은 더 이상 조합원이 아니다"며 "이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재개발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어, 조합원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 조합장은 "현재의 시공사·협력업체는 조합이 추진위였던 때부터 함께 해온 곳으로, 조합과 인간적인 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한 사업비 증가와 관련, "일반 분양을 늘리는 등 조합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입자 대책과 관련, 한 조합 관계자는 "임대주택을 지급받은 세입자에게도 주거이전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총사업비가 늘어났다"며 "조합원의 이익을 축소시키는 세입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은 줄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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