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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흉부외과, <뉴하트> 만들 의사가 없다

갈수록 지원자 줄어... 수가인상에도 실질적인 지원 미비

등록|2009.12.13 15:02 수정|2009.12.13 15:02

▲ 흉부외과를 소재로 방영됐던 드라마 <뉴하트>의 수술 장면 ⓒ MBC


"인원은 적은데 담당해야 할 곳은 병동과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등 여러 곳입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대응이 늦을 수 있는 원인이 되지요. 얼마 전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어요. 당시 내과계 의사가 당직이었는데 직접 처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지라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급히 달려갔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응급처치가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있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지난 6일 지방의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ㅇ씨는 흉부외과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최근에 있었던 사례를 전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 보니 흉부외과계 응급환자가 들어왔음에도 수술중이나 다른 중환자를 보고 있을 경우에는 즉각적인 대응이 안 돼 외과적 처치가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ㅇ씨는 "흉부외과는 폐와 심장 등 생명과 직결된 부분을 다루는 분야로 특성상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지만 의사 수가 부족해지면서, 결국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흉부외과 의사 부족...진료 받으려면 해외로 가야 할 수도

흉부외과 의사들이 줄어들면서 국민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계속 제기돼 왔다. 그러나 개선되는 조짐이 안 나타나는 데다 마련된 대책도 큰 효과를 나타나지 않고 있어, 해가 갈수록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 흉부외과 의사는 "전문의를 하나 키우는 데는 의대 과정을 빼고 10년 이상이 필요한데, 지금 대책도 늦었다"면서 "자칫하면 흉부외과계 환자들은 해외로 나가 치료를 받고 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흉부외과 의사 수가 부족한 곳은 비단 어느 한 병원만이 아니다. 수년째 흉부외과 지원자가 줄어들면서 서울의 유명 병원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병원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전체 정원은 70명이지만 올해 지원자 수는 30명 정도로 최근 10년간 전공의 정원 확보율은 50%에 못 미치고 있다.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병원들도 상당수다. 서울보다는 지방병원들이 더 심각한 편이다.

ㅇ씨가 전공의로 있는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은 8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원자가 부족해 지금껏 실제 채워진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는 것. 그나마 2명은 올해 전공의 과정을 마치는 상태라 내년에는 1명이 담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최근 끝난 전공의 지원 마감에서도 흉부외과 지원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서울지역 대학 병원의 한 흉부외과 교수는 "1년에 3500명 정도의 의사가 나오는데 이중에서 흉부외과 지원자는 20~30명에 불과하다며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심장과 폐 등 생명의 중요한 부분인지라 다른 과보다 우수한 인력이 와야 하는데, 정원이 미달되면서 성적이 낮은 사람들이 오게 되면 의료의 질이 낮아질 수도 있어 우려된다"는 것이다. 

흉부외과 지원자가 감소하는 것은 일이 힘들기 때문이라는 인식 탓이지만, 지원자가 줄면서 이같은 기피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앞의 전공의 ㅇ씨는 "새벽에 응급환자가 생겨 혈관 쪽을 틔워줬는데, 옆에서 돕던 신경외과 인턴이 이를 보더니 '1~2년차도 아닌 4년차가 새벽에 나와야 하는 현실이라면 흉부외과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외과계열 의료수가 인상, 수당 올려 의사 수 늘려라

흉부외과서울지역 한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외래진료실 ⓒ 성하훈


이에 대한 문제인식이 커지면서 정부는 지난 2월 흉부외과 및 외과계열 의료수가인상을 결정했다. 외과계열 전공의 지원 기피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총 91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 외과는 30%, 흉부외과는 100%인상됐다.

예컨대 1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수술이 이뤄질 경우 외과계 의사가 집도를 하면 의료수가가 130만원이 적용되고, 흉부외과 의사가 집도하면 200만원이 적용된다. 같은 수술이더라도 어느 과 의사가 집도하느냐에 따라 차등이 생기는 것이다.

업무가 힘든 만큼 수당이라도 올려줘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흉부외과계의 지속적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수가가 인상되면서 서울 대형병원들의 경우 흉부외과 전공의의 급여가 200만~300만 원 정도 높아졌다.

수가 인상이 이뤄진 지 몇 달 안 돼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흉부외과 의사들은 그나마 조금의 효과는 있었다고 보는 분위기다.

대한흉부외과학회의 관계자는 "이번 전공의 지원자 수를 볼 때 의료수가 인상 조치가 미미하지만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20명에 불과했던 지원자 수가 30명으로 늘어난 것은 미약하지만 수가 인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늘어난 수익을 다른 용도로 전용에 불만 커지는 의사들

그렇지만, 병원들의 궁극적인 개선 노력이 부족한 데다 인상된 수가를 원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흉부외과 의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병원 수익이 늘었음에도 아주 적은 액수만 사용되거나 흉부외과를 위해 쓰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흉부외과 의사들의 지적이다.

해당 의사들은 "수가 인상으로 인해 병원들이 추가로 얻는 수익이 상당한데도 이 돈이 흉부외과 장비 확충이나 인력 증원 보다는 병원 운영비 등으로 전용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기는 듯, 고생은 흉부외과가 하는데 잇속은 병원들이 다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 병원의 ㄴ교수는 "수가가 인상되면서 흉부외과로 인해 병원이 매월 1억 이상이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흉부외과로 사용되는 비용은 전공의 3명의 월급 인상분 300만원에 불과하다"며 "그래 봤자 전체적으로 900만 원 정도여서 나머지 돈은 목적과 다르게 쓰여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대학병원의 한 교수도 "서울 대형병원들의 경우 흉부외과로 인한 추가 수익이 연 60억~70억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를 병원 운영에 전용하고 있는 일부 부도덕한 병원들이 있다"면서 "병원이 예뻐서 올려준 돈이 아닌데 그런 식으로 전용된다면 흉부외과 여건 개선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수가를 올려준 것은 흉부외과 지원을 확충해 의사수를 늘리고 의료여건을 개선하라는 것이지, 병원들 예쁘니까 이익 더 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레지던트를 끝내도 자리가 없어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병원은 자리가 더 늘어야 합니다. 작은 병원들에도 흉부외과가 있어야 응급환자가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투자하라고 흉부외과 의사들이 어렵게 요구해 얻어낸 것인데, 이것을 병원 적자 보전이나 운영비로 전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볼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돈을 직접 달라는 것도 아니고 증액된 비용은 병원들이 흉부외과를 위해 써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 교수는 "수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병원에 대해서는 윤리적 경고가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와 국민이 흉부외과 현실에 대해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가 인상으로 보전된 수입 어디에 쓰고 있나?

▲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된 국립대 병원들의 외과계열 수가 인상 후 조치사항. 국정감사가 이뤄진 직후 병원들의 추가 조치가 뒤따랐다. ⓒ 박보환 의원실


이에 대해 병원들은 '흉부외과 쪽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입장'이다. 흉부외과가 투자비용에 비해 수익이 적어 병원들이 적자 보전을 위해 쓰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다른 진료과와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는 병원들도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의사들에게 돌아가는 지원에 차등을 두기 어렵다는 것.

서울대 병원의 한 관계자는 이를 '계산법의 차이'로 설명했다. 병원 운영에 있어 흉부외과에 들어가는 돈이 결코 적지 않은 데다, 다른 부서에 비해 300만원 씩 전공의 월급을 인상한 것은 미흡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병원들도 적당한 속도로 지원책을 준비 중"이라면서 "수가가 늘었다고 해도 자칫 운용을 잘못해 실수할 가능성도 있어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가에 얹어준 것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환자를 많이 봐야 혜택이 있는 것이고, 규모가 작은 병원은 환자가 있어야 처우 개선이 가시화될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하고 "근무환경 개선과 스태프 확충이 점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기에 1년 동안 쓰다 보면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 접근을 통해 풀어나가야지 시행초기 단계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들이 증액된 수가를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부분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지적됐다. 국립대 병원들에 대한 감사에서 부산대·전남대·충남대 병원 등은 수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흉부외과 지원을 위해 사용된 금액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수가인상으로 보존된 수입을 어디로 쓰고 있냐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흉부외과에 지원을 하는 병원들도 인상분에 비할 때 규모가 많지 않거나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흉부외과 전공의는 "레지던트 모임에 가서 다른 병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곳 정도만 대학원 등록금 전액 면제 및 연 1회 해외 학회 참가를 지원해 줄 뿐, 나머지 병원들은 대부분 형식적인 지원만 있더라"며 "실제 얻는 수익의 10%도 안 되는 비용만 지원하는 병원들의 처사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복지부 "전공의 확보 노력 안하는 병원들에 불이익"

▲ 흉부외과 의사들을 소재로 방영됐던 드라마 <뉴하트> ⓒ MBC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수가 인상분의 사용처를 관련 부처가 지정해 줄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목적에 맞게 사용될 수 있도록 사용을 정부가 지휘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의 실무 관계자는 "사용처에 대한 규정을 두기는 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간 의사를 고용하는 병원들에 청구권이 있는지라 의사들에게 직접 갈 수는 없다"면서, 다만 "목적성이 있는 지원이라 역할에 맞게 활용될 수 있도록 계도할 생각은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병원별 현황을 파악 중"이라며 "내년 실적을 비교해서 전공의 확보에 노력하지 않는 병원은 정원 조정을 통해 불이익을 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진료를 많이 하고 흉부외과 투자에 노력하는 쪽에다 정원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최근 일선 병원들에 공문을 보내 '흉부외과 및 외과 전공의 지원 계획' 및 '2010년 9월까지 이들 전공의 지원에 대한 실적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적성 예산에 대한 계도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병원들이 늘어난 수익을 외과계열 지원에 제대로 활용하는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서울은 비교적 양호, 지방 병원 심각
대형병원에 환자 집중, 부익부 빈익빈 현상


외과 수술서울대병원의 외과 수술 모습 ⓒ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사 수가 적지만 서울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입니다. 심각한 것은 지방입니다."

흉부외과 위기를 이야기하는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서울보다는 지방이 흉부외과 사각지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서울은 빅4라 불리는 서울대병원과 연세의료원, 아산병원 삼성의료원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 병원들 중에는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한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지원자가 전무한 현실이 지방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이다.

의료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지방 병원 의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늘게 만든다고 한다. 조금만 실력 있다 싶으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려 하기 때문에 지방대학 병원이 여건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흉부외과 수가 인상으로 인한 수익이 지방 병원에 비해 서울의 대형병원이 몇 배나 높은 이유도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지방병원이 연 10억 정도 늘었다면 서울 대형병원은 60억~70억으로 수술과 진료가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 대학병원들이 흉부외과에 지원을 늘려서 여건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의사들의 이야기였다.

지방 대학병원의 한 의사는 "수가 인상이 이뤄진 후, 흉부외과 차원에서 논의를 거쳐 병원 측에 의료 장비 확충과 인력 지원 등을 장기적인 비전 제시를 요구했으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거나 묵묵부답이었다"며, "서울대병원과 대형병원들이 흉부외과 전공의 월급을 인상하자 그때서야 일부 개선조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줘야 할 돈을 주면서 흉부외과 고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투여서 자존심도 상했고 사기도 저하됐다"고 토로했는데, 지방 병원들이 흉부외과 여건 개선에 소홀히 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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