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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93) 죽은이

[우리 말에 마음쓰기 814] '장애어린이'와 '장애아'

등록|2009.12.10 13:19 수정|2009.12.10 13:19

ㄱ. 장애어린이

.. 이 행사장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장애인, 특히 장애어린이들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  <임세근-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리수,2009) 169쪽

 '휠체어(wheelchair)'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바퀴걸상'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특(特)히'는 '더욱이'로 다듬고, "많다는 점(點)이다"는 "많다는 대목이다"로 다듬어 줍니다.

 ┌ 장애아(障碍兒) : 병이나 사고, 선천적 기형으로 말미암아 신체를 제대로
 │   움직일 수 없는 아이
 │
 ├ 장애어린이
 └ 장애어른 / 장애할머니 / 장애오빠

 장애가 있으니 말 그대로 '장애어린이'입니다. 한자 '아이 兒'를 넣어 '장애아'처럼 적을 수 있지만, 어린이 모습 그대로 "장애 + 어린이" 짜임새를 살리며 말 한 마디 빚을 수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라면 '학교어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어렵게 '취학아동(就學兒童)'처럼 써야 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라면 '노래어린이'라 해도 됩니다. '그림어린이'나 '사진어린이'처럼 이야기할 수 있고, '책어린이'나 '글어린이'라고 해 보면, 우리 둘레 어린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거나 즐기고 있는가를 한눈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울 집 아기는 아빠가 빨래를 할 때에 옆에서 같이 놀기를 좋아하니 '빨래어린이'라 할 수 있는데 잘 칭얼거린다면 '칭얼어린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차를 타 보면 '아동석'이나 '유아석'이라고 따로 마련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자리를 가리킬 때에는 '어린이자리'나 '아기자리'라고 이름을 붙이면 어린이도 손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같이 '유아원(幼兒園)'과 '유치원(幼稚園)'이라고만 했습니다만, 이제는 '어린이집'이라는 새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모이는 배움터를 알맞고 슬기롭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아원과 유치원을 따로 나누어야 한다면 '아기배움터' 같은 이름을 지어 보면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면서 '어린이 헌장(憲章)'을 내놓기도 하는데, "어린이의 권리와 복지, 바람직한 성장상(成長像)을 제시하여 사회의 전체가 이를 지켜주고 키워가며, 또 어린이 스스로도 그렇게 힘쓰게 하기 위해 마련한 헌장이다" 같은 풀이말은 어린이한테 너무 어렵겠다고 느낍니다. '헌장'이라는 낱말부터 '다짐'이나 '다짐말'이라고 고쳐쓰거나, 아니면 "어린이 지킴말"이라든지 "어린이를 보살피겠다는 다짐"처럼 풀어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어린이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믿으려 한다면. 우리가 더없이 어린이를 보듬고 보살피고 지키고 껴안으려고 한다면.


ㄴ. 죽은이

..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캐나다 북서 지방에서 보고된 결핵으로 죽은 사상자 수는 캐나다 다른 지방의 10만 명당 50명과 비교했을 때 10만 명당 761명이다 ..  <팔리 모왓/장석봉 옮김-잊혀진 미래>(달팽이,2009) 148쪽

 "캐나다 다른 지방(地方)의 10만 명당(-當) 50명과 비교(比較)했을 때"는 "캐나다 다른 곳이 10만 명에 50명 꼴이었을 때"로 손질해 줍니다. "죽은 사상자 수"는 겹말입니다. '사상자'가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이니까요. 이 대목은 "죽은 사람"이라고만 적거나 '사상자'라고만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적은 분은 왜 겹말로 적었을까요. 이 글을 적은 분은 '사상자'라고 하는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을까요. 아니,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고 애쓸 마음은 없었을까요.

 국어사전에서 '사상자' 하나를 찾아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다른 낱말 두 가지를 더 찾아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국어사전에 안 실리리라 생각하면서도 '죽은이'와 '죽고다친이'를 찾아봅니다.

 ┌ 사상자(死傷者) :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
 │   - 교통사고로 생긴 사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 사망자(死亡者) : 죽은 사람
 │   - 이번 열차 사고로 숨진 사망자 명단이 신문에 실렸다
 └ 사망인(死亡人) = 사망자

 예부터 익히 알고는 있는 일이지만, 참말 우리 국어사전은 우리 말글을 잘 안 싣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가꾸고 우리 넋을 일굴 만한 말글은 제대로 안 싣습니다. '사망자'와 '사망인' 두 가지를 다 싣기보다는 '사망자'와 '죽은이'를 나란히 실어 놓으면 한결 낫지 않을까요? 조금 더 마음을 쏟는다면 '죽은이' 하나만 번듯한 올림말로 삼고, "사망자 = 죽은이"와 "사망인 = 죽은이"처럼 말풀이를 달면서, 우리 스스로 손쉽고 꾸밈없는 우리 말글을 쓰도록 북돋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곱고 맑은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 죽은이 : 숨이 끊어진 사람이나 목숨이 다한 사람
 └ 죽고다친이 : 숨이 끊어지거나 몸 한쪽에 생채기가 난 사람을 두루 가리키는 말

 우리 어른들 생각으로는 '죽고다친이' 같은 낱말을 쓰기보다는 '사상자' 같은 낱말을 쓰는 일이 한결 어울리거나 알맞을 수 있습니다. 신문기사를 쓰는 사람이라면 글자수가 적은 낱말이 좋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병원이나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 또한 당신 일터에서 오래도록 익숙한 낱말이 한결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같은 낱말 그대로 쓴다고 해서 탈이 나거나 나빠질 일이란 그리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볼 때에는 어떻겠습니까. 우리 어른들끼리 익숙한 여느 한자말이라고 해서 그냥저냥 쓰는 일이 더 좋겠습니까. 이런 한자말을 한자까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물려주어야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손쉽게 익힐 낱말을 가르치면서 이처럼 손쉬운 낱말을 바탕으로 수없이 다른 새말을 빚어낼 수 있는 틀거리를 가르치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손수 우리 말글을 아끼고 빛내는 길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죽은몸 ← 사체(死體)
 ├ 죽은까닭 ← 사인(死因)
 ├ 쏘아죽이기 ← 사살(射殺)
 └ …

 생각을 하면서 살고, 생각을 가꾸면서 살며, 생각을 빛내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내 생각을 아름답게 추스르고, 내 생각을 알차게 돌보며, 내 생각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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