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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헌터스'의 오락가락 일그러진 공익

[주장] 헌터스는 '50각시 60청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등록|2009.12.13 11:12 수정|2009.12.13 11:12

▲ 지난 11월 30일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의 대표인 임순례 감독이 국회정론관에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헌터스'의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 KARA (www.withanimal.net)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이하 헌터스, 12월 6일 첫방송) 논란이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방송 전 '멧돼지 사냥놀이, 헌터스 폐기 공동대책위'(공대위)는 서울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터스'의 폐기를 주장하였다. 이에 <경향신문>은 "생태 내세운 멧돼지 사냥 오락프로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헌터스가 방송 소재로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헌터스 첫 회 방송이 나간 이후 이 논란은 시민사회의 의제가 되어 신문 기사, 개인 블로그, 시청자게시판 등에 관련 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미디어오늘>에는 김영희 PD와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정호 사무처장의 맞장 인터뷰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는 김영희 PD를 옹호하는 입장의 인터넷기자협회장의 기고문과, "헌터스의 헌팅은 생태적일까?"라는 우석훈 박사의 기고문이 실린 이후의 인터뷰라 더욱 흥미로웠다.

멧돼지 포획을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양측의 주장이 활발히 기고되는 모습은 분명 우리 사회의 생명, 환경, 생태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게 된 긍정적인 현상으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특정 사안을 시민사회에 의제화하게 되고, 이에 대해 민주적이며 실증적인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게 될 것이기에, 헌터스 논란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지라, 공대위와 김영희 PD 양측은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사회에 던진 이 논쟁에 대하여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여, 시민들이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 한계를 시인해버린 '헌터스'

▲ 지난 1일과 8일 <미디어오늘>에 실린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장과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문화인류학 강사 기고글 헤드라인. ⓒ 화면캡쳐


그런데 <미디어오늘>에 실린 맞장 인터뷰에서, 이번 '생태' 논쟁을 불러일으킨 김영희 PD는 "멧돼지가 아니라,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생태구조단'이라 표방하며 제시했던 '공익'의 방향이 이제는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생태구조단을 표방하며 헌터스팀이 제시한 기획의도가 가지는 문제에 공대위측은 일관되게 머물러 있는 반면, 오히려 '헌터스'는 슬그머니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앞서 공대위에서는 첫방이 나간 직후 공식 성명서를 통해 "헌터스의 기획의도가 각종 어려움에 처한 농촌 어르신을 돕는데 있다면, 그들을 돕기 위한 따뜻한 콘셉트의 방송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며 "일회적이며 반생명적인 멧돼지 '축출'보다 농민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농촌 살리기'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또 "열 명에 이르는 유명 MC와 헬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물량이면 농촌 어르신들을 위한 획기적이고 훈훈한 방송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런 방송을 기대한다"고 지적했었다.

▲ 지난 2일 '헌터스 폐기 공대위'의 대화 요구에, MBC는 사장 면담을 거부하고 예능국 면담 요청에 대한 답도 주지않고, 사옥출입도 불허했다. 다음날 MBC를 항의 방문한 공대위가 본사 사옥 정문 앞에서 플래카드를 펼치려는 것을 경비원들이 막아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 장창훈

시청자게시판 등에서 '헌터스'에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의 거의 대다수가 '당장 멧돼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농가 입장에선 불가피한 일'이라는 뜻으로 프로그램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영희 PD 자신도 이러한 '축출'이 일회성임을 시인하고 있다. '헌터스'는 실질적으로 농가들이 겪는 멧돼지 문제에 대해 환경부 등 정부 차원에서도 해주지 못하는 특단의 해결책을 '헌터스'가 조금이나마 보여줄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무언의 약속을 해왔다. 그래놓고 금방 한계를 시인함으로써, 프로그램의 공익성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말았다.

'헌터스'가 말하는 농촌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공익성에 대해 블로거 초보농군은 자신의 블로그 '화천초보농군이야기'에서 멧돼지 개체수 조절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헌터스'와 같은 접근 방식은 반대한다.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TV예능에서 결국 '멧돼지를 잡았다'에 초점을 둘 것이며 이를 전리품 삼을 것이다. 이는 오늘 방영된 '헌터스'에서 '유독' 강조한 농민을 위한 멧돼지 사냥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볼거리를 만들어 낼 뿐이다."

사실 생태계에 멧돼지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려면 섬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농작물에 대한 피해 부분과 생태계에 대한 영향 문제는 각각 별도로 과학적인 연구와 정책 도출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헌터스'는 생태 문제와 농촌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

'헌터스'를 통해 김영희 PD가 추구하는 공익은 안타깝게도 혼란스럽게 일그러진 공익에 그치고 말았다. 아울러 농민들의 시름과 멧돼지라는 생명을 두고 벌이는 연예인들의 입담과 모험담은 일그러진 공익 위에서 다소 불편하게 벌어진다. '단비' 코너의 우물과는 달리, '헌터스'의 멧돼지 축출은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게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 불편함은 가중된다.

당장 멧돼지를 퇴치하는 건 '공익'위한 일이 아니다

이제 '헌터스'는 스스로 밝혔듯이, 생태구조단이 아니라 농촌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사색을 해야 할 것이다. 첫방에 나온 농촌 어르신들은 대부분 60살을 훨씬 넘기신 분들이었다. 헌터스팀을 반겨준 이 농촌의 50각시, 60청년 어르신들이 본의 아니게 볼거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소재가 되는 일만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진정 채식주의자 김영희 PD의 맑은 영혼을 믿고 싶다.

김영희 PD측은 차라리 장난스러운 멧돼지 축출보다, 이분들이 정성들여 경작하는 밭에 울타리를 쳐 드리거나 동물원 호랑이 배설물이라도 놓아드리는 등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 훼손된 농작물에 대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해 드리는 게 그나마 조금은 바람직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왜 농촌에 연로하신 분들만 남아 그 고생들을 하고 계신지, 진정 농촌을 돕기 위한 따뜻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헌터스에 의해 일그러진 공익을 바로 세우는 게 시급하다. 연로한 농촌 어르신을 돕기 위해 지금 당장 멧돼지를 퇴치하는 게 공익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12월 6일 <일밤> 헌터스의 첫 회 방송에서 한 할머니가 "멧돼지는 다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 ⓒ MBC


▲ <북극곰의 눈물>에서 MBC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빙하가 녹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리는 북극곰이나, 생존을 위해 탈진상태로 도시로 내려오는 멧돼지나, 모두 인간에 의해 파괴된 생태계가 흘리는 아픈 눈물이 아닌가? 공대위가 MBC 항의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가운데, '지구의 눈물' 시리즈 2탄 <아마존의 눈물> 광고판이 MBC 건물 위쪽에 걸려 있다. ⓒ 장창훈

김영희 PD를 비롯한 헌터스 제작진들이 공대위의 지적 및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의식한 듯 몇몇 컨셉을 급히 바꾸고 철저히 인간중심적이었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인다. 예를 들어 멧돼지 '포획'에서 '축출'로 바꾸고 '사냥개'를 '도우미견'으로, 5명의 엽사들이 들고 있는 총기를 '돌발 상황 대비용'이라고 친절히 소개하거나 결코 동물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멘트를 삽입하고 이금희 아나운서의 감성적 내레이션으로 설득력을 더하려는 방식 등이다. 그러나 본질을 벗어난 이런 장식들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방송 처음부터 끝까지 헌터스는 '문화재 훼손, 인간생명 위협', '사람들이 먹는 것은 다 먹어치운다'는 자막과 뉴스방송 편집화면, 그리고 멧돼지로 인해 피해를 본 농민들의 절규를 '농민들의 한'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들려주었다. 또한 분묘가 파헤쳐진 장면을 강조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공분을 유도하거나 농민들에게 "얼마나 멧돼지가 싫으세요?"라며 이 방송의 당위성에 대한 뻔한 유도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일밤은 애초의 말을 바꿔, 첫 회에서 멧돼지의 '포획'과 살생은 없고 마을 뒷산으로 '축출'한다고 하였다. 멧돼지들이 촬영팀이 철수한 이후에 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가정은 초등학생도 쉽게 할 수 있지 않는가? 첫 회 방송에서 선보인 포획틀로 멧돼지를 한 마리 잡은들 그것이 농가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해결해 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헌터스에서 포획하여 119에 인계한다는  멧돼지는 어떻게 처리 될 것인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다. 공대위의 확인 결과 멧돼지의 경우 119에서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로 보내지긴 하지만 환경부에서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하라고 공문이 내려왔기 때문에 구조 후 방사 개념이란 없으며, 결국 죽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살생의 수고와 책임을 다른 곳에 떠넘기는 정직하지 못한 행위인 것이므로, 일밤 측에서 말하는, 사살이 아닌 '축출'과 '119 인계'라는 얄팍한 단어 뒤에 숨긴 진실을 우리는 똑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공존을 목적으로 한다면, '헌터스'란 이름부터 바꿔라!

헌터스 제작진은 갈팡질팡, 진퇴양난의 고민을 방송 말미에 드러냈다. 멧돼지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일단 헌터스의 기획의도가 각종 어려움에 처한 농촌 어르신을 돕는데 있다면, 그들을 돕기 위한 따뜻한 컨셉의 방송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일회적이며 반생명적인 멧돼지 쫓기보다 농민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농촌 살리기'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기 바란다. 열 명에 이르는 유명 MC와 헬기까지 동원할 수 있는 물량이면, 농촌 어르신들을 위한 획기적이고 훈훈한 방송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방송을 기대한다.

멧돼지와의 공존을 의도하는 방송이라면 우선 헌터스라는 제목부터 바꿔라. 두 번째, 마치 쥐라기 시대의 최상위 육식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를 연상시키는 포악스런 컨셉의 '멧돼지  사진'부터 갈아치워라. 첫방이 보여준 헌터스의 컨셉으로는 멧돼지와 인간의 공존모색이라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티라노사우르스'의 괴상이 겹쳐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멧돼지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멧돼지의 생태습성을 첫 방에서 알려주지 않았는가?

헌터스에는 멧돼지가 인간의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산에서 살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혹은 멧돼지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 그들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나 농민의 멧돼지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준비가 빠져 있다. 그러기에 제작진이 주장하는 공익의 알맹이가 빠진 것이다. 게다가 농민의 시름과 멧돼지의 생명을 재료삼아 펼치는 연예인들의 입담이나 농담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지므로, 예능의 본질에서도 벗어난다.

공익과 예능 그 어느 쪽에도 적합하지 못하다면 이 프로그램의 존재이유가 없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일밤의 제작진은 헌터스가 신중하게 기획되고 준비되지 못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자진 폐지하기를 바란다.

폐기가 어렵다면, 더 이상 무리한 시도를 하지 말고 멧돼지와의 공존이란 화두를 던지며 조기 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할 거라면 '헌터스'란 이름부터 바꾸고, 농촌 생태나 농촌의 어려움이라는 큰 틀에서 멧돼지는 그 한 단면으로 정리하고 넘어가고 현재의 소농 죽이기 정책과 개발 위주 정책이 가져오는 폐해와 애환을 조명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굳이 동물과의 공존을 얘기하는 프로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재미와 공익을 담보할 수 있는 소재를 제시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 파괴의 또 다른 결과인 물 부족

생명파괴와 생태계 파괴가 가져다주는 재앙을 헌터스의 앞꼭지에 방영된 '단비'에서도 우리는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오염된 식수를 먹어야만 하는 잠비아의 모습은 바로 인간과 생명이 깃들어 살아야 할 지구적 규모의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황폐화되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인 것이다.

(물 오염으로 매년 220만 명이 숨지고 있으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25개국 인구의 절반이 2025년까지 식수로 사용이 가능한 물을 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가장 넓은 범위의 사막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 목축이다. 또한 사막화의 또 다른 원인인 가뭄현상도 지구 온난화의 중대한 영향중의 하나인데, 저명한 월드워치 연구소 2009년 11/12월호 매거진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축산업이 전체 온실가스의 51% 이상을 배출한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이용대상으로만 여겨온 결과는 이렇게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MBC는 일밤 헌터스를 당장 자진 폐기하기 바란다.

환경운동단체 : 녹색교통,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동물보호단체 : 고양이보호협회,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사랑실천협회, 동물보호연합, 생명체학대방지포럼
생명운동단체 : 두레생태기행,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풀꽃세상을위한모임, 한살림모심과살림연구소
불교운동단체 : 불교생협연합회, 불교환경연대
여성단체 : 한국여성민우회
언론단체 : 사단법인 보리방송모니터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초록당사람들

덧붙이는 글 서소라 기자는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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