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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30점 받아오는 아이를 둔 아버지가 바라 본 외고폐지 논란

등록|2009.12.11 13:10 수정|2009.12.11 13:11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

위 성경 구절은 기독교 신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말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 취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 교회 개척을 앞둔 목사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큰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한 말씀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제사장과 예언자가 한 말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잘 모르는, 기독교 신앙이 왜곡된 '빌닷'이라는 사람이 욥을 비난하며 정죄하면서 한 말이다. 즉,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지금은 어렵고, 힘들어도 잘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욥기 8장 7절을 통하여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나중에는 별 볼 일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사람들도 자신의 현재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 중 하나가 공부다. 공부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식들에게는 가난하는 대물림 하지 않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그저 헛말이 아님을 우리들은 경험했다. 돈 없는 부모를 만나도,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면 부모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2009년을 살아가는 가난한 부모들과 그의 자녀들에게 이제 이 말은 헛말일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이다.

외국어고등학교를 폐지하겠다고 나서더니 페지는커녕 날개를 달아주는 결정이 나왔다.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솔직히 기득권을 위한 정권, 외고를 세운 사람에 우리나라 교육을 담당하는 수장에게 외고 폐지를 바란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대를 했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내놓은 외고폐지안은 공교육은 붕괴시키고, 사교육은 부흥시키는 망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첫발이 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아무리 반대가 심해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권이라면 외고폐지를 반대하는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나라와 역사를 위한 일이라면 밀어붙일 수 있다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들은 기득권을 위한 정권일 뿐이었다. 자기들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존재증명을 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들어 우리 공교육은 더 황폐화되었다. 일제고사를 통한 줄세우기, 지역별 성적 공개는 우리 아이들을 공부의 노예를 만들고 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 마음은 타 들어간다. 외고 폐지 논란을 보면서 수학 점수 30점을 받아오는 막내 아들을 둔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30점도 한 번이지, 그것이 두 세 번으로 이어지면 외고는커녕 이 아이가 기초학습 능력까지 있는 의심할 정도이다. 아이를 앞에 두고 다그치는 일도 한 번이다. 스스로 풀어나가는 능력이 없는 아이를 다그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도 자기가 공부 못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 결국 아이 마음도 아버지처럼 타 들어간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아이가 조금씩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막둥이가 그렇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수학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잘 한다. 동무들도 잘 사귀고, 칼라믹스도 잘 한다. 엄마와 아빠 말도 잘 듣고, 형과 누나와다 잘 지낸다. 그런데 수학만 나오면 얼굴이 달라진다. 초등학교 2학년이 벌써 수학 때문에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막둥이에게 수학은 사람답게 사는 장애물이지, 자기 꿈을 실현하는 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30점 밖에 받지 않았다고 재시험을 치르게 한다. 학교는 재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시 수학 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에게는 엄청난 압박감일뿐이다.

학교는 지금은 미약하지만 노력하면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지금은 30점이지만 노력하면 100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욥기 8장 7절을 왜곡하듯이 30점받은 아이에게 재시험을 치르게 하면서 너도 100점짜리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강요한 것 또한 왜곡이다.

막둥이가 노력해서 수학 점수 100점을 받고, 다른 과목도 잘해 외고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외고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막둥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그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강요할 수 있다. 수학 30점짜리는 인생도 30점짜리라는 왜곡 말이다. 수학 30점짜리와 100점짜리도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할 '사람'임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인데 이명박 정권은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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