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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50)

[우리 말에 마음쓰기 815]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지구상에 존재' 다듬기

등록|2009.12.12 12:31 수정|2009.12.12 12:31

ㄱ.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 그에겐 아무런 권리도 주장도 없으며, 그 일자리를 채우는 것밖에는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제7의 인간>(눈빛,2004) 62쪽

 "권리(權利)와 주장(主張)도 없으며"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힘과 목소리도 없으며"로 손보아도 됩니다. '현실(現實)'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되며, '삶'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
 │→ 현실조차도 있지 않다
 │→ 현실조차도 없다
 │→ 현실조차도 더는 남아 있지 않다
 └ …

 학문과 우리 삶은 다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면서 쓰는 말과 우리 삶을 꾸리면서 쓰는 말이 다른지 모릅니다. 학문을 할 때에는 학문말을 쓰고, 삶을 꾸릴 때에는 삶말을 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학문이든 우리 삶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고, 우리 삶과 얽힌 이야기를 파고듭니다. 과학이든 문학이든 경제이든 우리 삶하고 잇닿아 있지, 우리 삶하고 동떨어지면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아요.

 이웃나라에서는 학문과 삶이 어떠한 사이일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학문하는 말과 살아가는 말이 동떨어져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책에 적히는 말과 여느 사람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따로따로일는지 궁금합니다. 있어도 '있다'고 말하지 못하고 없어도 '없다'고 말하는 우리들마냥, 나라 밖에서도 이런 엇갈리고 두동진 말씀씀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ㄴ. 지구상에 존재했던 동식물

..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태곳적의 동식물에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공룡의 꿈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  <최광호-사진으로 생활하기>(소동,2008) 209쪽

 "이 지구상(-上)에"는 "이 지구에"로 손보고, "태곳적(太古-)의 동식물(動植物)에"는 "오랜 옛날에 살던 동식물에"나 "아주 먼 옛날에 살던 짐승과 푸나무에"로 손봅니다. '우연(偶然)히'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문득'이나 '얼결에'나 '뜻하지 않게'로 다듬어도 됩니다. "관심(關心)을 갖게 되면서"는 "눈길을 두게 되면서"나 "마음을 둔 뒤부터"나 "끌리고 난 뒤부터"로 손질하고, "공룡의 꿈을"은 "공룡이 살던 꿈을"이나 "공룡이 꾸었던 꿈을"이나 "공룡을 생각하는 꿈을"로 손질해 줍니다.

 ┌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태곳적의 동식물
 │
 │→ 이 지구에 먼 옛날에 있었던 동식물
 │→ 이 지구에 아득한 옛날에 살았던 짐승과 푸나무
 │→ 이 지구에 까마득한 옛날에 깃들었던 뭇 목숨들
 └ …

오늘날은 없으나 지난날에는 있었던 짐승과 푸나무를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짐승이며 푸나무며, 또 사람이며, 태어나고 죽습니다. 나고 죽습니다. 왔다가 떠납니다. 왔다가 갑니다. 머물다가 떠납니다. 깃들다가 스러지고, 목숨줄을 잇다가 끊어집니다.

언제까지나 살아가는 목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한 목숨이든 태어나면서 살고 숨을 거두면서 죽습니다. 아니, 태어남이 삶이요 숨을 거둚이 죽음입니다. 수천 해를 사는 나무라 하여도 어느 날 마지막 숨을 다하여 꺾이고 부러지고 썩으면서 새로 태어나 뿌리를 내리는 어린나무한테 자리를 내어 줍니다. 이렇게 자리를 내어주고 삶을 내어주고 목숨을 내어주면서 다시 태어납니다. 어린나무는 늙은나무가 했듯이 제 몸을 고스란히 땅한테 돌려주면서 제 삶과 목숨을 새롭게 이을 테지요.

 우리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나 혼자서 온갖 즐거움을 맛보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다. 돈이고 집이고 앎이고 책이고 땅이고 이름이고 힘이고 두고두고 움켜쥐지 못합니다. 내놓고 떠나야 하고, 내어주며 물러나야 합니다. 손에서 놓으며 흙으로 돌아가고, 다른 이한테 넘겨주며 거름이 됩니다.

 ┌ 이 지구에 왔다 간 목숨들
 ├ 이 지구에서 살다 떠난 목숨붙이들
 ├ 이 지구에 태어났던 뭇목숨들
 └ …

 오고가는 삶이요 오고가는 앎이며 오고가는 목숨입니다. 오고가는 말이며 오고가는 글이요 오고가는 이야기입니다. 오고가는 생각이고 오고가는 마음이며 오고가는 넋얼입니다.

 말 하나가 죽으며 말 하나가 새로 태어납니다. 옛말은 새말한테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옛말이 있어 새말이 있고, 새말은 또다시 옛말이 되며 또다른 새말한테 자리를 내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삶을 돌아보자면, 옛말이 새말한테 밑거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담던 말마디는 거름으로 쓰이지 못하고 스러집니다.

옛말은 마치 쓰레기말인 듯 다루고, 새말만이 대단하거나 좋은 말인 듯 섬깁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쓰는 새말이란 어떤 말일까요. 우리 삶에 바탕을 둔 새말일까요. 그저 나라밖에서 끌어들이는 일본한자말이나 영어일까요. 우리는 어떠한 말에 우리 삶자락을 담고, 어떠한 글에 우리 마음자락을 싣고 있는가요. 우리는 우리 삶자락 담은 말을 누구하고 나누고자 하며, 우리 마음자락 실은 글을 어디에서 어떻게 함께하고자 하는가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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