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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래 산께 이렇게 좋은 꼴도 보네!"

[현장] 여수 화양면 어르신 장수사진 찍던 날

등록|2009.12.12 16:39 수정|2009.12.12 17:54

▲ 장수사진 찍으러온 할머니는 "늙어서 사진을 찍으면 뭐하겠느냐"며 쑥스러워 합니다. ⓒ 조찬현



여수 화양면 어르신들이 장수사진 찍던 날입니다. 어르신들은 모처럼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변변한 옷 한 벌 없이 평생 농사일만 하시던 분들이라 대부분 평상복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연설! 사진 찍는단 말 안 들었당께, 면에서 좋은 일 있다고 나오라고 그래서 왔제."

평상복 차림의 엄신섭(80) 할아버지는 겉으로는 큰소릴 치면서도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옛날에 도민증 사진 내가 다 찍어줬어, 나도 사진 찍어야지"하면서 옷을 준비해달라고 합니다. 봉사대원들은 어르신들에게 옷을 입힌다며 대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의 와이셔츠와 양복상의까지 다 벗겨갑니다.

이날(11일)의 행사는 '환경공해추방운동 청소년선도육성호남본부'(이형은 본부장)가 화양면 관내 어르신 70여 명을 초청해 장수노인 사진촬영 및 경로잔치를 연 것입니다.

화동리에서 온 박권엽(91) 할머니는 가진 사진이라고 주민증 사진밖에 없어서 장수사진을 찍으러왔다고 합니다. "늙어서 사진을 찍으면 뭐하겠느냐"며 쑥스러워 합니다.

"설 쇠면 구십 둘 된갑소, 동네 이장이랑 같이 왔는데, 사진이라고는 젊어서 찍은 주민증 사진 하나밖에 없어. 늙어서 사진 찍으면 뭐 할 거요."

▲ 여수 한영대 이세희 양이 이상진 할머니의 분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 조찬현



▲ 이번에도 역시 어르신들의 사진 담당은 여수해양경찰서 최종림씨 입니다. ⓒ 조찬현



분단장을 맡은 이세희(28·한영대 코디메이크업과)양은 "저희 할머니라고 생각하며 분장을 해드려요"라며 환하게 웃습니다. 이상진(84)할머니는 손녀 같은 학생들의 분단장에 기분이 엄청 좋다고 말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어르신들의 사진 담당은 여수해양경찰서 최종림씨입니다. 분단장은 한영대 코디메이크업과 학생들이 맡았습니다.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는 환경공해추방운동호남본부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 화양면 부녀회 회원들이 음식준비에 분주합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어르신들은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 치과의사(최보환. 모아치과병원)가 환자의 의치를 수정해줍니다. ⓒ 조찬현



면사무소 앞마당에는 치과진료가 한창입니다. 여수 모아치과병원 봉사 팀도 무료진료에 나섰습니다. 여수보건소에서는 진료차량을 지원했습니다. 치과의사(최보환·모아치과병원)가 환자의 의치를 수정해주고 의치(틀니) 사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김원예(88)씨는 이빨이 편해졌다며 만족해합니다.

"이가 편해졌어. 돈 주란 말도 안하네, 말도 못하게 고맙지."

이들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직접 업어서 진료차량에 오르내리며 진료를 도왔습니다.

▲ 화양면사무소 2층 회의실은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준비에 분주합니다. ⓒ 조찬현



▲ 점심시간, 봉사대원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합니다. ⓒ 조찬현



▲ 잔칫상을 받은 이명엽 할머니는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합니다. ⓒ 조찬현




점심시간에는 240여명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잔칫상을 받은 이명엽(87) 할머니는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합니다. 화양면 이천리의 부녀회장(60·문옥연)은 어르신들을 한 분 한 분 다 챙겨드립니다.

"영 맛나네, 우리가 오래 산께 이렇게 좋은 꼴도 보네!"
"밥 많이 드씨요, 고기 더 갖다드릴까?"

이날 행사는 환경단체인 환경공해추방운동호남본부와 여수 모아치과, 여수 한영대 코디메이크업과 학생 6명, 화양면 부녀회와 면사무소 관계자, 여수해양경찰서 최종림씨 등이 함께했습니다.

서로가 힘든 과정 속에서도 이렇듯 함께 나누는 봉사는 정말 흐뭇하고 가슴 벅찬 일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봉사활동에 어르신들은 진정으로 고마워했습니다. 모처럼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어려움을 겪는 우리 이웃들이 환하게 웃는 그날까지 이들의 봉사활동은 계속된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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