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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이 편지 5천통 보낸 곳, 통영을 걷다 보니...

[통영의 '길' 6 ] 시비(詩碑)를 따라 걷는 길

등록|2009.12.13 18:14 수정|2009.12.13 18:23

▲ 항남1번가는 통영 근대문학의 산실이다 ⓒ 정용재


통영은 인구 대비 그 어느 지역보다 거장이며 명인인 예술가들 흔적이 많은 곳이다. 통영의 거장 예술인들은 화가, 음악가, 시인, 소설가 등 예술 각 부문에 걸쳐 있으며 통영시내 곳곳에 그 흔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예술가들의 흔적 중 찾아보기 쉽고 친숙한 것이 시인들 작품을 새긴 시비(詩碑)이다.

시를 읽는 동선 만들기

문학비와 시비 등을 기점으로 동선을 구성해보는 것은 통영을 찾는 여행객과 답사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통영의 자랑스러운 문화역사를 되새겨 통영시민 스스로의 자긍심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

문학가의 흔적을 쫓아 지금 통영의 지도에 겹쳐보는 '문학지도' 작업으로는 충렬여고 문학동아리 백합 문학기행반의 '통영문학지도' 제작 사례가 있다. 백합 문학기행반 6기 학생들은 통영시 문화관광과 관계자와 강석경 소설가, 청마문학관장 등의 협조로 '통영문학지도'를 제작하는 데에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고장의 문학유산을 찾으며 지도를 제작하는 것과 함께, 시비를 답사하며 시 낭송 모임을 개최하는 것도 좋은 기획이 될 것이다. 시 문화예술당국이 후원해 통영시민들이 시 낭송 답사길을 걸어보는 기획도 생각할 수 있다. 시 곳곳에 분포된 문학비와 시비를 그저 사진만 찍고 가는 대상으로 머무르게 하지 말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통영의 문학비와 시비들 중 다수가 중앙동과 항남동에 집중되어 있어, 중앙동 우체국부터 항남 1번가 길은 '시 읽는 거리'라고 불러도 억지는 아니다.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김춘수... 한국 문학 거장들의 유산이 밀집되어 있는 길이 바로 중앙우체국과 항남 1번가 길이다.

통영중앙동우체국 앞의 청마 유치환

중앙동우체국 정문 계단 옆에는 빨간 우체통과 나란히 청마 유치환의 '행복' 시비가 있다. 유치환과 통영중앙우체국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치환이 생전에 여류시인 이영도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무려 5천여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곳이 바로 통영중앙우체국이다. 빨간 우체통 옆에 자리한 '행복'이란 시에도 우체국이 등장한다.

'행복'은 시인 이영도와 나눈 정신적인 교감과 순결한 사랑을 담은 글로, 중앙우체국 우체통 옆 자리만큼 이 시가 어울리는 공간도 달리 없다. 청마 유치환은 이영도 시인에게 쓴 연서를 바로 이곳에서 보냈던 것이다. 오늘날 통영중앙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주장에 찬성과 반대가 맞서고 있지만, 중앙동우체국과 우체통 옆 청마시비의 깊은 의미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 중앙동 우체국 앞 유치환 '행복' 시비 앞길은 폭이 좁아 차량 진행은 물론이고 보행도 불편하다 ⓒ 정용재


중앙동우체국 '행복' 시비 앞길은 폭이 좁은데다 주정차한 차량과 통과하려는 차량으로 인해 보행이 매우 불편한 길이다. '청마거리'의 핵심인 이 길은 지금보다 더 넓어지고 편해져야 그 위상에 걸맞게 될 것이다.

우체국 앞에서 '행복' 시를 읽고 몸을 돌리면, 청마 유치환의 흉상과 함께 자리한 '향수' 시비를 볼 수 있다. 흉상과 시비 옆에는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가 놓여 있어 통영 길을 걷다가 다리쉼을 할 때 청마의 시 '향수'를 천천히 읽어봄도 좋을 것이다.

▲ 중앙동 우체국 앞의 유치환 흉상과 '향수' 시비 ⓒ 정용재


세상이 편해졌다고들 한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상대방에게 전달되며, 그에 걸맞게 '메일'을 쓰는 속도도 빨라졌다. 점점 '메일'의 내용은 짧아진다. 통영시민들부터라도 속도전에서 탈출해, 편지와 엽서를 천천히 펜으로 눌러쓰는 여유를 가끔이라도 가져보면 어떨까. 그리고 '행복' 시비 옆의 우체통으로 걸어가서 편지의 설레임을 느껴보면 어떨까. 마치 유치환처럼.

항남 1번가 길 혹은 초정 김상옥 거리

유치환 흉상과 시비 앞 벤치에서 일어나서 우리은행 건물을 지나 걸어가면 '초정 김상옥 거리' 혹은 '항남 1번가'로 진입할 수 있다.

입구의 표석에는 "이 길은 통영이 낳은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의 생가(항남동 64번지)가 위치해 있는 곳입니다. 이 거리를 특색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항남 1번가'와 '초정거리'를 함께 쓰기로 하였습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표석 뒷면에는 초정 김상옥의 시조 '사향'이 새겨져 있다.

'초정거리' 표석 옆에는 박경리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앞면에는 시 '사마천' 그리고 뒷면에는 시 '양극'이 각각 새겨져 있다.

▲ 박경리 '사마천' 시비, 뒤로 명성레코드가 보인다 ⓒ 정용재


항남 1번가 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에도 통영 최고 번화가였다. 근래에 들어 시 외곽지역의 집중 개발과 상권 이전으로 항남동 지역은 시 중심지라고 하기는 어려워졌다. 명성레코드, 영수당, 오행당, 희락장, 충무도서 등 통영을 오래 지켜온 전통있는 상점들이 자리해온 곳이 바로 이름 그대로의 항남 '1번가'이며, 여전히 '항남 1번가' 표석 건너편에는 30년 전통의 명성레코드가 통영 문화의 지킴이로 자리하고 있다.

▲ 항남 1번가 골목 안에서 초정 김상옥 생가 터 표석을 찾을 수 있다 ⓒ 정용재


항남 1번가 혹은 초정거리는 통영 근대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부인 권재순 여사와 초정 김상옥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며, 최초의 시조동인지 '참새'가 발간된 곳도 바로 항남 1번가 길이다.

▲ 항남 1번가 길 안쪽에서 찾을 수 있는 김상옥 '봉선화' 시조 동판 ⓒ 정용재


길 안으로 들어서다 보면 초정 김상옥의 시조 '봉선화'를 새긴 동판을 볼 수 있다. 동판에는 연보와 함께 초정 선생의 사진도 새겨져 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는 후인을 반기고 있다. '초정길'을 걸어가다가 사이사이 골목길 입구를 살피면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艸丁 金相沃, 1920~2004) 살았던 곳"이라 새겨져 있는 생가 표석을 발견할 수 있다.

▲ 김춘수 육필이 새겨진 '꽃' 시비 ⓒ 정용재


초정길을 걷다가 문화마당 쪽으로 골목길을 걸어나가면 4차선 도로변에 김춘수 선생의 '꽃' 시비를 볼 수 있다. '꽃'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 선생을 추모해, 지난 2007년 11월 29일 시민모임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에서 모금한 성금으로 세운 시비다. 이 시비는 시민성금의 의미 뿐 아니라, 김춘수 선생의 자필이 새겨져 있어 의미가 더 크다.

동선의 확장, 청마문학관에서 김춘수유품전시관까지

시비를 따라 걷는 동선을 만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중앙동 우체국 앞의 유치환 '행복' 시비 ②청마 유치환상과 '향수' 시비 ③항남동 명성레코드 앞 김상옥 '사향' 시비 ④박경리 '사마천' 시비 ⑤김상옥 시조 '봉선화' 동판 벽면 ⑥항남1번가 골목의 김상옥 생가 터 ⑦대로변의 김춘수 '꽃' 육필 시비

동선과 코스를 확장하면, 출발지는 중앙동 우체국이 아닌 동호동의 청마문학관이 된다. 그리고 도착지는 봉평동의 김춘수 유품전시관이나 산양면의 박경리 묘소의 둘로 갈라질 수 있다. 청마문학관에서 출발해 남망산공원의 유치환 '깃발' 시비와 김상옥 '봉선화' 시비를 거쳐, 중앙동 우체국과 항남 1번가로 진행하는 동선이다.

청마문학관에 유치환 생가의 모습이 복원되어 있으나 태평동의 실제 생가 터는 현재 도로가 되어있어 표석도 없는 상태이다. 동호동 61번지의 김춘수 생가 터도 그나마 표석은 세워져 있으나 주변이 지저분해 거장의 이름이 더럽혀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항남 1번가에서 박경리 시비를 따라 가면 산양면의 박경리 묘소로 진행하는 동선이 만들어지며, 김춘수 시비를 따라 진행하면 봉평동의 김춘수 유품전시관으로 이어진다. 걸어서 진행하기는 어려우니 항남동 김춘수 시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봉평동 5거리에서 내려 봉평동 동사무소 뒤쪽으로 걸어가면 '김춘수 유품전시관'을 찾아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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