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유방 확대는 왜 하느냐고?
[대한민국은 성형천국?③] 중년의 항변 "젊은 것들만 예뻐지란 법 있나"
▲ 아이들 얼짱 만드는 데 세월 다 보낸 아줌마들. 중년에 접어들면 '폭삭' 늙은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진은 영화 <시간>의 한 장면. ⓒ 김기덕필름
"얼굴이 왜 그래? 혹시 건강이 안 좋은 거 아냐? 병원에는 가 봤니?"
이런 식의 질문이 여자에게는 충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여과 없이 불쑥 입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여자의 얼굴은 그녀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친구 정화(가명)의 경우도 그랬다. 마치 삼재에 아홉수라도 겹친 듯 퇴직과 동시에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집 한 채 값을 홀랑 말아 먹더니, 그해 수능을 치른 작은 아들마저 대학에 떨어졌다. 거기에다 쌈짓돈이라도 굴려 볼까 하고 빌려 주었던 돈을 떼어먹히는 등 악재에 악재가 겹치는 한 해를 보냈다.
그렇게 힘겹게 일 년을 보낸 정화를 다시 만난 것은 올봄, 벚꽃이 만발하던 어느 날이었다. 겨우내 충격을 잠재우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그녀가 다시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다른 친구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런데 입이 방정인 나는 그만 '톡'하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타고난 '절대 동안'도 세상살이엔 어쩔 수 없네
사실 정화는 힘든 일을 겪기 전까지 우리 모임 친구들 중 가장 '동안'을 자랑하던 여인이었다. 타고난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고운 피부까지... 오십이 가까웠지만 서른 후반이나 마흔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한 질투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정화는 마치 여고시절 학교를 찾아오셨던 그녀의 나이 든 엄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늙어 보였다.
상심하는 정화를 위로한답시고 친구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미용비법을 내놓았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 아들도 마음 먹고 재수하고 있고, 남편도 다시 일을 찾았다며…. 기미엔 녹두팩이 최고더라. 녹두를 갈아서 플레인 요쿠르트에 섞어 발라봐."
"주름엔 콜라겐 팩이 좋아. 내가 쓰는 에센스, 너도 한번 써봐. 난 그거 쓰고 효과 봤거든."
"화장품이 아무리 좋아도 병원만 하겠니? 넌 원래 좋은 피부였으니까 재생도 금방 될 거야. 내가 잘 아는 병원 있는데 한번 가볼래? IPL 좀 하고 보톡스로 볼살만 좀 빵빵하게 하면 열 살은 어려 보일 걸."
열 살은 어려 보일 거라는 친구에 말에 혹한 건 비단 정화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모임이 있고 난 후 몇몇 친구들은 정말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친구의 사촌이 강남에 성형외과를 오픈하면서 50% 할인 쿠폰을 돌렸던 것이다.
"보톡스 안 맞을래? 한 병 따면 100(만 원)인데 그걸로 셋은 맞을 수 있다잖아. 셋이 모여서 가면 30(만 원)에 맞을 수 있데. 이번에 가면 점은 공짜로 빼준데. 같이 하자."
"우리 딸 코 해 주려고 하는데 니네 애들 안 시켜 줄래? 요즘 면접 보려면 쌍꺼풀이랑 코 정도는 해줘야 된대. 이번에 몇 명 데려오면 더 싸게 해준다는데 애들 몇 명 모아서 같이 해주자."
아줌마들 수다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엄마들의 공통 주제인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시작해서 요즘 뜨고 있는 재테크 방법에 대한 깨알 같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시어머니와 남편 흉을 적당히 보고 나면 확인되지 않은 연애인들의 떠도는 소문으로 화제가 넘어간다. 카더라 통신에 유비통신까지 마치 연예부 기자라도 된 듯 진지하게 소문과 진실에 대해 토론을 하다보면 자연히 마지막엔 성형 이야기로 넘어간다.
"탤런트 아무개는 요즘 보톡스 또 맞았나 보더라. 얼굴이 완전 호빵이잖아. 표정이 굳어서 잘 웃지도 못하고 성형 중독인가봐."
"아무개는 코도 다시 하고 앞트임도 했나본데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아서 그런지 영 자연스럽지가 못해."
"아무개 눈은 어디서 했는데 그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잘 나왔더라."
"아무개는 턱 깍고 코 높이고 볼살 넣고... 다 한 거 같은데 절대 아니라더라. 시청자들을 바보로 아는 모양이야. 딱 봐도 티나더구만."
아줌마 수다모임의 파장을 알리는 신호탄인 성형 이야기. 하지만 나이에 따라 성형 이야기의 양상도 조금씩 다르다.
아이들 얼굴 걱정 끝내니 폭삭 늙은 아줌마가 됐네
▲ 최강 동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영화배우 고현정. 그녀도 아름다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인 피부과 출입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
요즘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쌍꺼풀 정도의 가벼운 성형(사실 쌍꺼풀은 성형으로 여기지도 않은 분위기지만)을 한 아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고가의 시술비 때문에 한때 부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치아 교정도 초등학교 때 해야 할 필수 미용(?)의 한 항목이 되었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더욱 심해져서 겨울방학을 마치고 새 학년이 되면 반에서 몇 명 정도는 어딘가 얼굴이 달라져서 온다. 방학기간이 길고 외출의 빈도가 줄어드는 겨울 방학이 중고생들의 성형 적기이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을 앞둔 요즘, 성형외과는 방학 중 성형을 계획하고 있는 학생들의 예약이 넘쳐난다고 한다. 분당의 한 성형외과 전문의에 따르면 불황을 맞아 성인들의 성형은 줄어드는 반면 청소년들의 성형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의 외모도 부익부 빈익빈인 면이 적지 않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부모들이라면 대부분 아이들의 딸리는(?) 외모를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 놓고 난 여자가 마흔 중반을 넘기고 오십을 바라보면 문득 나이 듦을 실감하게 된다. 폐경을 앞두고 급속하게 몸과 마음이 늙어가는 시기. 하지만 아직은 나이 듦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늙음을 지연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아줌마 수다의 단골 주제가 성형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봄 모임 이후 얼마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정화가 다시 얼굴을 보인 것은 몇 달이 흐른 올 가을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싹 씻어 낸 듯 맑은 얼굴로 나타난 정화. 그녀 때문에 우리는 또 한바탕 성형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어머, 정화 맞니? 왜 이렇게 젊어졌어? 뭘 한 거야? 주름도 싹 펴지고... 기미도 많이 없어지고 눈도 커졌네. 뭐야? 뭘 한 거야?"
역시 정화는 고수였다. 봄 모임 이후 친구들(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무도 모르게 보수작업(?)에 들어간 그녀. 그리고 성공적으로 달라진 얼굴을 가지고 예전의 그 자신감을 다시 찾아 당당하게 친구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거 한방성형이라고 하는 거야. 얼굴에 단백질 실을 넣어서 피부세포를 채워 넣는 방식이라는데 보톡스처럼 표정이 굳어지는 부작용도 없고... 수술하고 바로 외출해도 되고... 침치료와 레이저도 같이 받았는데 자연스럽지? 음... 한 오백 들었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울어제쳤다는 소쩍새처럼 정화는 예전의 미모를 다시 찾기 위해 봄부터 병원 문턱이 닳게 드나들며 그렇게 얼굴을 고치고 있었던 거다.
살만큼 살았는데 왜 고치냐고?
▲ 젊은 것들만 예뻐지란 법 있나? 나이 오십 넘어 유방 성형을 한다는 친구. 그동안 설움이 말도 못했단다. 사진은 tvN <롤러코스터>의 한 장면. ⓒ tvN
정화는 거짓말 조금 보태 우리 친구들보다 딱 10살은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열 살 어린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인 사후관리 역시 필수라고 하지만 성형을 통해 외모의 자신감을 다시 찾고 전에 하던 소품가게도 다시 열면서 활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모두 부러움 섞인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는 않다. 지금까지 외모 때문에 삶의 질이 저하됐던 걸 모르고 살았다는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저마다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를 보수하겠다고 병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 오십, 조금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누구도 아닌 자신만을 위한 투자를 해 보겠다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서로 격려하며 성형외과를 찾은 친구 중 가장 깨는 건 유방 확대를 받겠다고 나선 친구다.
"나 평생 이게 너무나 큰 콤플렉스였어. 뽕도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데 난 그것도 못해서 옷을 입으면 얼마나 초라한지 몰라. 우리 애들 젖도 못 물려 보았을 정도니 말 다했지. 남편이 나보고 건포도, 아스팔트, 절벽 그러는데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지 아니? 어느 날은 내 가슴을 더듬으면서 등에 사마귀 났냐고 묻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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