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실세 10억 전달 의혹, 제3자 증언 있나?
[3가지 핵심포인트] 한상률 귀국 가능성...'학동마을' 구입 가격도 변수
▲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지난 11월 26일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실에서 있었던 기자 간담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9개월째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는 한 전 청장이 최근 부인의 암 수술 때문에 귀국 쪽으로 마음을 정리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검찰은 현재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을 소환조사하지 않는 한 '편파수사' 시비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검찰은 한 전 청장을 귀국시켜 소환조사하면서 한명숙 전 총리 수사건 등도 함께 처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검찰 일각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 검토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도 그런 절박함 때문이다.
[수사 핵심 포인트 1] '학동마을'은 인사 청탁용? 가격은?
한 전 청장이 귀국할 경우 검찰 조사의 핵심은 한 전 청장이 인사청탁을 위해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사서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건넸는지 여부다. 인사청탁용으로 그림을 건넸다면 뇌물죄가 성립될 수 있다.
한 전 청장은 "'학동마을' 그림을 본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그림로비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은 국세청 직원 장아무개씨로부터 "한 전 청장의 지시로 한 갤러리에 가서 '학동마을' 그림을 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문제는 한 전 청장 측에 '학동마을'을 판 갤러리 관계자가 검찰조사에서 "학동마을을 500만 원에 팔았다"고 진술하면서 검찰이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죄를 적용하기에는 그림값이 아주 낮다는 것. "1000만 원 미만은 뇌물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안원국 폭로'를 '한상률 게이트'로 규정짓고 있는 민주당 측은 이러한 검찰의 판단을 '정치적인 행위'로 보고 있다. 검찰이 한 전 청장의 소환조사를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기 위한 '500만 원 구입'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것.
검찰은 '학동마을'의 그림값 감정을 전문가에게 의뢰했지만 결과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감정 결과와 관련 '800~1200만 원설'을 내놓고 있다.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그림을 팔려고 했던 홍혜경 가인갤러리 대표는 "여러 곳에 알아보니 최욱경 화백이 현대 한국미술에서 역할을 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었다"면서 "500만 원 이상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학동마을'의 작가 최욱경 화백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크랜브룩미술아카데미와 브루클린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이후 영남대와 덕성여대에서 교수를 지낸 그는 지난 1985년 음주상태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뒤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계에서는 최 화백을 '추상표현주의 계열 작가'로 분류하면서 한국 현대추상미술에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의 선호도는 낮은 편이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 ⓒ 최욱경
'학동마을'은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38cm×45.5cm(8호) 크기의 추상화다. 최 화백이 사망하기 1년 전에 그린 그림으로 알려졌다. 특히 '학동마을'의 경우 최 화백이 최전성기에 그렸고,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점을 헤아려 화랑가에서는 최저가를 2000만 원으로 매기기도 한다.
'한상률 게이트 및 안원구 국세청 국장 구속 진상조사단'을 이끌고 있는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도 전날(13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인이 된 화백의 작품은 최근 경매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데, 학동마을보다 작은 사이즈의 작품도 2000만 원은 된다"며 "최소한 2200만 원은 넘는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최고위원은 "그런데 검찰은 1000만 원 이하라고 하면서 (쌍방의 사회적 지위나 관계 등을 감안해 1000만 원 미만 뇌물에 대해 선물로 간주할 수 있도록 한 대법원 판시에 따라) '의례적인 선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 핵심 포인트 2] 정권 실세 10억 전달 시도설
한 전 청장이 귀국할 경우 검찰수사가 '그림로비 의혹'에만 한정될지도 관심거리다. 최근 '그림 강매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원구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의 폭로에는 ▲ 태광실업 기획세무조사 ▲ 한 전 청장의 유임로비 ▲ 정권 실세 10억 전달 시도 의혹뿐만 아니라 강남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를 밝혀질 문건 존재 여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 국장 측은 "한 전 청장이 10억 원을 전달하려고 했던 정권 실세를 알고 있는데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사실상 '경고'한 상태다.
안 국장은 한 전 청장이 유임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10억 원을 조성해 정권 실세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의혹은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한 전 청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1년간 유임될 수 있었던 의문을 풀어주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10억 원을 전달하려 했던 '정권 실세'가 현역 정치인인 L씨와 그의 핵심측근인 P씨가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청장이 안 국장에게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10억 원 중 '3억 원'을 현 국세청 고위간부인 또다른 인사가 만들어줬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이 '10억 원'을 만들었는지, 만들었다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사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정권 실세들에게 전달했는지 등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상률 게이트 및 안원구 국세청 국장 구속 진상조사단'의 한 핵심인사는 "당시 한 전 청장이 10억 원을 만들기 위해 지방투어를 했다고 들었다"면서 "당시 지방청장들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사실'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안 국장말고는 증언자가 없어서 난감하다"고 전했다.
[수사 핵심 포인트 3] 10억 전달설 증언할 제3자 존재 여부
특히 이 인사는 "한 전 청장과 안 국장이 '3억원' 얘기를 나눌 때 배석했던 '제3자'가 있다"며 "이 '제3자'는 한 전 청장이 정권실세에게 돈을 전달하려 했다는 정황을 증언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이 인사는 '제3자의 실체'와 관련 "현재로서는 우리가 밝힐 수는 없고, 안 국장이 재판에서 '정권 실세'를 밝히면서 '제3자'를 증인 등으로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국장의 부인인 홍혜경 대표는 지난 3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한 전 청장이 10억 원을 전달하려고 했던 정권 실세가 누구인지 안 국장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안 국장이 검찰에 제출하지 않은 자료 중에 한 전 청장이 10억 원을 전달하려 했던 '정권 실세'의 실체를 밝힐 자료가 있다는 관측도 있다. 홍 대표는 "남편이 작성한 비망록 등 검찰에 제출되지 않은 자료는 제3의 장소에 보관돼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제3의 장소'에 보관돼 있다는 자료들 속에 '10억원 전달 시도' 의혹의 실마리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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