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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장애인들이 만들어간 '마음의 공감전'

등록|2009.12.15 15:33 수정|2009.12.15 19:04

마음의 공감교육장면들을 담아 만든 교육발표 현수막사진 ⓒ 이영미



지난 10월 중순, 세계장애예술축제의 전시미술행사가 서울 인사동 라메르갤러리에서 열렸지만, 장애계 인사들만 내왕했을 뿐 일반 예술계들은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애작가들의 기량이 일반인과 차이가 났던 것인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장애와 비장애인들이 함께 하는 그런 축제가 필요한 것 같다. 비장애인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진행하며 장애인들이 들러리가 되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장애의 부족함을 비장애인들이 함께 메워서 일치하는 그런 예술행사가 필요한 것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장애야학교의 문화예술교육발표행사도 그런 필요성을 한층 절감하게 해준다. 한 해 동안 마음을 벼루에 갈고 생각을 붓 끝에 모아 묵향 공부를 하고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이웃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마음의 공감'이란 교육발표행사를 했다. 15명의 경증, 중증장애인들이 서투른 붓길로 티도 만들고 조그만 한지 등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프닝 날(9일)이었다. 오프닝 열흘 전에 학교를 창립한 임원의 결혼식이 있었고, 결혼식은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였다. 학교에 지원금을 주던 지자체인 시청, 도청의 주사, 계장님, 과장님들은 물론이고 도내의 많은 장애단체장들도 아낌없는 축하의 마음을 봉투에 담아들고 다녀갔다.

오프닝을 준비하며 정성들여 만든 작품들과 티셔츠들이 판매되면 학교의 후원금으로 쓰자고 전시발표를 하는 주인공들은 이야기 하면서 얼마 전 결혼식 때 만났던 손님들이 그렇게 교육발표도 축하해주러 오기를 기대했다. 왜냐하면 결혼식의 주인이었던 학교임원이 홍보를 잘 해주기로 했으니깐...

그러나 웬걸? 전시장에선 교육발표생들과 가족들, 지인들 이외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학교임원의 결혼식에 왔던 학교의 발전에 뜻을 같이 한다던 그 많은 하객들이 공교롭게도 바빴던 것일까? 오프닝 날 학교를 대표하는 그 분이 알려서 온 손님은 그날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그날 교육발표를 한 교육생들의 마음을 많이 썰렁하게 했다.

오프닝 때 말을 하지 못하고 한 손만 사용하는 두 아이의 엄마인 뇌성마비교육생은 그래도 한 손의 수화만으로 축가를 불렀다. '아침이슬'이었다. 학교의 사무국장이 치는 기타반주와 수화통역 선생님이 앞에서 함께 해주었던 아침이슬이었지만, 오프닝에 참석한 오십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불렀다.

그녀는 비장애인들 앞에선 행복하고 자유로운 표정으로 수화노래를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 앞이어서 그런지,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만이 아닌 의지의 표정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비록 중증장애로 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살아가는 한 계속 노력하는 엄마,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박수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 또한 해맑았다.

30여 년 동안 오빠, 올케, 조카들 속옷 빨래까지 한 손으로 하며 사회생활을 모르던 그녀였지만, 10여 년 전부터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스스로 깨어서 세상으로 나와  행복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야학교에 나와 한글공부를 하고 틈나는대로 서예도 하고 수화도 배웠다. 비록 수급비를 받고 살아가지만 그 수급비를 쪼개어 몇 군데의 복지기관과 장애인단체듣들도 후원하는 그녀다.

그녀가 태어나면서 등짐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중증복합장애의 불편함을 딛고 조금씩 조금씩 알알이 행복의 구슬을 꿰어가는 모습이 학교를 창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임원의 결혼이야기보다 널리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랐던 게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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