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 MB와 '케인지안' 정운찬이 잘 어울리는 이유
[서평] '돈키호테' 김광수 소장이 말하는 경제위기의 본질과 해법 <경제학 3.0>
▲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그는 자기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불렀다. '김광수'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경제연구소를 10년째 이끌어 온 김광수 소장이다. '돈키호테'가 끼어든 판은 그동안 지식사회에서 하나의 성역 같은 곳이었다. 그곳의 주역은 국책연구기관과 대기업 연구소, 거대 언론 등이었다. 그곳에 자리 잡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정보와 지식은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해왔다.
그런 '판'에 김광수 소장이 끼어든 것이다. 최근 내놓은 책 <경제학 3.0>(더난출판)에서 밝힌 이유는 이렇다. 권력의 입맛에 따라 연구성과가 달리 포장되는 국책연구기관이나, 자본에 종속된 재벌계 연구소, 사주의 이해에 굴종하는 언론을 통해서는 객관적이고 신뢰할만한 지식과 정보가 생산되는 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돈키호테' 김광수 소장이 말하는 경제위기의 본질
특히 그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흐름을 꾸준히 분석해오면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지난 2007년 미국 발(發)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또 현 정부 들어선 이미 2008년 초부터 원-달러 환율 폭등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 원인이 부동산 대출확대를 위한 국내 은행의 막대한 단기외화 차입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외환위기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올해 들어서는 환율 폭등을 두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정부와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각종 경기지표 회복세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 분위기에 대해서도 김 소장은 여전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민간 금융기관과 가계의 과다부채, 기업의 과잉투자 부실을 정부와 통화당국이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화폐발행으로 대신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김 소장의 판단이다.
김 소장은 민간 부실을 정부 재정으로 막다 보니 정부가 부실해지고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중동 두바이 발 금융혼란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김 소장은 <경제학 3.0>에서 그동안 숨겨졌던, 그리고 숨기고 싶었던 한국경제를 둘러싼 여러 불편한 진실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다.
한국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근거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경기지표인 국내실질총생산(GDP)에 대한 재해석과 빈곤과 노동문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녹색성장'이라는 구호의 이면
또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이른바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건설경기 부양 등 정부의 각종 성장 위주의 땜질식 단기처방에 대한 김 소장의 비판은 매섭다. 잠시 그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미국과 일본 등도 우리와 같이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친환경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미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은 연료 전지 분야뿐 아니라 태양광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십조 원의 돈을 들여가며 4대강 운운하며,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전국 자전거 도로망 만들기를 추진한다는 식으로 질러대고 있다. 대통령이야 자전거를 타고 싶을지 모르겠으나, 일반 서민들은 먹고사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힘들게 자전거를 탈 여유가 없다." (본문 '녹색이라는 이름' 중 일부)
김 소장은 또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세종시의 해법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한마디로 정치권의 신뢰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현 정부 집권 이후 오락가락 정책으로 인한 정책실패로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세종시 문제도 불거졌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 정부 초기에 친기업 정부를 주장했다가 얼마 전에는 4대강 사업이라는 소모적인 공급 확대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면서 수요 위주의 정책 방향인 '친서민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대선 당시부터 줄곧 세종시를 원칙대로 추진한다고 해왔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들러리 총리를 내세워 기업 도시로 바꾸어버렸다. 이 모두가 천문학적인 적자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이것은 경제 정책의 내용을 논하기 이전에 정치적 도의와 신뢰의 문제다." (본문 '공급자 위주의 정책과 수요자 위주의 정책' 중 일부)
이명박 정부와 케인지안 총리가 어울리는 이유
김 소장은 또 노무현 정부 시절 이후 정부 관료들이 각종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자기 밥그릇 지키기와 무능, 일부 정책에선 심지어 관료독재의 모습까지, 생생한 실례를 들어가며 적어나가고 있다.
또 과거 미국의 1930년 전후 대공황시대를 비롯해 1970~80년대 부동산 투기 버블과 최근의 금융위기 등을 비교하면서 경제위기와 정치적 이념의 연관성에도 주목했다. 김 소장은 특히 이 경제위기들이 모두 미 공화당 행정부가 집권했던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자유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혼동하는 정치 이념이 시장경제를 지배할 경우 경제혼란은 더욱 커진다"면서 "신고전파의 자유주의가 정치 이념 세력과 결합하게 되면 특권계층 위주의 자유방임주의로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스스로 '케인지안'이라고 칭한 정운찬 총리가 서울대 교수이던 시절에 만났던 사연을 소개하면서, 그는 '이명박 정부와 케인지안 총리가 어색하다'는 일부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은 그의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에는 케인지안 총리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정부나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케인지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케인지안을 위장한, 무책임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무언가 일을 벌여야만 티가 나며, 자신들의 존재와 실적을 홍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티를 내기 위해 각종 전시성 사업을 무리하게 벌인 결과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된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만 늘었다." (본문 '케인지안' 중 일부)
지난 10년 한국경제가 남긴 것은 부동산 투기와 가계 부채
이 책의 마지막에서 김 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경제를 비롯해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가 자식 세대에게 물려준 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 투기와 엄청난 가계부채 뿐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책에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생산적인 경제를 만들어주기는커녕 거품 경제로 그들에게 좌절감만 안겨주었다"면서 "정권은 바뀌었지만 오로지 일관성 있게 추진된 것은 부동산 투기 조장 정책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광수 소장이 최근에 내놓은 <경제학 3.0>. ⓒ 더난출판
김 소장은 또 현 정치권의 권력지향적이고 무차별적인 파워게임으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21세기 선진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로 들어가기 위해선 잘못된 정치구조를 더 이상 그대로 가져가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정책 중심의 정당구조와 필요할 경우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상생의 정치구조로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개혁을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또 김 소장은 이번 책에서 20세기 산업자본주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선 구세대 청산을 위한 진짜 개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소장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경제 구조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이념에 찌든 사람들이 여전히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일반 기업에선 기업 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곧바로 교체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은 망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 운영도 마찬가지다.
이제 정말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이해할 줄 알고, 대처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 그럴 때가 됐다." (본문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우리들의 삶'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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