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서울광장, 8000명만 더 모여라
[조례개정 주민발의] '스노보드 월드컵' 오세훈 시장, 고맙습니다만...
▲ 지난 5월 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추모행사가 시위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분향소 주변과 서울광장을 에워싼 경찰의 과잉대응이 시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 남소연
이미 7만3000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8000명이 부족하다. 서울광장 조례 개정안은 주민발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3일의 서명이 그 성패를 가를 예정이다.
조례개정서명의 마감시한은 오는 19일. 주민발의로 이 조례개정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하려면 서울시 유권자의 1%, 즉 8만958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약 8000명의 서명이 더 필요한 지금, 하루에 서울시민 3000명이 서명에 동참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하루에 3000명씩 모아야 성공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과 야4당은 지난 6월 10일 조례개폐청구서를 서울시에 접수한 뒤 '광장조례 개정 서울시민 캠페인단'을 꾸려 같은 달 24일 본격적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반응은 뜨거웠다. 앞서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으나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면서 광장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캠페인단은 두 달 만인 8월 25일, 서명 인원 2만3000명을 돌파했다. 그 추세대로라면 지방자치법에 따라 서명시한으로 정해진 서명운동 6개월 안에 8만958명 참여가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수임인 참여도 활발했다. 모집 첫날 600여 명이 활동 의사를 밝혔는데, 이 중에는 생전 집회에 나가지 않았다가 경찰이 서울광장을 막는 모습에 분노한 '일반 시민'들도 다수 있었다.
잘나가던 조례 개정운동이 정체된 것은 서명 인원이 4만 명을 넘어선 지난 10월부터다. 이미 광장 조례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서명에 동참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광장과 관련된 큰 이슈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를 뒷자리까지 적어야 하는 등 복잡한 서명 절차도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줬다. 이재근 팀장에 따르면 10명 중 2~3명은 개인정보가 노출될까봐 서명을 거부했다. 여기에 신종플루 악재가 겹쳤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서명운동도 약 2달간 주춤했다.
최근 서명운동에 가장 힘을 보탠 사람은 역설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광화문광장이 <아이리스> 촬영, 스노보드 월드컵 등으로 논란을 빚으면서 다시 광장 문제가 사회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캠페인단은 지난 주말 내내 스노보드 월드컵이 열리는 광화문광장에서 거리서명을 받았는데, 3000여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그 뒤 벌어진 거리서명에서도 시민들은 조례개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지금도 시민들 호응은 좋은 편인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자발적으로 서명하실 분들이 사안을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캠페인단은 11월 26일부터는 한 명이 10명의 서명을 받아오는 긴급프로젝트를 벌였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과 민주노총 등 다른 단체들도 서명을 지원하고 있다.
서명 목표인원을 채울 경우 캠페인단은 오는 29일까지 서울시의회에 청구인 명부를 제출하고, 서명인 주민등록상 주소지 확인 절차를 거쳐 시의회에 개정안이 올라가게 된다.
▲ 참여연대는 현재 지하철에서 서울광장 이용 조례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 박상규
비상구국기도회는 되고 6월항쟁계승문화제는 안 되는 서울광장
현행 서울광장 조례는 서울광장 사용목적을 '시민의 여가선용 및 문화생활'로 한정했고, 서울시장이나 서울시가 허가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려면 경찰로부터 집회 허가를 받고 서울시로부터 광장 사용허가를 받아야 했다. 2007년부터 2009년 7월말까지 서울광장에서 열린 행사 357건 중 187건이 서울시 홍보행사였다. 정부와 지자체의 홍보행사도 36건으로 10%에 달했다.
실제 사례에서도 자의적인 사용허가 문제가 드러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지난 2004년에는 서울광장에서 '수도이전 반대 범국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한미동맹 강화와 경제살리기를 위한 6·24 대각성 비상구국기도회', '군경의문사희생자를 위한 추모제'와 'KAL 858기 실종사건 추모제', '사학법개정 촉구집회' 등도 열렸다.
반면 지난 6월 10일 '6월항쟁 계승 범국민문화제'를 열려던 시민사회단체들의 사용신청은 불허됐다.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이 미리 집회(6.25 관련 사진 전시회) 신고를 냈으며, 문화제가 폭력시위로 번질 우려가 있어 서울광장 조성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이 '선발대'가 되어 전날 밤부터 광장에 자리를 잡는 우여곡절 끝에 문화제가 성사됐다.
지난 8월 개장한 광화문광장의 상황도 서울광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촛불집회 이후 제정된 광화문광장의 조례는 서울광장의 경우보다 개악되어 '국가 또는 서울시가 공익을 위해 광장 사용이 필요한 경우'나 '시민의 안전 확보 및 질서유지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서울시가 광장 사용허가를 변경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광화문광장에서는 집회 시위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기자회견을 하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나 1인시위를 하던 장애인이 연행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반면 홍보성 행사에는 쉽게 문을 열었다. 최근 서울시는 <아이리스> 총격신 촬영을 위해 광장을 개방하고, 스노보드 월드컵을 위해 34m 높이 점프대를 설치했다.
캠페인단이 추진하는 조례 개정안은 광장 사용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바꾸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서울시는 시민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의견을 들어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시민위원회는 반사회적 행사의 사용신청 수리 여부, 장소가 겹치는 신고의 처리, 사용료 면제 범위 등을 심의한다. 더 나아가 광장의 명칭, 잔디 철거, 화장실 설치 문제 등 광장 운영에 대해서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개정안은 광장 허가 변경 사유를 시민들에게 명백하게 위해를 가할 경우에 한정하도록 했다. 사용목적에 대해서도 기존 조례의 '시민의 여가선용 및 문화생활'에 더해 '집회와 다양한 공익적 행사'를 추가했다. 사용신청 신고기한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기준에 맞춰 최소 2일(현행 조례는 '최소 7일')로 완화했다.
▲ 스노보드 월드컵이 열리는 11일 오후 3시 30분,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서울광장조례 개정 서명운동을 벌이자 관리팀 경비직원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 권박효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