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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여행으로 여행지는 골병들고 있다

나는 왜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려 하는가 ②

등록|2009.12.18 09:56 수정|2009.12.18 09:56

▲ '원형극장'이라 불리는 바타드 계단식 논. ⓒ 고두환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간 뒤, 하나 변한 것이 있다. 누군가의 방문이 그렇게 설렌다는 점이었다. 주위에 또래가 별로 없던 탓일까? 친구뻘 되는 아이들이 방문하는 날이면 전날 나는 잠을 못이룰 정도였다. 아무런 종교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부처님, 하느님 등을 찾았을 때는 '손님이 방문할 땐 비를 뿌리지 말아 달라'고 읊조릴 때였다.

생각을 더듬어보면 나는 그렇게 시골을 좋아하던 아이도 아니였다. 이사온 지 얼마 안돼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니?"라고 아버지가 물어볼 때 "여기가 더 좋아!"라고 씩씩하게 대답은 했지만, 그 때의 대답을 후회할 때가 종종 있었다. 비가 오면 온 동네에 물이 찰랑거리는 것도, 눈이 오면 걸어서 학교에 가는 일도 처음엔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반복되다보니 그런 일이 매번 뉴스에 나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들이 내 주변에 부유하고 있으니, 누군가의 방문이 설레였던 것은 아닐까? 여하튼, 나는 당시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그리 만족감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청년 크리스토퍼와의 만남은 신선했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바타드 토박이로 가이드 일을 했던 친구였다. 바기오에서 만난 그는 가이드 일을 할 때보다 훨씬 좋은 대우에 바기오 탐아완 예술인 마을을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난 내 고향인 1)바타드가 정말 좋아. 내게 모든 것을 선사해준 곳이지."

사실 이런 말을 하는 크리스토퍼는 바타드에서 상당히 '괴짜'라고 비쳐지는 청년이다.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곳, 논과 산이 전부인 그 곳을 젊은이들은 대게 갑갑해 한다. 거기에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그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뭄바키(이푸가오 족 전통 주술사 혹은 수호자)는 더이상 후계자가 없다죠. 이 곳이 이렇게 퇴락하는 건 그들이 미신에만 얽매여 자신들의 오래된 관습만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말이죠."

일주일에 한 번씩 바타드를 다녀가는 한 목사는 내가 그 동네에 자주 들락날락하자 이런 말을 넌지시 건넸다. 옳고 그름을 떠나, 참 그 말의 뒷맛이라는게 씁쓸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가진 생각과 젊은이들의 생각은 얼추 비슷하다고.

"네 병 때문에 가이드도 더 못하게 됐는데, 그래도 바타드가 좋아?"
"그럼. 나는 말이지. 건강해져서 바타드로 돌아가면 다시 가이드 일을 시작할 거야."
"대우는 여기가 더 좋잖아?"
"여기는 돈도 더주고, 사람들도 잘해주지. 의미 있는 일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고향이 주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거든."

흙범벅이 되어 일을 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처음엔, 그렇게 고향을 사랑하는 이가 왜 농사를 짓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이었다.

"이푸가오족은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상관없이 첫째 아이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곤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아이들은 따로 먹고 살길을 찾아야죠."

▲ 멀리 보이는 계단식 논과 다르게, 아무도 농사짓기를 원치 않아 버려진 곳. 바타드에 가면 이런 곳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고두환


바타드 토박이 농부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넬 때 비로소 그가 왜 농사를 않는 게 아닌, 못하는 것인지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첫째가 아닐 뿐더러, 오래 전부터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고향에 남기 위해서, 그리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면서 살기 위해선 가이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탐탁치 않았던 내 고향은 몇년 전, 불도저가 쓸어버렸다. 내천에 콘크리트 타일이 가지런히 깔린다는 소식을 지역 뉴스에서 보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선다는 광고를 이따금씩 텔레비젼에서 보았다. 딱 한 번, 개발 사업이 한창일 때 그 곳에 돌아가본 적이 있다. 잣나무도, 탱자나무도, 그리고 냄새가 지긋지긋했던 은행나무도 모두 떠나버린 후였다. 왜 그랬을까? 그 분위기가 주는 느낌은 퍽 서글펐다.

오늘도 도로공사가 한창인 해발 2천미터의 고도, 이푸가오 지역을 드나들며 크리스토퍼의 미소를 떠올려본다.

▲ 바타드에서 계단식 논을 복원하는 오습. 대부분 노인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 고두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는 것, 그들이 지키고 살아가는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 언젠가는 깨달을 그 소중한 것들이 제3자에 의해 파괴되어 간다는 것이, 나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 중 하나였다. 여행자들이 불편을 조금만 감수한다면, 그 불편을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으로 승화시킨다면, 원주민과 여행자는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있는 그대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크리스토퍼의 고향 바타드는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젊은이는 많아도, 그들의 정체성인 계단식 논을 지키려는 젊은이는 없다. 그리고 계단식 논은 하나 둘씩 버려지고 무너지고 있다. 도로공사에 뛰어더는 주민들은 많아도, 계단식 논 복원 사업에 발 벗고 나서는 주민들은 많지 않다. 만약 이 곳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여행자들은 그들의 고향을 찾을까?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런 식으로 구조가 재편되는 것일까?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이 실타래가 나에게 기존의 여행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려하고 있다.

나는 왜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려 하는가?
필리핀 루손 중북부의 이푸가오 지역에 산들과 밭들이 너무 좋아져버려, 계속 다니다보니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 곳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사라져가는 광경을 보면서 이 곳을 지키는데 조그마한 힘을 보태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공정함'이라는 말을 차용해 이 곳에 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을 복원해보는 신명나는 놀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1) 바타드 :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나우에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원형극장’이라 불리는 독특한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을 그 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관련 내용은 아시안브릿지 홈페이지(www.asianbridge.asia) 혹은 블로그(http://blog.daum.net/fair)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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