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도 사야겠다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을 읽고... 아쉬운, 서정주와 박정희의 평가
<시사저널>에서 일하던 기자들이 참언론을 위해 <시사인>이라는 주간지를 만들었다. 그 시사인에서 출판사를 차렸다. 그 출판사를 위해 한여름 더위를 무릅쓰고 펜을 들었다는 조정래 선생.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황홀한 글 감옥>이다. 한 출판사를 위해 쓴 책이라지만 이 책은 조정래 선생의 문학 인생 40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책이다.
책은, <시사인> 인턴기자 희망자들이 조정래 선생한테 글로 보낸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인데, 강연이 끝난 뒤 그 자리에서 청중이 묻고 선생이 대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예,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나온다. 글쓰기에서 두괄식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그 대답이 얼마나 똑 부러지고 확고한지 놀랍다.
여느 지식인들처럼 말을 빙빙 돌리지 않는다.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 줄 예상하셨습니까?"하고 물으면 '뭐, 먹고살 만큼 팔렸습니다'가 아니라 "2백 쇄를 돌파하면서 7백만 부"가 팔렸다고 대답한다. '문학과 역사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외국의 어느 평론가 말을 빌려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는 계속 밑줄을 그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조정래 선생은 단 한마디 말로 술술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되,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 간추려 엮어 놓은 기록이다",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있게 한 모국어의 자식들이다", "문학은 언어와의 싸움", "하나의 사물을 묘사하는 데 꼭 맞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이렇게 쉽고 명료하게 정리한 말은 이 책 끝까지 나온다. 위 말들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조정래 선생은 이 책에서 문학 뿐만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거침이 없이 풀어 놓았다.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 어떤 시아버지 어떤 할아버지신지요"하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한다.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 못된 버릇도 이야기한다. 아내 칭찬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내 소설 절반은 아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하고 잘라 말한다.
아내가 동국대 국문과 통합 문학서클 '동국문학회'의 최초의 여학생 회장이었던 시절, 호시탐탐 그 여학생을 노리던 선배 남학생들을 제치고 '꼬셨던 이야기'는 '인간 승리(?)'를 보는 듯하다. 그때 그이에게 보냈던 선물은 조정래 선생이 손수 그린 링컨 그림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밀화'인데 겨울방학 내내 "장편소설 20권은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마의 주름 하나를 묘사하기 위해 눈썹보다 더 가는 선들을 수백 번 그렸다고 한다. 그 그림은 2003년 김제에 세운 '아리랑' 문학관에 있다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없이 이 책 뒤 표지 안쪽에 보면 된다. 헉, 이게 그림이었어? 깜짝 놀랄 정도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 깊은 장면도 아내 이야기였다. 태백산맥을 쓸 무렵은 폭압 정치의 최고점에 다다랐던 1983년.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도 잡아다 죽이고, 이미 신문에 난 사실을 술 취해 얘기했다가 잡혀 들어가 초죽음이 되던 시절이었다. 선생은 태백산맥 연재 3회분을써 나가다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아내에게 미리 말해 마음을 단단히 먹게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작가가 쓰고 싶은 걸 못 쓰면 작가가 아니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써요"하고 말했단다. 아내는 겁이 많은 분이었다는데 그 아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커 보일 때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가슴이 울컥했다. 그 아내는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한 시인이다. 누구인지 아시는가? 바로 <사랑굿>이라는 연작시를 쓴 김초혜 시인이다. 이분 시집이 왜 나한테 한 권도 없는지 내 무식함이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면 조정래 선생이 쓴 세 가지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궁금증이 모두 풀린다.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공통점은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라고 분명히 밝힌다.
<태백산맥>이 1994년 4월에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한 뒤 2005년 5월에 무혐의 판정을 받기까지 험난한 과정도 드러나 있다. 선생은 그 책이 무혐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독자의 힘'이라고 공을 돌린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다. 대학교 때 조정래 선생의 '은사'였던 서정주와 박정희의 평가다. 친일파 문제는 여전히 우리 민족 전체를 옥죄는 문제이다. 서정주와 박정희는 친일파 중의 친일파이다. 그런데 책에서 서정주의 비판은 없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 한 줄의 시구로 민족어와 더불어 그 생명을 영구히 누린다고 했다. 박정희가 '국민 전체의 열망을 모아 경제 개발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는 그 공적은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평가했다. 동의할 수가 없다.
하지만 조정래 선생이 이 땅의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정말 컸다. 이 책에서 조정래 선생은 대하소설 세 편을 쓰고 가장 크게 느낀 보람은 독자들한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라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렇다. 내가 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만든 책도 선생이 쓴 <태백산맥>이었다. 왜 내가 극우 반공 사상에 물들어 살고 있었는지도 알았다. 전두환이 사령관이었던 그 보안사에서 근무하면서 정권에 충성했던 나는 그 책을 읽고 단박에 동굴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역사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진실을 이 소설에서 배웠다. 전쟁광인 미국의 실체를 알았고, 해방 공간에서 머슴으로 살던 이 땅의 무지랭이들이 왜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소설은 진실에 바탕을 두고 써야 한다.
어떤 이가 '소설은 꼭 진실을 써야 하는가' 하고 물었는데 조정래 선생 대답은 간단했다.
"모든 비인간적 불의에 저항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옹호해야 하는 작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래서 내가 조정래 선생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데 집에 가서 책꽂이를 보니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있는데 <한강>이 없다. 이상하다. 내용은 아는데…. 아마 신문에서 연재한 것만 보고 책은 사지 않았나 보다. 헌책이라도 사서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또 돈 들어가게 생겼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책값은 아깝지 않다. 집이 좁다고 책만 사 오면 지청구를 하는 아내 때문에 집에 몰래 책을 갖다 놓을 때가 가장 어렵다.
책은, <시사인> 인턴기자 희망자들이 조정래 선생한테 글로 보낸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인데, 강연이 끝난 뒤 그 자리에서 청중이 묻고 선생이 대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예,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나온다. 글쓰기에서 두괄식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그 대답이 얼마나 똑 부러지고 확고한지 놀랍다.
나는 계속 밑줄을 그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조정래 선생은 단 한마디 말로 술술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되,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 간추려 엮어 놓은 기록이다",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있게 한 모국어의 자식들이다", "문학은 언어와의 싸움", "하나의 사물을 묘사하는 데 꼭 맞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이렇게 쉽고 명료하게 정리한 말은 이 책 끝까지 나온다. 위 말들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조정래 선생은 이 책에서 문학 뿐만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거침이 없이 풀어 놓았다.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 어떤 시아버지 어떤 할아버지신지요"하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한다.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 못된 버릇도 이야기한다. 아내 칭찬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다. "내 소설 절반은 아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하고 잘라 말한다.
아내가 동국대 국문과 통합 문학서클 '동국문학회'의 최초의 여학생 회장이었던 시절, 호시탐탐 그 여학생을 노리던 선배 남학생들을 제치고 '꼬셨던 이야기'는 '인간 승리(?)'를 보는 듯하다. 그때 그이에게 보냈던 선물은 조정래 선생이 손수 그린 링컨 그림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밀화'인데 겨울방학 내내 "장편소설 20권은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마의 주름 하나를 묘사하기 위해 눈썹보다 더 가는 선들을 수백 번 그렸다고 한다. 그 그림은 2003년 김제에 세운 '아리랑' 문학관에 있다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없이 이 책 뒤 표지 안쪽에 보면 된다. 헉, 이게 그림이었어? 깜짝 놀랄 정도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 깊은 장면도 아내 이야기였다. 태백산맥을 쓸 무렵은 폭압 정치의 최고점에 다다랐던 1983년.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도 잡아다 죽이고, 이미 신문에 난 사실을 술 취해 얘기했다가 잡혀 들어가 초죽음이 되던 시절이었다. 선생은 태백산맥 연재 3회분을써 나가다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아내에게 미리 말해 마음을 단단히 먹게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작가가 쓰고 싶은 걸 못 쓰면 작가가 아니잖아요. 마음먹은 대로 써요"하고 말했단다. 아내는 겁이 많은 분이었다는데 그 아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커 보일 때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가슴이 울컥했다. 그 아내는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한 시인이다. 누구인지 아시는가? 바로 <사랑굿>이라는 연작시를 쓴 김초혜 시인이다. 이분 시집이 왜 나한테 한 권도 없는지 내 무식함이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면 조정래 선생이 쓴 세 가지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궁금증이 모두 풀린다.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공통점은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라고 분명히 밝힌다.
<태백산맥>이 1994년 4월에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한 뒤 2005년 5월에 무혐의 판정을 받기까지 험난한 과정도 드러나 있다. 선생은 그 책이 무혐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독자의 힘'이라고 공을 돌린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다. 대학교 때 조정래 선생의 '은사'였던 서정주와 박정희의 평가다. 친일파 문제는 여전히 우리 민족 전체를 옥죄는 문제이다. 서정주와 박정희는 친일파 중의 친일파이다. 그런데 책에서 서정주의 비판은 없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 한 줄의 시구로 민족어와 더불어 그 생명을 영구히 누린다고 했다. 박정희가 '국민 전체의 열망을 모아 경제 개발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는 그 공적은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평가했다. 동의할 수가 없다.
하지만 조정래 선생이 이 땅의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정말 컸다. 이 책에서 조정래 선생은 대하소설 세 편을 쓰고 가장 크게 느낀 보람은 독자들한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라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렇다. 내가 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만든 책도 선생이 쓴 <태백산맥>이었다. 왜 내가 극우 반공 사상에 물들어 살고 있었는지도 알았다. 전두환이 사령관이었던 그 보안사에서 근무하면서 정권에 충성했던 나는 그 책을 읽고 단박에 동굴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역사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진실을 이 소설에서 배웠다. 전쟁광인 미국의 실체를 알았고, 해방 공간에서 머슴으로 살던 이 땅의 무지랭이들이 왜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소설은 진실에 바탕을 두고 써야 한다.
어떤 이가 '소설은 꼭 진실을 써야 하는가' 하고 물었는데 조정래 선생 대답은 간단했다.
"모든 비인간적 불의에 저항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옹호해야 하는 작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래서 내가 조정래 선생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데 집에 가서 책꽂이를 보니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있는데 <한강>이 없다. 이상하다. 내용은 아는데…. 아마 신문에서 연재한 것만 보고 책은 사지 않았나 보다. 헌책이라도 사서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또 돈 들어가게 생겼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책값은 아깝지 않다. 집이 좁다고 책만 사 오면 지청구를 하는 아내 때문에 집에 몰래 책을 갖다 놓을 때가 가장 어렵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